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의 멍에: 문제는 ‘돈’→정신적 피해보상vs합의금 사기 ‘피해자 코스프레’

[공공뉴스=김선미 기자] 최근 한국 사회는 직장 내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범죄 논란에는 관행적으로 ‘꽃뱀 프레임’이 따라붙고 있다.

물론 고의적으로 유명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남성들에게 접근해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남성들은 이들을 ‘무고죄’로 맞대응 하는 사례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사회 통념이 큰 용기를 낸 여성들에게 오히려 ‘꽃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습. 이는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녹취록 공개 <사진=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캡쳐>

#‘여비서 성추행 혐의’ 김준기 전 동부 회장의 충격 녹취록

지난 16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여비서 성추행’ 의혹 사건을 집중 고발했다.

앞서 김 전 회장 비서로 근무했던 A씨는 지난 9월11일 경찰에 김 전 회장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진씨는 고소장에서 올해 2~7월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 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3년 넘게 동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회장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견디지 못해 지난 8월 초 회사를 나왔고, 김 전 회장을 고소한 것.

경찰은 현재 해외 체류 중인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은 입국 즉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당시 동부그룹 측은 “두 사람 간 여러 차례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강제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A씨가 브로커들과 공모해 의도적으로 성추행 장면을 유도, 동영상을 녹화한 뒤 합의금 명목으로 100억원 이상을 요구하며 협박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동부그룹 측 해명만 보자면 피해를 주장한 A씨는 오히려 ‘꽃뱀’인 셈.

실제로 이 같은 동부그룹 측 입장에 당초 김 전 회장을 비난하던 여론은 A씨를 꽃뱀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A씨가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 폭로한 내용은 달랐다. A씨는 1000장이 넘는 서류와 카카오톡 대화파일, 11개의 녹취파일과 동영상이 든 USB를 건네며 김 전 회장의 발언과 행동을 폭로했다.

A씨에 따르면, 성추행은 회장 집무실과 회장 전용 휴게실, VIP용 엘리베이터 등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장소에서 이뤄졌다.

또한 A씨가 제작진에 제공한 녹취파일에서는 “가만히 좀 있어봐라” “만지고 싶다” “지금 너의 유일한 당장 제일 많이 점령하고 있는 남자니까” 라며 업무 효율을 이유로 스킨십을 강제하는 등 여직원을 상대로 한 김 전 회장의 충격적인 발언들이 담겨 있었다.

A씨는 “만지지 마세요” “회장님 싫어요” 등 거부의사를 전달했지만 김 전 회장은 성추행을 지속했다.

성폭력상담소장 이미경씨는 방송에서 “‘싫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내가 싫은 감정을 표시하면서 말할 수 없는, 웃으면서 말해야 되는 이 상황이 슬프다”며 “내가 이 회사를 그만 둘 각오가 아니면 (단호하게) 말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소장은 “누가봐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며 “회사에서 회장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직장이라는 곳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기 어려운 곳”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소장은 “피해자가 돈 이야기만 하면 바로 프레임이 바뀐다. 거기서 꽃뱀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꽃뱀이라는 이 용어가 피해자의 입을 막고, 오히려 비난하고 의심하려는 사회적 태도 때문에 결국 수많은 피해자들이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최근 논란이 된 한샘 여직원 성폭행 의혹 사건과 성추행 피해 사실을 일기장에 남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직원 사례 등도 공개됐다.

#결국 ‘돈’ 때문에..피해자 두번 울리는 ‘꽃뱀’ 꼬리표

직장 내 성범죄 피해자가 꽃뱀으로 몰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여성도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6월 최호식 전 회장의 성추행 사건이 처음 보도됐을 당시 일각에서는 피해 여성과 그를 도운 여성들이 꽃뱀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후 여론은 잠잠해졌지만, 합의금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여론이 들끓었다.

‘꽃뱀’은 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사기가 적용되는 범죄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소위 말하는 꽃뱀 사기 사건은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중년의 외로움을 공략하는 꽃뱀은 물론, 택시 기사를 노린 중년 꽃뱀에 외국인 꽃뱀까지. 예를 들어 남성을 유혹해 성관계를 갖고 성폭행 범죄를 뒤집어씌워 합의금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성범죄 피해자들은 엄연히 다르다.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낸, 오롯이 사건 축소에 급급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꽃뱀으로 치부하고 있다.

피해에 따른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꽃뱀으로 치부하는 모습과 합의만 하면 범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사건에 더해 꽃뱀이라는 의심을 벗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한국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노동자회 관계자들이 지난 8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돈이 아닌 진심어린 사과를 바란다

이와 관련, 손영주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공공뉴스>와 통화에서 “(직장내 성범죄) 피해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진심어린 사과와 (사측의) 정당한 징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회장은 “회사 내에서 성추행 등 문제가 발생하면 가해자는 대게 직급이 높거나 사내에서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미지 실추 등 문제 때문에 개인 문제로 취급하고 심지어 ‘(피해 여성이) 여지를 줬다’는 등 피해자 본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보통 낮은 직급이고, 남성과 여성은 조직내 권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며 “가해자들은 대부분 업무를 빙자해 성범죄의 빌미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손 회장은 이 같은 성별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오히려 꽃뱀으로 인식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먼저 건강한 조직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전하고 건강한 조직이 구축되고 꾸준히 관리에 나선다면 내부에서 들려오는 잡음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업주의 올바른 마인드도 강조했다. 손 회장은 “(직장 내 성범죄는) 회사에 손실을 낼수도 있고, 건강한 노동력을 잃을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나서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자들도 개인의 수치심 문제로 여기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며 “숨기지 말고 공론화 시켜서 조직 내에서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지지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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