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잔소리·가사노동 스트레스 불편→그래도 행복의 시작은 가족이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명절인 추석을 맞아 귀성객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5월 직장을 그만둔 A씨는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명절이 두렵기만 하다. 며칠 전 “이번 명절은 언제 내려오냐”는 부모님의 연락에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상황이지만 A씨를 주제로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불보듯 뻔한 일. 특히 이번 추석에는 대기업에 취업한 또래 친척과 비교 당할 생각을 하니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즐겁고 오랜만에 가족·친척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명절이 어느덧 가족과 친척간의 정보다는 사생활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이 추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풍성하고 흥겨운 명절이다.

가족의 정을 나누고 화합을 다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최대 명절이지만 고향을 찾느라 분주한 민족 대이동의 모습이 사라질 전망이다. 직장인과 구직자의 절반이 올해 추석 연휴에 고향 방문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특히 ‘명절 오지랖’은 취업준비생이나 30대 미혼남녀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 지 오래다. 친척 어른들 입장에서 그 오지랖은 애정과 관심이라 항변하지만 이들에겐 그저 잔소리이자 오지랖일 뿐이다.

지난 21일 대구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대기실에서 귀성객들이 고향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불청객’이 된 명절 피하고픈 취준생·직장인

취업난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2030세대는 연애와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불리면서 이들에게 추석은 ‘피하고 싶은 날’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준생 2명 중 1명은 이번 추석 친지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지들과의 만남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였다.

22일 알바몬에 따르면, 한가위를 앞두고 ‘추석 스트레스’를 주제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학생 및 취준생, 직장인 등 성인남녀 2229명 중 46.7%는 ‘올 추석 친지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응답군별로 ▲취준생 52.8% ▲직장인 44.8% ▲대학생 36.2% 등으로 집계됐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혼인 여부에 따라 미혼(49.4%)이 기혼(24.9%)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추석 친지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복수 응답)는 ‘친지들과의 만남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43.8%)가 1위에 꼽혔다. 이어 ‘현재 나의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35.3%), ‘평소 친척들과 왕래가 없어서’(21.1%), ‘혼자 쉬려고’(20.2%)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상당수의 성인남녀가 추석 가족모임 후 불편과 후회를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추석에 친지모임에 참석했었다고 답한 62.3%에게 ‘친지모임 참석 후 이를 후회한 적이 있느냐’고 조사한 결과 명절 친지모임에 참석했던 성인남녀의 67.7%가 ‘후회했다’고 답했다.

응답군별로 살펴보면 남성(54.2%)보다는 여성(77.2%)의 비율이 23%포인트 높았다. 또한 미혼(67.2%)보다는 기혼(70.6%)의 후회 경험이 높았으며 직업별로는 취준생이 74.5%로 직장인(69.4%)이나 대학생(49.4%)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이 명절 친지모임에 참석한 것을 후회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덕담을 가장한 친척어른들의 잔소리와 참견’(53.8%)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또 ‘주머니 사정으로 넉넉히 챙기지 못한 용돈과 선물’(29.3%), ‘겉도는 대화 등 부담스럽거나 친밀하지 못한 친지들 관계’(22.2%), ‘제사음식 준비, 설거지 등 너무 많은 일거리’(15.1%) 등이 차례로 꼽혔다.

이 밖에 응답자의 52%는 명절 전후로 명절증후군을 겪어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기혼여성의 81.6%가 명절증후군을 겪었다고 응답해 전체 응답군 중 확연히 높은 비중을 보였다. 반면 기혼남성은 67.6%, 미혼여성 55.0%, 미혼남성 40.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명절증후군의 형태는 ‘스트레스’가 응답률 48.5%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의욕상실’(33.7%), ‘피로’(25.3%), ‘소화불량’(24.5%), ‘두통’(10.4%) 등의 증상을 겪었다는 응답도 이어졌다.

이처럼 기혼여성의 81.6%가 명절증후군을 겪었다고 응답하면서 바쁘게 사회생활 하는 며느리의 비애도 숨어 있었다.

이와 관련, 남녀 모두 여성에게만 쏠리는 가사노동을 개선해야 할 명절 성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1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지난 16일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 추석특집’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은 ‘명절에 성차별적인 언어나 행동(관행)을 듣거나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 응답자의 70%도 ‘있다’고 답변했다.

‘명절에 그만했으면 하는 성차별적 언어나 행동(관행)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라는 주관식 질문에서는 복수응답을 통해 1275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응답자들은 남성 쪽 집안만 높여 부르는 ‘시댁’을 여성 쪽 집안을 부르는 ‘처가’와 마찬가지로 ‘시가’라고 바꿔 부르자고 했다.

또한 ‘친할머니’·‘외할머니’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을 ‘할머니’로 통일하자고 했다. 이는 아빠 쪽 부모님은 가깝게 ‘친’(親)하고 엄마 쪽 부모님은 멀게 ‘외’(外) 자를 붙인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여자가~’·‘남자가~’로 성을 규정해 말하는 것을 ‘사람이’ 혹은 ‘어른이’ 등으로 상황에 따라 바꿔 써보자는 제안이 많았다. ‘여자가 돼 가지고’, ‘남자가 그러면 안 된다’ 등의 말은 성차별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추석 명절에 겪는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로는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3%를 차지했다.

여성이 꼽은 다섯 가지 성차별 사례는 ▲가사분담(57.1%) ▲결혼 간섭(8.9%) ▲‘여자가, 남자가’ 발언(7.9%) ▲남녀 분리 식사(6.5%) ▲외모 평가(4.7%) 순이다.

남성이 꼽은 1위도 가사분담(43.5%)으로 여성에게 쏠리는 가사분담과 함께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어 ‘여자가, 남자가’ 발언(14.4%), 남성에게 쏠리는 각종 부담(13.3%), 결혼 간섭(6.1%), 제사 문화(4.7%)였다.

특히 남성은 집, 연봉 등 남성에게 쏠리는 금전 부담과 힘쓰는 일, 운전, 벌초 등의 명절 노동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 삭막한 현실 속 미소 짓게 하는 순간

그러나 정마저 사라진 각박한 현실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추석 명절은 잠시나마 정신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도록 휴식을 선사하는 동시에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그간 소홀했던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매년 연로해지는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치료나 시술이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추석 연휴를 통해 다녀오지 못했던 가족여행이나 부모님을 위한 효도여행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추석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로, 추석이 되면 한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든 때이다. 추석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추석은 음력 8월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한다. 한문으로는 ‘가배’라고 한다.

옛날부터 추석에는 새로 나온 과일과 곡식으로 상을 차려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성묘를 했다.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놀이를 즐겼다.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에서 만나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회포를 푸는 중로상봉을 하기도 했다.

추석은 풍성함을 감사하고 나누는 날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 이 때문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왔다.

추석 전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송편을 빚는 풍경은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우리 문화의 원형이다. 한민족 특유의 전통유산이면서 축제이기도 하다.

예쁜 송편을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정성을 다해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 17일 서울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어린이들이 명절 차례상 체험과 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뉴시스>

# 달라진 추석 풍속도..그래도 가족, 정겨운 한가위

최근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를 지향하면서 추석연휴에 여행 계획을 짜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친척들이 귀향해 한 자리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명절의 전통적 의미를 버리고 ‘특별 휴가’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세대별로 추석을 맞이하는 태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전통적 추석 풍속도를 대체하는 대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추석 연휴 아침부터 각 지역 친척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연휴 중 언제 갈지 날짜를 정했다. 하지만 점점 전화할 곳도 줄어들고 고향에서 알고 지낸 이들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다.

명절 단골 잔소리인 ‘취업’과 ‘결혼’ 문제도 추석 귀향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면서 고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더 끊기는 모습.

때문에 서로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는 ‘돈’이나 ‘말’, ‘일’ 등 예민한 부분은 조심하되 힘든 점이 있다면 가족과 소통하며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노동 역시 가족 모두가 분담한다면 명절증후군이나 스트레스 없는 추석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및 친지들이 만족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만 있다면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예부터 내려오던 우리 조상들의 뜻과도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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