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생활고에 시달린 서민들이 푼돈과 생필품을 훔치다 붙잡히는 생계형 범죄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엄격한 처벌만 강조하면 사회적 분노만 키워 중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경찰은 경미한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의 사정을 고려해 처벌을 감경하는 경미범죄심사 제도를 도입, ‘현대판 장발장’들을 구제하고 있다.

실제로 생계형 범죄자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긴급복지원 대상자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비록 부족하지만 사회가 마련한 복지제도에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한다.

지난달 7일 오전 11시48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새마을금고 용흥지점에 강도가 침입해 현금 46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사진은 새마을금고 용흥지점에 침입한 강도의 모습. <사진=뉴시스>

◆택시강도로 돌변한 40대 영화감독, “생활고에 시달려 감옥가고 싶어”

택시 기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현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40대 영화감독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기장경찰서는 특수강도 혐의로 김모 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김씨는 이날 오전 2시20분께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곰내터널 방향 약 1km 지점을 달리던 택시 안에서 흉기로 택시 기사 박모 씨를 위협하고 현금 3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김씨는 가방에 있던 흉기를 꺼내 들고 “차를 한쪽으로 세워라, 있는 돈을 다 달라”고 말하며 박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현금 3만원을 빼앗은 후 터널 중간지점에서 하차해 비상통로에 흉기를 버리고 도망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터널 안에서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감옥에 가고 싶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는 김씨는 작품이 끊기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정신과 진료도 받아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에 경찰은 김씨의 범행동기 등을 보강 조사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감옥 가려고 일부러 절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감옥이 최후의 도피처냐” “살기 너무 힘들다” “남일 같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렵다는 반증이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어려운 생활고를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부산본부세관은 절도 혐의로 소속 직원 A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7월 초 부산북부세관 압수품 보관창고에 있던 밀수담배 1만9060갑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담배는 세관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로 수출된 국산담배를 다시 밀수입하는 방법으로 국내로 반입한 일당을 검거하고 압수한 것이다. 당시 국내로 밀반입된 담배 158만갑 중 부산 세관은 25만갑을 압수해 부산북부세관에 보관중이었다.

A씨는 개인회생 변제금과 생활비 등으로 생활고를 겪다 압수물품에 손을 댔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아울러 같은 달 7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경북 포항의 한 새마을금고에 침입해 수백만원을 뺏어 달아난 강도가 범행 11시간 만에 자수했다.

경북 포항북부경찰서에 따르면, 강도 용의자 B씨는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한 새마을금고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직원들을 위협한 뒤 현금 456만원을 가지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경찰조사에서 “생활이 어려워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15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된 50대 남성이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정을 오치2동 주민센터에 공유했다. 경찰은 주민센터와 함께 이 남성의 재기를 돕기로 했다. <사진제공=광주 북부경찰>

◆경미범죄 96% 선처..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한편, 경찰이 경미한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의 사정을 고려해 처벌을 감경하는 경미범죄심사 제도를 통해 대부분 선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경미범죄심사위원회 개최 건수는 총 167건으로 이 가운데 160건(95.9%)을 선처했다.

실제로 올 1월 경기도 한 노인복지회관에서 24만원 상당의 전기밥솥을 훔친 C씨가 절도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경찰은 C씨가 102세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데다 고령이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다는 사정을 참작해 즉결심판으로 처분을 감경해줬다.

즉결심판은 20만원 이하의 벌금·과료나 30일 미만 구류에 해당하는 경미한 위법행위에 대해 경찰서장이 청구해 처벌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3월 한 마트에서 세제와 조미료 등 1만2000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D씨는 갑상선 수술로 인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활비가 모자라 순간적으로 범행했다는 점이 참작돼 훈방됐다.

이처럼 경미범죄심사 제도는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초범 피의자의 사정을 참작해 구제해주는 제도로 형사 입건자는 즉결심판으로 감경하고 즉결심판 대상자는 훈방처분으로 선처한다.

실제로 1∼3월 형사입건자 147명 중 143명(97.3%)이 즉결심판으로 감경됐고 즉결심판 대상자 20명 중 17명(85%)은 훈방됐다.

심사 대상 사건은 사안이 경미하고 피의자가 고령이거나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로 재범 우려 등을 고려해 감경 여부를 결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를 조사해 선처할 수 있는 피의자는 선처함으로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법을 집행하고 있다”라며 “간혹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맞는 피의자도 있어 이들을 선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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