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정혜진 기자] “혁신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의 대상이 된다.”

올 3월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언급하며 ‘부정척결’을 외친 바 있는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의 앞날에 벌써부터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서부발전은 지난해 고위 간부가 뇌물수수로 구속된 데 이어 인사 부정비리 의혹도 터져 홍역을 앓았던 상황. 이런 가운데 최근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 소속 직원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르면서다.

김 사장의 취임사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 다시 불거진 직원 비리 의혹은 서부발전에 ‘비리백화점’ 꼬리표를 달게 하고 있는 형국.

결국 편법과 특권, 반칙을 저지르는 부정비리 척결 등 청산해야 할 적폐가 없는지 살펴보는 한편, 청렴·공정한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김 사장의 포부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8일 김병숙 사장은 취임식에서 “혁신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의 대상이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인용, ‘차별화된 발전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경영비젼을 제시했다.<사진=한국서부발전>

◆서부발전 임·직원 연이은 뇌물수수 등 혐의..‘비리종합세트’ 온상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서부발전의 핵심 사업장인 태안화력 터빈부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된 차장 A씨의 휴대전화와 공사 관련 자료 등을 입수, 분석해 A씨의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태안화력과 A씨의 집인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있는 사택 아파트와 해당 사업의 원청업체가 있는 강원도 강릉시에 형사를 급파해 동시에 3곳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는 해당 사업이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태안화력 1호기 탈황성능 개선 공사의 닥트 설계 변경 과정에서 A씨가 업체 관계자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한 데 따른 것.

이에 경찰은 압수물 분석 결과를 토대로 A씨 등 관련자들을 불러 해당 의혹이 사실인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하지만 금품수수 의혹 액수가 수천만원대이고 해당 직원이 차장급임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연루 직원들이 추가로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 이에 따라 수사가 A씨 주변 인물들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서부발전의 금품수수 의혹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동섭 서부발전 전 기술본부장은 지난 2016년 뇌물수수 혐의가 확인돼 올해 5월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5월 대구지법 제11형사부(손현찬 부장판사)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전 본부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4500만원을 선고했다.

김 전 본부장은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브로커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대가성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서부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와 관련해 기술적 타당성 여부 등을 검토하는 업무를 총괄했던 김 전 본부장은 “경북 김천의 한 연료전지 발전업체로부터 REC를 높은 단가에 사겠다”는 내용의 ‘구매의향 공문’을 발급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4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실제로 서부발전으로부터 REC를 높은 단가로 구매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을 경우 발전소 건립을 위한 대출이 보다 쉬워지기 때문에 또 다른 금품로비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서부발전이 태안화력 환경설비 성능개선 공사현장에서 ‘국민 소통-공감 Day’를 개최하고 지역주민 등을 초청해 환경신기술에 대한 설명과 견학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서부발전>

◆정하황 사장 선임과정서 채용비리 수면 위..발전공기업 경영평가 ‘추락’

서부발전은 이처럼 또다시 임·직원 비리가 드러나면 기관 신뢰도와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회사는 지난해 채용비리가 드러나면서 빈축을 산 바 있다. 이에 따른 타격으로 2017년 국내 발전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받았다.

이는 서부발전이 2017년 사장 선출과정에서 정하황 전 사장이 인사비리에 연루됐기 때문.

2016년 11월17일 취임한 정 전 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실세로 알려진 안종범 경제수석의 동문으로 사실상 취임부터 ‘낙하산’ 인사로 지적됐다.

이 가운데 감사원은 정 전 사장 선임과정에서 점수 조작을 통해 당초 임원추천위에서 추린 3배수에 들지 못했던 정 전 사장이 사장에 선임된 사실을 확인하고 2017년 9월 검찰에 조사를 의뢰했다.

결국 정 전 사장의 선임과정에서 인사추천위원회 점수 조작으로 서부발전의 실무책임자인 B처장이 구속됐고 산업부의 사무관과 국장이 잇따라 구속되면서 인사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즉, 정 전 사장 선출과정에서 관계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산업부 국장급 간부 C씨는 2016년 10월 서부발전 사장 공모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또한 당시 인사를 담당한 D서기관(2017년 11월 구속)의 압력으로 정 전 사장 선임과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진제공=한국서부발전>

◆국민경제 이바지?..공기업 사장 ‘역할론’ 물거품

한편, 서부발전은 김 사장이 낙점되기 전 여러 사장 후보들이 검토됐다. 하지만 신임 사장 후보자였던 김 본부장이 검찰에 체포되는 등 공기업 업무 기강이 해이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더욱이 내부 출신 사장 후보군에 대한 비리 의혹이 끊이질 않으면서 서부발전 사장 인선이 지연되자 외부출신을 사장으로 선임한 것이라는 업계의 분석도 나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올해 3월8일 취임한 김 사장은 CEO로서 인사조직·윤리경영·설비운영·기술개발·신성장사업개발 등 경영 5대 분야 혁신을 추진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수장 자리에 오른 김 사장은 경영혁신을 통해 ▲안정적 전력공급 등 기본 업무의 역점 관리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발전기술 선도 ▲사회적 책임완수 등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혁신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을 이행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공기업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부발전은 비리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관리 감독체계가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공기업 사장 ‘역할’이 물거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 사장으로 간부급들의 전체적인 혁신을 이루고 만성화된 도덕 불감증과 업무태만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결국 비리 의혹만 키운 셈.

따라서 김 사장이 외친 ‘진정한 혁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잇단 비리 의혹과 관련한 검찰 리스크를 털어내는 동시에 신뢰도 회복이 관건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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