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판매원에게 대리수술..환자 심정지에 의한 뇌사상태
수술 전 동의서 서명 위조·진료기록 조작한 간호사 등 7명 송치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최근 강원대병원 수술실에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 보조인)가 환자 수술부위를 봉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불법 대리수술로 인한 의료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 등을 조작한 전문의와 간호사 등이 검거되면서 대리수술 관행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

이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불필요한 분쟁과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설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기기 판매원이 수술실에 입장하는 CCTV 영상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정형외과 전문의, 의료기기 영업사원에 대리수술 시켜 환자 뇌사

부산 영도경찰서는 의료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정형외과 원장 A씨와 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 B씨, 간호사 등 7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10일 부산 영도구 자신의 정형외과에서 환자 C씨의 어깨 부위 수술을 B씨와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대신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대리수술로 인해 C씨는 심정지에 의한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병원 원무부장은 환자에게 수술 전 동의서를 받지 않은 사실을 숨기려고 환자의 서명을 위조해 동의서에 입력했고 간호조무사는 진료기록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병원을 압수수색해 수술실 외부 CCTV를 확보하고 이들의 범행을 입증했다.

해당 CCTV에는 이날 피해자가 수술장에 들어가기 10여분 전쯤인 오후 5시32분께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있다. 이후 의사는 수술 중간에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다가 20분도 되지 않아 수술실을 뜨는 장면이 담겨있다.

경찰은 “A씨가 외래 환자를 봐야 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수술 중간에 들어갔다가 나와버렸다”면서 “수술 종료 후에는 환자의 회복 상황을 의사가 체크해야 하는데 바로 퇴근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은 B씨가 이전에도 해당 수술실에 9차례 출입한 영상을 확보해 대리수술 여부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영업사원이 기기 조작방법에 대해 잘 알고 해당 의사를 상대로 계속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의 요구에 응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의료기기 판매사원이 기기 설명을 넘어 수술을 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보건복지부에 대리수술과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법제화해달라며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경찰은 “대리수술 제보가 확인될 경우 제보자에게 검거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으므로 국민의 적극적인 제보가 필요하다”면서 “다른 병원에서도 대리수술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유사사례가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한의협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의할 협의체 즉각 구성해야”

한편, 의료계가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제화에 앞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 이하 한의협)가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지난달 23일 한의협은 성명을 통해 “수술실 내 CCTV 설치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빠른 시일 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최근 국립대병원 간호사가 환자의 수술부위를 직접 봉합하고 수술실에서 양의사들이 간호사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성희롱과 폭언, 폭력적인 행동을 가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며 “의료인 단체로서 모든 의료기관의 응급의약품 의무비치와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조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2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정성균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국민들의 알 권리의 측면도 있지만 개인정보 공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며 “수술이라는 큰 의료적 치료를 받는 상황을 노출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수술실 CCTV는 지금도 많은 의료기관이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개인 정보가 너무 많이 노출돼 환자들이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수술 장면 공개를 꺼릴 수도 있다”면서 “의사와 국민 양쪽 모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의협은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충분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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