[공공뉴스=박주연 기자] 삼성전자가 크고작은 내우외환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했지만 속편히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3년 넘게 병석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에 이어 ‘최순실 게이트’에 휩쓸려 구속 수감된 이재용 부회장. 여기에 최근엔 이 부회장 아들의 마리화나 퇴학설이라는 악재가 겹치더니 이제는 삼성전자를 이끌어온 권오현 부회장마저 사퇴를 선택했다.

권 부회장은 그동안 ‘총수 없는 삼성’에서 ‘총수대행’ 역할을 충분히 잘 해왔다는 평가. 권 부회장의 갑작스런 용퇴로 삼성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갑작스런 사퇴 발표 속내

1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권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분 사업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또 겸직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서울대 전기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기공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각각 전기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딴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5년 34세에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 삼성과 첫 인연을 맺었다.

권 부회장은 1991년 반도체 부문 이사, 1994년 메모리본부 상무, 1998년 전무, 2000년 부사장, 2004년 LSI사업부 사장, 2008년 반도체 총괄 사장, 2012년 대표이사 부회장 등 승진을 거듭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지난해부터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도 겸해왔다.

권 부회장은 이날 용퇴의 변을 통해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랜 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병’ 이건희·‘구속’ 이재용..삼성공화국 총수 공백 최대 위기

이건희·이재용 父子의 부재 상황에서 권 부회장의 이 같은 갑작스런 행보는 회사 안팎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14년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올해 이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구속 수감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이끌어온 인물이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뇌물공여) 등 5개 혐의로 기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를 지원하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후원한 것은 박 전 대통령에게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지원을 얻기 위한 부정한 청탁이 묵시적으로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한 법원에 항소했다.

따라서 재계 일각에서는 전날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공판이 시작된 것과 권 부회장의 이번 결정이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권 부회장의 사퇴 표명이 삼성전자의 위기를 극대화해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에 영향을 주기위한 노림수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박수칠 때 떠난 자’와 ‘옥중경영자’의 엇갈린 행보 의미는?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3분기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운 상황에서 권 부회장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반면 그간 총수 부재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권 부회장의 빈자리가 자칫 삼성의 일선 사업 부문에서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크고 작은 사안들을 결정해야 할 주요 경영진들이 모두 공석에 놓이면서 리더십 공백이 악화되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그동안 미뤄졌던 사장단 인사가 내달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이 부회장의 ‘옥중 경영’ 강화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후속 인사로는 현재 디지털솔루션(DS)부문 반도체사업총괄 사장인 김기남 반도체 총괄 사장이 DS부문장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윤부근 대표이사 사장(CE·소비자가전)과 신종균 대표이사 사장(IM·IT모바일), 김기남 사장(DS)의 삼각체제로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에는 새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러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신의 아들이 미국 명문 보딩스쿨 초트메리홀에 다니다가 마리화나를 피워 퇴학당했다는 소문이 퍼진 충격도 잠시, 권 부회장의 갑작스런 용퇴소식을 철창 안에서 듣고 있을 이 부회장의 복잡한 심산이 매우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