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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일 칼럼] 음악, 민주주의를 꿈꾸다 ② 음악속의 권력
  • 동신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0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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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뉴스=동신일 칼럼] 음악에 있어서 권력은 장르의 생성과 소비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대중음악 중 힙합과 트로트를 보자. 힙합은 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킨다.

에어스프레이로 지하철이나 건물에 행하는 낙서미술인 그래피스나 LP 레코드판을 스크래치하며 믹서 조작으로 음향을 재구성하는 디제잉,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반복되는 비트에 맞춰 표현하는 랩, 그 랩에 맞춰 곡예 같은 춤을 추는 브레이크댄스….

이와 같이 힙합은 90년대 이후 전 세계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현상으로써 자유롭고 즉흥적인 형태의 패션, 음악, 댄스 나아가 그들의 의식까지 지배한다.

한국에는 연령층은 다르나 비교해 볼 만한 장르인 트로트가 있다. 트로트는 힙합과 마찬가지로 권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유의 반짝이 의상 가수와 청중과의 친밀한 대화, 흥이 오르면 무대 아래에서 벌어지는 가수와 관객과의 어울림은 그저 한바탕 놀이와 같다. 

1920~30년대, 트로트가 등장하여 성장하기까지 첫 향유층은 신지식인인 인텔리 계층과 일반 중산층이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 근대화와 맞물린 50~80년대 초까지 트로트는 도시 노동자가 된 농어촌 지역민들에 의해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온 애환과 희망을 담아내는 트로트를 듣고 부르며 시름을 잊었다.

이후 80년대 중후반부터 트로트는 일본 ‘엔카’에서의 음계 유입설과 명칭에 대한 논쟁에 휩싸인다. 하나의 문화가 한 시대에 정착되고 의미있는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의 사고나 삶의 양식이 이전 시대의 관습과 타협하거나 대치되는 등 여러 작용을 거친 후 정착되게 된다.

최근 트로트계의 작곡가나 제작 유통 종사자에게 본인들이 정통 트로트고 메들리 등 변형된 것은 사이비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다른 문화 현상과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한 시대의 사회상과 정신을 담는다. 높고 낮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 혹은 취향과 관계된 문화의 결과물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금 의아한 것은 이런 트로트가 한국에 시행하는 대중음악 관련 시상 중에서 자체 행사 몇을 제외하고는 시상 종목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수용자 층이 도시적이지 않고 지역적이며 연령층도 경제 활동인구 중 구매력이 낮은 노년층이 많고 교육 정도나 경제적 차원에서도 사회적 약자가 많은 탓인 듯하다.

대중문화는 ‘동질화의 문화’라고 맥도널드는 말했다. 모든 다양한 가치와 수준을 획일화하고, 이질적인 내용을 융합하여 표준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타락시킨다고 한다. 이는 대중문화를 폄하하는 시각이다.

고급문화를 논하는 이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의식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문화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본과 기술 발달로 대중매체가 대중사회를 이루면서 누구든 직접 쉽게 정보와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권력이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며, 또한 주체가 바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은 대중음악 나름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가지고 있다.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권력은 장르와 가수를 구별 짓고, 선택하고, 훈련시키고 공연장에 세운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유행은 과다 생산된 상품을 소비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유행은 대중음악에서도 문화자본에 의해 기획되고 실행된다. 대중음악에 실용이라는 이상한 의미를 덧대어 비실용적인 것이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문화실행 자체가 힘의 유무에 입각한 사회 권력과 맥이 닿아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전체주의에서 예술은 일정한 목적을 실천하는 데 기여해야 하며, 혼란을 일으키는 논쟁이나 비판은 통제 받는다.

민주주의는 보편적 정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권력을 세워나가야 하며, 예술 또한 내적 규율과 외적 형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문화에 실천하는 과정이다.

동질성이 없어 보이는 민주주의와 음악을 관련지어 본 것은 비록 음악의 내적 구조와 외형이 정치나 자본 권력이 행사하는 형태와 닮아 있지만 그 정신과 표현 방식은 자유롭고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족주의나 사민주의, 무정부주의, 종교적 종파주의 등 특별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도 함께 한다.

음악도 고급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그리고 록이든 힙합이든 재즈든 케이팝이든 팝이든 트로트든 모두 그중에 함께 한다. 그러나 사실은 경제력, 연령, 지역, 교육 정도, 직업 등에 따라 계층이 나뉘고 소비되고 있다.

동신일 칼럼니스트

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민주주의의 가치처럼 다양한 취향의 문제라 생각하고 상대방을 비판적이고 단순화시켜 수준 낮다고 무시하지 말고 모두 함께 공유하자.

필자가 보기엔 아방가르드 음악이나 록이나 케이팝이나 트로트는 본질적으로 하등의 차이가 없다. 모든 음악은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 배경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다시 한번 강조해본다. 앞으로도 정말 한국대중음악상들에서 트로트를 왕따시키려는가?

트로트는 적어도 민주주의를 해치는 사악한 권력은 아니지 않은가? 

       

동신일 칼럼니스트  114@00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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