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지마 폭행 : 사람의 탈을 쓴 악마 병든 사회의 경고→‘왜’가 없어 대책도 없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아무런 이유 없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가 우리 사회를 불안감으로 몰아넣고 있다.

2년 전 서울 강남역 인근 여자 화장실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또 다시 여자 화장실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나도 표적이 될 수 있다’라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의 공포는 상당하다. 그렇다고 항상 방어 태세를 갖추고 살아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불만과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사회에서 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가정, 학업, 직장 등 곳곳에서 해소하지 못한 분노가 범죄로 표출되는 것은 급격한 사회 발전이 낳은 부작용이나 다름없다.

<사진=뉴시스>

# 여자 화장실서 또 터진 ‘묻지마 폭행’

17일 인천 부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7시56분께 인천 부평구 부평역 인근의 한 건물 1층 여자화장실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30~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20·여)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리고 도주했다.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A씨는 편의점으로 겨우 도망쳐 경찰에 신고 후 의식을 잃었으며,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을 마친 A씨는 겨우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원 미상의 가해자는 A씨를 폭행한 후 택시를 타고 도주했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

경찰이 탐문수사에 나선 결과, 범인이 14일 오후 7시11분께 범행 장소에서 400m 남짓 떨어진 한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담배를 사고, 14분 후에는 등산용품 판매장에서 등산화 가격만 물어본 채 물건은 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이후 A씨가 일하는 편의점 앞에서 20분간 서성이다가 여자화장실로 들어가는 A씨를 뒤쫓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은 화장실에 들어간 지 5분 만인 오후 8시 3분께 밖으로 나왔으며, 둔기 폭행을 당한 A씨는 6분 뒤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당시 현장에는 목격자가 있었다. 이날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던 B(27)씨는 1층 남자화장실을 찾았다가 바로 옆 여자화장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B씨는 “소리가 나서 여자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 곳곳에 피가 있었다”며 “롱패딩을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쳐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B씨는 범행이 일어난 것을 알고도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이 신고를 주저하는 사이 피해자는 화장실에 혼자 방치됐고 가해자도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은 현재 “2~3개월 전부터 A씨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다”는 A씨 지인의 진술에 따라 스토커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남성을 뒤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같은 이른바 ‘묻지 마 범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6년 6월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묻지마 살인’을 당해 숨졌다. 사진은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오늘의 ‘타깃’은 내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묻지마 범죄자들은 공통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묻지마 범죄자들은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범행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묻지마 범죄로 분류된 기소 사건은 총 270건이었다. 한 해 평균 54건의 범죄가 발생한 셈.

범죄 유형별로는 상해가 연평균 28.4건으로 가장 많았고, 살인(미수 포함) 사건도 12.6건이나 됐다.

묻지마 범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물론, 가해자들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러 맹비난 받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이 같은 범죄가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2015년 5월에는 서울 중구의 한 지하철 역에서 한 20대 남성 정모씨는 20대 여성에게 이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정씨와 폭행을 당한 여성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

정씨는 “취업 면점에서 계속 떨어져 화가 나 묻지마 폭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정씨 역시 현실에서 불만이 만성 분노로 악화돼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

묻지마 범죄는 이처럼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타깃이 한 명이 될 수도, 여러명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큰 원인으로 ‘사회에서의 낙오’를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묻지마 범죄자들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많다는 집계도 있다.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고, 사소한 계기가 발단이 돼 만성 불만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

결국 묻지마 범죄 증가는 사회가 병들고 있거나 병들어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지난 2015년 11월2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인근의 한 PC방에서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 현장. 당시 30대 남성이 갑자기 휘두른 흉기에 이 남성 뒷편에 앉아있던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사진=뉴시스>

# “병든 사회의 체질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한 심리 전문가는 이 같은 분노범죄의 해결책으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는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경쟁 중심의 학업에서 살아남아 어른이 되면 또 사회와 회사에서 경쟁을 이어나가야 한다”면서 “이 같은 경쟁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부담을 안게 된다. 또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좌절감도 커지고 분노도 그만큼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같은 분노를 해소할 복지제도는 아직까지 미비하다. 사회 곳곳에서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들을 충족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은 결국 이 같은 사회 구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할 수밖에 없고, 분노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묻지마 범죄는 ‘왜?’라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심리 치료 등도 방법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의 체질 개선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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