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정혜진 기자]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의 오너리스크가 재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후 1년 만에 부사장 자리까지 오르며 ‘초고속 승진’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그룹 안팎으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까닭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 부사장을 전면 내세웠지만 김 부사장 역시 ‘부전자전’ 오너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 전 회장이 비서 성추행 의혹 등으로 불명예 퇴진을 안게 됨에 따라 김 부 사장의 초고속 승진은 경영 승계 작업을 앞당기기 위한 수순으로 보여졌지만, 그러나 김 부사장은 1975년생으로 젊은 나이인 데다 지난 3년간 뚜렷한 경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김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에는 아직 연륜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물론, 능력과 경험이 입증되지 않은 고속 승진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현실화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2018년 DB손해보험 TV광고 ‘차보다 사람이 먼저’ <사진=DB홈페이지 캡쳐>

◆공정위, DB그룹 계열사 간 수백억 ‘부당지원’ 민낯 드러나

DB그룹(옛 동부그룹) 농업사업을 담당했던 팜한농 등이 자금난으로 퇴출 위기에 몰린 당시 계열회사에 낮은 금리로 수백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부당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부당한 방법으로 계열사를 지원한 팜한농과 동화청과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과징금 2억2500만원, 1억800만원을 부과하고 이들 회사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동부팜에도 1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앞서 팜한농은 지난 2016년 4월 LG그룹에 계열편입되기 전 DB그룹 계열사로 있으면서 농업사업부문을 담당했다. 팜한농은 농업부문 사업 확장을 위해 2011년 1월 농산물 도매시장법인인 동화청과, 2012년 2월 농산물 유통회사인 동부팜을 각각 인수했다.

하지만 동부팜이 DB그룹에 인수된 후 대형 거래업체와 거래가 끊기면서 매출이 급감하는 한편 재무부실로 금융기관 대출이 불가능해지는 등 경영난을 겪게 된 것. 실제로 당시 연매출 규모를 보면 2011년 503억원에서 2012에는 327억원으로 급락했다.

이에 동부팜은 팜한농에 자금지원을 요청해 팜한농은 동화청과와 함께 4년간 567억2000만원의 자금을 빌려주거나 회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팜한농은 동부팜에게 2012년 1월~12월 5차례에 걸쳐 77억원을 낮은 금리(5.43~5.66%)로 대여하고 2014년 5월~2016년 2월 22차례에 걸쳐 310억2000만원 규모의 동부팜 발행 사모 회사채를 저금리(5.07~5.76%)로 인수했다.

동화청과의 경우 동부팜에게 2012년 12월~2015년 12월 총 12차례에 걸쳐 별도의 담보없이 180억원을 저리(5.5~6.9%)로 빌려줬다. 2000년 1월 설립한 동부팜은 토마토, 파프리카를 주로 취급하던 청과물 유통사업자였다.

이처럼 지원행위를 통해 동부팜이 제공받은 금리를 보면 5.07~6.9% 금리는 정상금리(9.92~11.8744%)보다 최소 30.4% 이상 낮은 수준이었다. 즉, 동부팜은 금리차액인 16억7000만원 규모의 경제상 이익을 제공받은 셈.

결국 동부팜은 부당지원을 받아 매출 하락세를 회복(2012년 327억원→2013년 186억원→2014년 247억원)하고 영업적자 규모를 감소(2012년 22억원→2015년 9억원)시키는 등 경영실적이 개선됐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동부팜이 계열사 지원을 받고 경영실적이 개선돼 시장에서 사업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부당지원이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를 침해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에서 퇴출됐어야 할 부실기업이 대기업집단 내 소속 회사들의 대규모 자금 지원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며 “대기업집단이 부실계열사 지원을 통해 그룹을 동반부실화 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제재했다”고 말했다.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 <사진제공=DB그룹>

◆‘성추행 혐의’ 안고 씁쓸히 퇴장한 김준기, 사임 후에도 ‘부당지원’ 골머리

더욱이 문제는 DB그룹 계열사 간 수백억 ‘부당지원’이 김 전 회장 임기 중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김 전 회장이 사임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당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 전 회장의 도덕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장남인 김 전 회장은 1969년 고려대 재학 중 미륭건설을 창업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금융, 전자, 제철, 석유화학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DB그룹을 세운 ‘창업 1세대’다.

2005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DB그룹 회장이 된 김 전 회장은 그룹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그룹명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특히 DB그룹을 한때 재계 순위 10위권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해방세대에서 기업을 10대 그룹으로 일궈낸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이 같은 경영활동에도 불구하고 성추문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 전 회장 비서로 근무했던 A씨는 2017년 2월~7월 김 전 회장에게 상습적으로 추행을 당했다며 같은 해 9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 전 회장이 미국에 출국한 탓에 차질이 생겼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건강 악화로 질병 치료 차 미국으로 출국했고, 경찰의 거듭된 소환 요구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이 3차례에 걸친 소환에 불응하자 경찰은 결국 법원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다. 또 외교부에 김 전 회장 여권을 무효화해줄 것을 신청,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구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외교부를 상대로 “여권 발급 제한과 여권 반납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김 전 회장의 미국 비자는 올해 1월 기간이 끝났다. 여권 무효화로 김 전 회장은 사실상 불법체류자 신세지만 현재까지도 미국에 머물러 있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이 강제 압송되거나 자진 귀국 시 수사를 다시 시작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거나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소환 불응과 여권 반납, 비자 만료 등에도 미국에서 버티는 모습은 도피성 출국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사임할 당시 “개인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DB그룹 회장직과 계열회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며 “특히 주주, 투자자, 고객, 그리고 DB그룹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이 전부였다.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 <사진=뉴시스>

◆지분승계 과정 의혹 압박 나선 금융노조..김남호 부사장, 주식 부당매도 수면 위

DB그룹은 김 전 회장의 사임 여파로 그룹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영을 쇄신하는 등 책임경영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김 전 회장의 장남 김 부사장은 올해 1월 DB손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7년 1월 상무로 승진한 후 1년 만에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한 것.

김 부사장은 2009년 동부제철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며, 2013년 동부팜한농(현 팜한농)에서 2015년 DB금융연구소(현 DB생명) 부장으로 이동하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너리스크는 김 부사장의 발목도 잡았다. 김 부사장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보유 주식을 매각한 혐의를 받으면서 부사장으로 취임 3개월 만에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 부사장은 바이오업체 차바이오텍이 관리종목으로 편입되기 전 보유 주식을 모두 처분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4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부사장이 차바이오텍 주식을 매각한 것은 차바이오텍이 4년 연속 적자를 내 금감원 조사를 받는 시점과 맞물려있다”면서 “상식적으로 내부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주장했다.

차바이오텍은 올 3월 2017회계연도 한정 감사의견을 받았으며 같은 날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특히 김 부사장은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의 사위로 ‘특수관계인’이다. 김 부사장은 2월 초 보유하고 있던 차바이오텍 주식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중요관계인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다. 자본시장법 제174조에 따르면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를 명시하고 있으며 제443조에서는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하면 10년 이하 징역이나 부당이득금의 2~3배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금융노조는 “지난해 12월 금감원이 감리를 예고한 만큼 차바이오텍의 부실을 특수관계인인 김남호 부사장이 몰랐을 리 없다”며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면 일반 투자자는 정보 비대칭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과 2~3배 벌금을 받도록 돼 있다”면서 “김 부사장을 비롯해 차병원 관련 공모자들을 금감원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은 김 부사장의 DB금융그룹 지분승계 과정에서 부정이 없었는지 그룹 전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DB금융그룹 측은 “김 부사장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적이 결코 없다”면서 “감독기관이 조사하면 명확한 결과가 나올 것인데도 차바이오텍 주식 매각 건으로 DB금융그룹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성추행 아버지’ 흔적 지우고 ‘초고속 승진자’ 능력 발휘할까?

계열사 부당지원, 비서 성추행 의혹 등으로 ‘존경받는 창업주’에서 ‘파렴치한 창업주’ 오명을 뒤짚어쓰고 결국 불명예 퇴진을 해야했던 김 전 회장.

그룹 이미지 쇄신의 일환으로 동부를 버리고 DB그룹으로 도약을 꿈꾸며 발빠르게 김 전 회장의 장남 김 부사장을 선두에 내세웠지만, 아버지의 급작스런 성추행 퇴진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것 아니냐는 시선은 시작부터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버지에 이어 크고작은 논란에 휘말리며 여전히 그룹 미래에 발목을 잡고 있는 가운데 국감을 앞두고 옛 동부의 계열사 부당지원이 공정위에 적발되면서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기엔 김 부회장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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