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범죄:사회적 매장 당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솜방망이 처벌’ 피해 키운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평범한 고등학교 여교사 한서린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서린은 어느 날 ‘마스터’라는 정체불명의 발신자에게 문자를 받게 된다. “좋은 꿈 꿨어요?”라는 글과 함께 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메시지. 바로 서린이다. 마스터는 이 사진으로 서린을 옥죄면서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이달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나를 기억해’는 몰카를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다. 디지털 성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다룬 이 영화는 서린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진=뉴시스>

최근 미투 운동(#Me Too)이 한국 사회 각계각층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들추고 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외침은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미투는 아직까지 먼 나라 이야기다.

# 군인부터 명문대생까지 ‘몰카’에 빠진 사람들

17일 경찰에 따르면, 충북 청주흥덕경찰서는 휴대전화로 몰카를 찍은 군인 A(23)씨를 붙잡아 육군 헌병대에 인계했다.

A씨는 지난 15일 새벽 1시20분께 청주시 흥덕구의 한 상가 화장실에서 여성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화장실에 가는 여성을 따라 들어가 칸막이 위로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눈치챈 피해 여성의 신고로 A씨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육군에서 복무 중이던 A씨는 휴가를 나와 술을 마시다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날에는 지하철역에서 여성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려 한 서울대학교 학생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20대 서울대생 B씨를 검거했다.

B씨는 지난 10일 오후 10시10분께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서 있던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려 한 혐의다.

B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특히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또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과 영상 등이 10여건 발견돼 경찰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몰카 시도와 관련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휴대전화 속 여성은 자신의 전 여자친구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날씨가 풀리고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여성을 상대로 한 몰카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서울 시내 지하철역 가운데 몰카 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온 역은 2호선 홍대입구역으로 나타났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경찰대에 접수된 1∼8호선 몰카 신고 건수를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홍대입구역은 지난해 83건에 달하는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홍대입구역은 2016년에도 94건으로 1위에 오르며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어 3·7호선 환승역인 고속터미널역이 2위(51건), 2호선 강남역과 1·4호선 서울역(각 45건)이 공동 3위였다

이밖에 1·2호선 신도림역(38건), 2·4호선 사당역(34건), 2·7호선 대림역(30건), 2호선 서울대입구역(17건), 2호선 역삼역(15건), 2·7호선 건대입구역(14건) 순이었다.

<사진=YTN 뉴스 영상 캡쳐>

#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사회에서 매장시켰다

몰카는 디지털 성범죄로써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발생건수는 지난 2012년 2400건에서 2016년 5185건, 2017년 6470건 등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디지털 성범죄의 상당수는 헤어진 연인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기 위해 행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미삼아 찍거나 몰래 찍힌 연인이나 부부간 잠자리 영상이나 나체 사진 등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상 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인터넷이 유출하거나 타인에게 공유하는 ‘리벤지 포르노’는 그동안 피해자 인권을 짓밟는 심각한 범죄.

몰카 범죄에 대한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광범위한 대책까지 내놓은 상황. 그럼에도 몰카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 형국이다.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촬영 도구의 발달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물론 모자, 안경, 펜, 시계, USB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모두 몰카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말 숨만 쉬어도 사진이 찍히는 세상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수차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듯 P2P사이트나 해외계정을 통해 피해자의 영상이 광범위하게 유통·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더욱 은밀하고 치밀하게 촬영되고 있는 몰카는 한번 유출될 경우 ‘완전한’ 삭제는 매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해당 영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로 퍼진 경우가 많다”며 “처음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기도 힘들고, 인터넷에 뿌려진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피해자는 매달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범죄에 따른 피해자들이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대부분이 여성들로 이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 가해자의 이기심이 피해자를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는 것은 물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셈.

<사진=뉴시스>

# 몰카는 중대 성범죄..솜방망이 처벌 이제 그만!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몰카 범죄 사례가 증가하고 매년 이어지다 보니 가해자들은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정작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대법원 자료에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 가운데 1심에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난 비율은 2016년 기준 10명 중 9명(86%)이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몰카 범죄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되는 사례가 드물고 검찰의 구형 역시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이 대다수였다.

사법당국의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몰카범죄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점점 교묘해지고 치밀해지는 몰카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일각에서는 성범죄자와 같이 전자발찌를 채우는 극단적 방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몰카가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현실이지만,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문제가 될 만한 영상이나 사진은 되도록 남기지 말고, 공중화장실 등을 사용할 때는 휴지통이나 환풍구 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색한 방향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거나 다양한 형태의 몰카가 존재하는 만큼 자신의 복장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소지한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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