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贊 “여성 기본권 보장해야” vs 反 “낙태 무분별한 허용일 뿐”

[공공뉴스=정혜진 기자]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감행한 여성과 의사에게 형벌 부과는 헌법에 반하는가에 관한 논쟁이 6년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불붙었다.

지난 24일 오후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인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태아생명권’ 인정 대목 등을 둘러싸고 청구인과 법무부 등 이해관계인 간 팽팽한 공방이 진행됐다.

이날 헌재 앞에서는 합헌과 위헌 양측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집회를 가졌으며 여러 온라인커뮤니티에서도 낙태죄 관련 논의가 뜨겁게 일고 있다.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 변론일인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무엇이 더 우선순위?

앞서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친 낙태시술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는 형법 269조, 270조 낙태죄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며 올 2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은 낙태죄 조항이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함께 평등권, 건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 여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하고 남성은 처벌에서 제외해 평등 원칙에 어긋났다고 제기한 것.

청구인 측은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게 만든다”며 “우리나라는 임신 초기 등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면서 모자보건법상 허용 예외를 뒀지만 그 범위가 좁아 합법 낙태는 사실상 강요된 선택을 받는 여성에게만 국한된다”고 지적했다.

청구인 측은 의존적 존재인 태아를 생명권 주체로 인정할 수 없기에 사람의 생명권과 달리 일정 부분 제한될 수 있어 임부의 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더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10대 여성, 임신을 지속할 수 없는 장애 여성, 성폭력으로 임신을 하는 여성 등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는 사례가 줄을 잇는 상황 속에서 낙태를 불법을 규정한 현행 법 때문에 미혼모·영아살해·유기 등이 발생하는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낙태는 인권 문제이고 여성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도 보장해야 한다”며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에게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 등 이해관계인 측은 태아도 생명체로 보호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이해관계인 측은 “태아는 8주만 되도 중요 장기가 형성되고 16주가 되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학 발전으로 모체를 떠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늘어 임신 초기 낙태를 전면허용해선 안 되며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가 무분별하게 허용된다고 우려했다.

이해관계인 측은 “낙태를 어느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를 도출해야하는 문제로서 입법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라며 “의학의 발전으로 모체를 떠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임신 초기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한다면 이는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이 역시 부당하다”고 말했다.

<사진=공공뉴스 DB>

◆낙태죄 폐지vs허용범위 추가..실효성 여부 문제 논쟁

낙태죄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도 양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연간 낙태건수는 17만건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기소되는 사람은 불과 10여명에 그치면서 현행 낙태죄 처벌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구인 측은 안전하게 낙태할 권리를 위해 기본적으로 낙태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낙태가 현행법상 불법이어서 비숙련 인원에 의해 음성적으로 낙태가 이뤄져 매우 위험하기 때문. 낙태 비범죄화 조치를 통해 임부가 숙련된 의료인에 의해 안전한 낙태수술을 받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성 요청에 따라 허용하는 국가에선 오히려 낙태비율이 더 낮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하면서 독일처럼 임신 12주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법무부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 생명권의 보장을 위해선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며 형사처벌 조항이 낙태를 자제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고 봤다.

이해관계인 측은 “낙태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면서 “헌법과 형법에서 생명권을 중요한 법익으로 보고 있기에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자체를 위헌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위해서는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낙태 허용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봤다.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거나 임신의 지속이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가난이나 원치않는 임신 등 사회·경제적 이유는 낙태허용사유가 아니다.

헌재는 공개변론에서 제시된 양측의 의견을 토대로 별도 선고기일을 잡아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한편, 헌재는 앞서 2012년 8월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재판관 8명은 합헌 4명 대 위헌 4명으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으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이번 여론이 낙태죄 폐지 쪽에 기조가 실리면서 낙태죄 폐지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여성가족부는 올 3월30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냈으며 보건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맡겼다. 결과는 오는 10월경에 나온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신 뒤)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을 비롯한 김이수·강일원·안창호·김창종·유남석 재판관 등 총 6명이 낙태죄 폐지 또는 개정에 찬성하는 취지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달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낙태죄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은 51.9%, 반대 의견은 36.2%로 나타났으며 10월 청와대 청원 페이지에선 낙태죄 폐지 요청 청원이 23만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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