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죽도록 버티자!→선택에 후회 말고 결과에 승복하기

# “며칠 전 이윤택 선생님의 성폭력 사건이 밝혀지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있었던 과거 끔찍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치유된 줄 알았던 전 다시 심장이 뛰고 온몸이 저리고 눈물이 났다. (연희단거래패)여자 단원들은 밤마다 돌아가며 안마를 했다. 그 수위는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혼자 안마를 할 때 나는 (이윤택에게)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005년 임신을 하고 조용히 낙태를 했다. 낙태 사실을 안 이윤택은 이후 얼마간 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점점 잊혀져갈 때 쯤 또 다시 나를 성폭행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공연이 너무 좋고 행복해 그곳을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 관객 앞에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없었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곳을 나왔다. 지금 용기 내지 않아 이 일이 흐지부지 된다면 지금까지 자신의 아픔을 힘겹게 꺼내준 피해자들이 또 한 번 고통을 당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는 것은 연극계가 바로 서는 일이고, 내가 다시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있고 무대 위에서 떳떳하게 배우가 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최근 문화예술계 성추행·성폭행 논란이 사회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을 어려운 고백을 한 연극배우 김지현씨의 글을 보면 왜 그 당시에는 이 같은 고통을 말하지 못하고 수년을 묵혀 뒀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연극무대에서 김씨를 버티게 했던 것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한 심리 전문가는 이를 두고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괴리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연극계 성추문 폭로..그때는 못했던 일, 지금은 할 수 있는 일

최근 사회 중대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성추행·성폭행 폭로. 사회 각계에서 본격적으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되면서 문화 예술계의 소름끼치는 이면도 여과없이 드러났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에 이어 성폭행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문화 예술계가 격랑 속으로 빠진 모습.

시작은 극단 ‘미인’의 대표 김수희씨의 폭로부터다. 김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과거 이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했다”며 “밤에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짐을 푸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이 감독이)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 물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있었고,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자기 성기 가까이 내 손을 가져가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 내 손을 잡고 팬티 아래 성기 주변을 문질렀다. 나는 ‘더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고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모두를 경악케 했다.

김씨의 용기있는 발언 후 연극계에서는 너도나도 이 감독의 만행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연극이 좋아서, 하고 싶어서 택한 길이지만,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같은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연극계의 변화가 필요했던 셈이다.

이 같은 성추문 스캔들은 연예계까지 뻗어 나갔다. 배우 조민기가 과거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조교수로 수년간 재직하면서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것.

조민기는 해당 의혹에 대해 반발하면서 “명백한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청주대 출신 배우 송하늘이 연극학과 재학 시절 조민기에게 당했던 성추행을 폭로하며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울러 유명 배우 오모씨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5일 한 누리꾼이 이윤택 연극 연출가의 성폭력 기사에 댓글을 남기면서다.

이 누리꾼은 “1990년대 부산 ㄱ소극장. 어린 여자후배들 은밀히 상습적 성추행 하던 연극배우. 이 연출가가 데리고 있던 배우 중 한명. 지금은 코믹연기하는 유명한 조연 영화배우. 제게는 변태. 악마. 사이코패스일뿐. 저는 끔찍한 짓을 당하고 이후 그 충격으로 20여년간 고통받았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성추행 폭로글 속 배우는 이 연출가와 함께 과거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공연 활동을 한 배우로 추정됐다.

이 같은 댓글이 게재된 이후 또 다른 누리꾼도 해당 배우를 언급했다. 지난 19일 다른 누리꾼은 “이 연출가가 데리고 있던 배우 중 한 명인 오모씨는 할 말이 없으리라 생각된다”며 “1990년대 초반 이 연출가가 소극장 자리를 비웠을 때 반바지를 입고 있던 제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함부로 휘저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현재 수많은 연예인들의 성추행 의혹들이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실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큰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논란이 일었던 대표팀(박지우,노선영,김보름)이 지난 21일 오후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순위결정전에서 역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최악의 평창 스캔들, 차별 속에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성추행·성폭행과 같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하는 지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그리고 이 같은 고민은 비단 문화 예술, 연예계뿐만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바로 평창 최악의 스캔들로 기억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을 통해서다.

지난 19일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 선수가 참여한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노선영 선수를 홀로 남겨놓은 채 스퍼트를 했고, 결국 노선영 선수가 뒤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개인전이 아닌 만큼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경기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여론은 공분했다.

해외 언론에서도 당시 상황을 보도하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장면’이라고 전하기도 해 한국은 국제적 망신살을 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 논란은 예고된 참사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 빙상연맹의 파벌 논란인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배경, 배우 송중기가 쇼트트랙 선수를 그만두고 연예계에 발을 들인 배경 역시 빙상연맹의 파벌싸움 때문이라는 말이 자자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노선영 선수다. 노선영 선수는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난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노진규의 친누나다.

노선영 선수는 대표팀 선발전 여자 1500m에서 김보름 선수를 제치고 결승선에 먼저 통과했지만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때부터 논란은 시작됐다.

이후 노선영 선수는 자신의 SNS에 “내 동생은 메달 만들기에 이용당했고, 나는 메달 만들기에 제외 당했다”며 “더 이상 국가대표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고 국가를 위해 뛰고 싶지도 않다. 빙상연맹은 우리 가족의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았다”며 분노했다.

또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월드컵 4차 시기 이후 평창올림픽 출전하는 팀추월 남녀 대표팀은 단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며 “빙상연맹 부회장의 주도로 이승훈, 정재원, 김보름 3명은 태릉이 아닌 한체대에서 훈련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노선영 선수는 그동안 수많은 차별 대우를 견뎌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인 평창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평창 무대에 서고 싶었고, 또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빙상연맹의 파벌싸움과 왕따 논란으로 노선영 선수의 꿈은 처참하게 짓밟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

일각에서는 말한다. 어떠한 선택을 했다면 그 과정에서 사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내야 한다고.

물론 운이 좋아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문제 없지만,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버려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인지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과 이상사이의 괴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한 전문가는 “누구나 한번쯤 ‘하고 싶을 일’과 ‘할 수 있는 일’ 중 어떠 것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봤을 것”이라며 “어떤이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외부 요인으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본인의 선택을 믿고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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