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아버지’ 그 무거운 책임→한국인의 일탈로 슬픈 족쇄 채워진 한인 2세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관광객부터 유학생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필리핀의 세부. 현재 필리핀 세부 곳곳에는 코피노 마을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최근 방송된 KBS 2TV ‘VJ 특공대’에서는 유학생 신분이던 한국 남자와 1년 간 뜨거운 연애 끝에 아이를 출생했다는 한 여성의 사연이 소개됐다. 한국에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오겠다던 아이 아빠는 아이가 8살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아빠가 남기고 간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겨진 가족들은 단지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이 같은 한국인 남성의 무책임한 행동에 코피노 엄마들은 자녀양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 코피노 엄마들은 “아이의 아빠가 양육 의지가 없어 홀로 양육해야 하는 만큼 과거 양육비뿐만 아니라 장래 양육비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KBS 2TV ‘VJ특공대’>

최근 해외여행 비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일부 관광객들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한국인을 일컫는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합성어까지 생겼다.

외국 유적지에 낙서부터 인종·타국문화 무시 등 다양한 유형의 어글리 코리안 가운데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아버지들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동거 또는 결혼을 하고 있던 한국인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연락을 끊는 경우 아이에게 ‘코피노’라는 슬픈 족쇄만이 남게 된다.

# 한국인의 일탈, 그리고 ‘코피노’ 족쇄가 채워진 아이들

필리핀은 한국과 지리적 근접성이 높고 저렴한 물가, 투자 이민 등에 대한 개방성이 높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면서 코피노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코피노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최근 필리핀에서 아이를 낳고 도망간 한국인 아빠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찾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자식 버린 한국아빠들, 정부가 찾아주세요. #코피노아빠찾기 #미혼가정아빠찾기’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에 따르면, 필리핀에는 한국 아빠가 낳고 도망간 아이가 약 4만명이다. 한국인 유학생, 어학 연수생, 파견 직원 등이 현지 여성과 연애를 하다 여성이 임신하면 한국으로 도망가고 남겨진 현지인 가족은 가난과 배신감에 시달린다.

특히 코피노 탄생과정에서 성매매 등 우발적인 출산은 5% 내외에 불과하지만 언론들은 그저 쉽고 자극적인 취재를 위해 ‘코피노=성매매’라는 편견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청원인은 필리핀이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낮다고 무시하는 행위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어느 나라든 자식-부모 관계와 출산의 문제는 막중한 것”이라며 “결국 이러한 무책임들이 돌고 돌아 국내에도 약 16만명의 미혼모가 남겨졌다”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무책임한 한국 아빠들을 찾은 후 양육비와 행정비용을 청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가가 코피노 아빠 찾기에 나서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민간단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코피노 아빠를 찾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통신사, 관공서가 아이 아빠 찾기에 협조할 수 없기 때문. 이에 ‘코피노 아빠를 찾습니다’ 블로그는 지난 3년 동안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코피노 아빠 66명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40명을 찾아냈다는 청원인은 관련 사이트 링크를 첨부했다. 코피노 아빠의 초상권침해와 명예훼손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아이 생존권이 더 소중하므로 불법을 감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나선다면 통신사와 관공서의 협조로 코피노 아빠 수색작업이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청원인은 “민간단체가 나서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아이 아빠의 상당수는 미혼모에게 조폭, 깡패를 보내서 양육비 소송을 취소하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미혼모들을 보호하기 위한 경호원을 별도로 고용해야 한다며 사법행정기관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 청원인의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가 나서면 ‘미혼모를 앞세운 사기꾼’, ‘조직폭력배’라고 의심받기 때문에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코피노 아빠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낙태는 금지하면서 육아의 책임을 미혼모에게만 묻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며 “국가가 나서서 무책임한 코피노 아빠들을 찾아야 한다. 공익적인 개인이나 단체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필리핀의 4만 미혼모, 나아가 국내 16만 미혼모들의 생존권이 걸린 이번 국민청원에 여러분의 동의를 부탁드린다”며 청원을 마무리했다.

해당 청원은 6일 현재 2300명이 넘는 인원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이밖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를 국가적으로 운영해 주세요’ ‘코피노 아버지를 찾아 책임지게 해주세요’ ‘코피노 문제 책임져주세요’ 등 관련 청원이 올라와 있다.

앞서 2015년 코피노 어머니들은 아이의 친아버지를 찾겠다며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인 워드프레스에 ‘코피노파더’라는 사이트를 개설한 바 있다. 사이트에는 이름과 나이, 거주지, 사진 등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등록됐다.

관광이나 유학, 사업차 필리핀을 찾은 한국 남성들은 필리핀에서 생활하는 동안 현지 여성과 짧은 기간 동안 만나고 사귀거나 같이 살다가 여성이 임신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연락을 끊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필리핀은 엄격한 카톨릭 국가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어 미혼모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다. 이 같은 한국인의 무책임한 행동은 전세계적으로도 망신살을 사고 있다.

필리핀 코피노 아버지 찾기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청원글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 가난과 사회적 냉대..남겨진 이들의 인권은 없나?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을 찾는 만큼 방치된 코피노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 생부와 연락이 두절된 대부분의 코피노 가정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특히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식을 방치하는 한국인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실정.

대부분의 코피노가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자라고 있는 가운데 코피노 숫자는 3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16년 10월 국회에서는 ‘코피노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김삼화 국회의원은 “코피노 3만명 시대, 해외 성매매가 빚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양육 책임을 저버린 한국 남성들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필리핀 정부까지 나서서 한국 남성들의 부도덕성을 제기하는 코피노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의제”라고 말했다.

이어 “코피노들은 한국인임에도 다문화 가족에 대한 지원은커녕 양육비 이행, 국적 취득, 비자 발급 과정 등에서 온갖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코피노는 인권문제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코피노들이 아버지를 찾고 부모의 보살핌 아래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코피노 문제를 대할 것을 요구했다.

이주민 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고지운 변호사는 ▲소송당사자로서 한국 방문 시 비자(사증)발급 문제 ▲한국인 남성(아버지)에 대한 소재파악 이후 유전자검사 절차에서의 어려움 ▲코피노 아동이 성인이 된 이후 아버지에 대한 인지청구소송을 진행하려는 경우 비자(사증)발급 문제, 이 경우 본국에 있는 출생증명 서류가 비자 발급 시 자료로 제출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 제도처럼 해외 현지에 진출한 기업, 파견 근무 직원, 유학생 등에게 출국 전이나 출국 후에 일정 시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 변호사는 외교통상부가 현지 코피노 실태조사 실시와 성매매 예방 관련 매뉴얼을 수립해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내용을 법제화 하는 방안도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피노 아동에 대한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 대한 권리 및 정체성 보장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고 변호사는 주장했다.

그간 코피노 문제 해결은 수년 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코피노에 대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에도 코피노 어머니들은 아동들을 위한 외로운 노력을 이어나갔다.

이 가운데 2012년 국내 법원이 처음으로 코피노가 한국 남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로 부모 자식 사이가 맞다”고 판결한 이후 관련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당시 법원은 한국 아버지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자 유전자 감정을 통해 혈연관계를 확인했다.

이후 2015년 6월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은 필리핀으로 출장을 갔다가 아이를 낳은 한 남성에게 매달 30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남성은 한국 아내와의 불화 때문에 필리핀으로 양육비와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고 아이의 어머니가 소송을 냈다.

같은해 5월 수원지법 성남지원 가사2단독은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며 두 아들을 낳은 남성에게 매달 양육비 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의 자녀임을 인정하기만 할 뿐 현실적으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가 소송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은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과 낳은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고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남성에게 “매달 15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이 남성에게 3년 가까이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 총 357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법원은 또 올 1월 필리핀 여성이 한국 남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양육비 1700만원과 성인 전까지 매달 50만원의 양육비로 지급하라며 서울가정법원에 양육비 청구 및 친자 인지 소송을 냈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코피노 소송은 전국 법원에 총 60여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사진=뉴시스>

# 어글리 코리안, 책임의 ‘무게’를 져야 할 때

이처럼 코피노 문제가 사회 이슈로 자리 잡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언론에서 일회적으로만 취급될 뿐 지속적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일본 정부의 대응을 참고해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자피노’는 현재 1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1993년부터 변호사지원단을 구성해 이름과 전화번호 밖에 없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싱글맘인 필리핀 여성들에게 매월 일정금액의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을 원칙으로 자피노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자피노에게도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난 순간 각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 하지만 책임 지지 않는 행동은 한국인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까지 실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코피노 문제는 부끄러운 민낯의 상징이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부족한 나라에서 들리는 어글리 코리안의 소식들. 인간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한국에서는 있고 외국에서는 없다는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

한국인의 국제적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는 가운데 국경을 떠나 행한 자신들의 무책임한 태도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매너 있는 행동으로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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