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동신일 칼럼니스트] 며칠 전 평양에서 열린 공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온갖 난항의 정치적 문제 해결에 앞서 미리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음악이 가지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새삼 느꼈다.

작년까지의 한반도 전쟁 위기는 어느덧 반전되어 마치 좋은 소설처럼 기대와 감동을 자아낼 것 같은 성급함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물론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니 이미 한걸음은 내디딘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다. 그 좁은 휴전선 부근에 수십만 명의 무장 군인과 첨단의 대량살상 무기들이 집중해 있는 곳이 지구에 어디 또 있단 말인가. 겨우 휴전선 수십 킬로미터 안에 서울과 수도권 인구 2,0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만에 하나 전쟁 발발시 1주 안에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곳이다.

휴전선, 이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한참 싸우다가 주먹 쥔 채로 코피 흘리며 서로 노려보고 씩씩거리는 동네 건달들의 싸움과는 다르다.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그들의 생존권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몇 개의 핵폭탄이 있다 하더라도 수천 개의 크고 작은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감히 어쩌겠단 말인가.

북한이 핵폭탄을 미사일에 싣고 미국에 향해 쏘아 올리는 낌새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그 존재마저 없어질 가능성이 지대하다. 무기 체계나 전쟁 수행능력의 면에서 도무지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관계 지향적이다. '음' 하나로 출발하여 또 하나의 '음'들이 연속해 위아래로 이어지면서 선율이 만들어진다. 음길이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때에 따라 한 음이 지연되기도 하고, 미리 앞당겨 울리기도 한다.

외성부인 소프라노, 베이스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향하며 안정성을 도모한다. 대중음악의 코드는 일정한 앞뒤 진행 규칙이 있어 우리에게 익숙함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좋은 구조와 형식을 갖춘 아름다운 음악은 이와 같은 관계 설정으로 만들어진다.

훗날 역사책에 한반도 운명의 대전환 시기로 기록될지도 모를 요즈음, 남북한이 미래를 내다보는 관계 구축과정이 멋진 음악처럼 만들어져 더 기쁘고 환희에 찬 공연으로 펼치게 되는 날을 기대한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레드벨벳은 빨간 맛이 궁금하다며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 그 맛이며, 야자나무 그늘 아래 졸고 싶다고 하면서 나중엔 내 방식대로 가고 내 맘대로 상상하며 그러나 결국 진하고 강렬하게 너의 색깔로 날 물들여달라고 한다.

세대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 방식이지만 이성적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는 내용이다. 아무튼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 어떨지 몰라도 한반도 비핵화로 종전선언이 된다면 그 맛은 새콤한 노란 맛이 날 것 같다. 핵은 항상 노란색으로 표시되니까.

이어서 평화협정을 맺고 비로소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린다면 맑고 상큼 달콤한 연초록 맛이 나지 않을까? 열차 타고 섬 같은 남한 땅을 넘어 휴전선이던 국경선에서 북한 입국 심사원에게 비자 도장 꾹 받고 평양을 거쳐 북경을 지나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멈춤없이 가고 싶다.

동신일 칼럼니스트 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그 사이 사이에 흰구름 맛과 푸른강 맛과 대지의 황토빛 맛을 보면서 삶의 한 때를 넓게 넓게 그리고 깊게 깊게 만드는 태양 맛도 보고 싶다.

평화공존 시대의 개막으로 위정자들이 말하는 국제활동 영역의 확장이든 남북 경제부흥의 계기든 세계 평화에 기여하든 이 모든 것이 한데 버무려져서 색색깔 무지개 맛이 되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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