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소액연체자 지원:형평성 논란 vs 실효성 의문→목적에 맞는 정책 이행 필수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사회 초년생 A씨는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대학시절 학업에 매진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학자금 대출은 많이 갚은 상황이지만, 정부가 장기소액연체자들의 채무원금을 탕감하거나 유예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감이 극에 달했다. 남들은 스펙 쌓기도 모자랄 시간에 성실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까지 병행한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바보’가 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 A씨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악착같이 벌어서 매월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실하게 빚을 상환하는 채무자는 바보가 되고 나태하게 버틴 사람들은 용서해주는 사회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소득은 있으나 생계비를 제외하면 채무상환이 어려운 경우 악순환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듯이 정부는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1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10년 이상 갚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줄여주거나 없애주는 것. 정부는 금융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사람을 바보 만드는 정책’이라는 쓴소리도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장기소액연체자 채무조정, 신청률 저조에 내년 2월 말까지 접수 연장

소액의 생계형 빚을 오랜 기간 동안 갚지 못한 채무자들을 돕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사업이 기존 8월 말에서 내년 2월 말까지 연장돼 접수를 받는다.

28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이달 10일까지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신청자 수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자 2만5000명, 민간채무자 2만8000명 등 총 5만3000명이다.

장기소액연체자란 1000만원(원금 기준)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채무자 중 상환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의미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책을 발표한 뒤 10일까지 총 31만1000여명의 장기소액연체 채무자에 대해 채무감면·면제 또는 추심중단 혜택을 제공했다.

이 가운데 국민행복기금 내 상환미약정 채무자 중 소득, 재산, 출입국기록 정보를 일괄 확인해 상환능력 심사를 통과한 29만4000명이 즉시 추심중단 혜택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장기소액연체자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이 5만3000명 수준에 그치면서 금융당국은 전체 장기소액연체자 규모를 감안할 때 신청률이 아직 저조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아직 장기소액연체자 채무조정 제도를 몰라 신청하지 못한 차주가 많을 것으로 예상, 접수기한을 당초 이달 말일에서 내년 2월28일까지 6개월 연장하고 홍보강화에 돌입한다.

금융위는 원금 1000만원 이하 채무를 10년 이상 연체한 전체 채무자 규모를 119만명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상환능력이 있는 채무자나 다른 정책 수혜자 등을 제외하면 실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정책의 수요자는 30~40만명 가량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장기소액연체자가 전국 43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한국자산관리공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재기를 신청하면 심사를 통해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이 채무에 대한 추심을 즉각 중단하고 3년 이내에 소각해준다.

1차 접수는 기존 일정대로 오는 31일까지 진행하며 상환능력 심사를 통해 지원여부와 지원방법을 확정해 10월 말 통보하고 2차 접수는 내달 3일부터 진행해 심사결과는 내년 3월 이후 통보한다.

또한 금융위는 취약차주들의 신청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신청이 가능한 채무자에게 직접 문자메시지(SMS) 등을 통해 제도 내용과 신청 방법을 안내하도록 금융권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그간 신청자의 48.2%가 제출 서류 간소화를 요망한 것으로 조사됨에 따라 상환능력 확인을 위해 요구하는 서류 중 ‘최근 3년간의 출입국 기록’은 다른 소득 심사지표를 확인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다만 국세청 소득금액 증명, 지방세 과세 증명, 건강보험료 납부 증명, 국민연금 납부 증명, 예금잔액 증명, 신용카드 사용내역, 주택임대차 계약서는 신청 시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위는 이번 대책처럼 한시적인 채무매입 제도 외에도 장기소액연체자에 대한 상시적 지원체계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제도를 몰라서 신청하지 못한 채무자나 소득·재산요건에 아깝게 미달한 경우, 연체 기간이 10년에 조금 못 미치거나 원금이 1000만원을 약간 초과한 채무자 등에 대해서도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는 상환능력을 갖추지 못한 차주의 채무는 금융권의 ‘소멸시효 완성’ 기준이나 개인파산을 통해 자연소각을 유도하고 일부 상환여력을 갖춘 경우 신용회복위원회나 개인회생 등의 채무조정을 통한 채무감면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접수 마감을 앞둔 지금까지도 신규 접수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제도 인지도가 높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어떠한 제도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원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지원접수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간만 연장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제도 홍보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보다는 정책 대상자들에게 관련 정보가 실제로 전달될 수 있도록 맞춤형 홍보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사진=뉴시스>

# 장기소액연체자 ‘빚 탕감’ 나선 정부..그러나 ‘도덕적 해이’·‘형평성’ 논란

이처럼 정부가 장기소액연체자 채무 탕감 정책에 돌입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금융보호 정책에 공감하는 한편 성실 채무자들의 상실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착실히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채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

금융당국의 기조에 따라 서민에 대한 금융보호 강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성실하게 이자를 갚는 자에게는 상실감 내지 오히려 “내가 안 갚으면 정부가 해결해주겠지” 하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도 홍보 부족과 까다로운 지원요건 등으로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저소득 채무자에겐 신청 문턱이 높다.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지역본부 26곳,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43곳을 방문하거나 캠코가 관리하는 온크레딧 홈페이지에 접속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엄격한 지원요건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장기소액 연체자 지원 대상은 재산이 없고 중위소득의 60% 이하인 채무자다. 1인 가구일 경우 지난해 월 소득이 99만원 이하여야 신청이 가능한 수준이다.

지원서류도 단순 재산 확인서류, 소득증빙서류, 거주지 임대차 계약서, 최근 3년 간 출입국 사실 증명서 등 8~9종에 달한다.

아울러 채권 보유 기관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불편 및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국민행복기금이나 민간 금융회사·공공기관에 빚이 있는 채무자는 캠코 지부나 서민금융지원센터에서 모두 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

반면 신용회복위원회에 약정을 맺은 채무 상환자는 센터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업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은 2017년 11월 말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체 지원 대상을 159만2000명(신용회복위원회 채무 상환자 2000명 제외)으로 추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실제 채무자 수가 아니라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 규모로, 이는 한 사람이 은행과 카드회사 두 곳에서 각각 1000만원 미만 대출을 받아 10년 넘게 갚지 못했다면 지원 대상이 두 명이라고 집계한 것.

결국 금융당국은 정책 발표 반년이 넘어서인 최근에야 뒤늦게 사실을 파악해 통계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빌리은행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25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실질적인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주빌리은행>

# 시민단체,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정책 취지 및 허술한 관리 감독 지적

그러나 정부의 형식적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주빌리은행을 비롯한 채무조정 시민단체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위의 형식적인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책의 부실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유순덕 금융복지상담사협회 회장은 재기지원 센터에서 잘못된 상담으로 신청이 거부된 사례를 공개했다.

실제로 콜센터 직원이 국민행복기금에 4년 동안 상환하고 있는 일용직 근로자 A씨의 신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신용정보사의 추심직원에게 안내한 사례가 있었다.

유 회장은 “채권을 소각해야 할 캠코의 재단이 탕감 대상이 되는 채무자를 채권을 회수하는 신용정보회사에 채무를 안내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업시작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센터의 상담사에 대한 캠코의 허술한 관리 감독 문제도 제기됐다.

김미선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콜센터 상담사는 채무자를 제일 먼저 응대하는 위치에 있는데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교육은 한 번뿐이며 교육내용도 기초상담에 불과하다”며 “잘못된 안내로 신청이 거절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캠코의 교육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 그러나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공감하는 분위기다.

비록 빚을 성실히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무조건 ‘버티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갚을 능력이 없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절실한 제도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관계 부처와 채무 연체자의 실질적인 재기를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저소득 채무자가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살피는 후속 조치를 진행해야 하며 정책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수행해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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