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폭언·폭행에 노출된 乙..관련 법안 국회통과·실효성 있는 근절대책 절실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대한민국 A기업 B씨의 고백 : ‘집에서 영원히 잠들게 해줄까?’ ‘인원을 한 명 줄여야 하는데 oo씨를 잘라야하나 아니면 oo씨 자를까?’ 국내 A기업에 근무 중인 B씨는 이같은 말을 직장상사에게 하루에 한 번 꼴로 듣고 있다. 직무 특성상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날이 대부분인 가운데 B씨는 회사 업무보다 운전기사 업무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실정. 하지만 관련 업계에선 ‘큰 손’으로 불리며 명성을 탄탄히 쌓은 상사에게 얼굴 한 번 찌푸릴 수조차 없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중요한 미팅에 운전기사로 동행하던 중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 B씨의 직장상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들지 못하며 연신 굽신 거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 약자에게만 강하고 강자에게만 약자의 행세를 하는 그 모습에 B씨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장면 <사진=뉴스타파 영상 캡쳐>

최근 국내 프랜차이즈 갑질을 비롯해 기업 오너들의 갑질, 직장 내 상사의 갑질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언·폭행 사건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 내 불평등 구조와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 등이 고군분투 중이지만 직장 내 ‘을’들은 ‘갑’이 행하는 직무 외에도 차별이나 협박, 성희롱, 불합리한 대우 등 여전히 ‘갑질’에 노출돼 있는 실정.

더욱이 제보자 및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미흡하고 가해자의 보복성 불이익 등 또한 만연하게 행해지면서 갑질 행태를 근절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멍든 몸과 마음, 보상은 누가 해주나

국내 유명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 회장이 최근 전 직원 폭행 영상 등이 공개돼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 1일 양 회장 계정으로 추정되는 페이스북에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직원과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과문이 게재됐다.

양 회장은 해당 글에서 “기업을 운영해 오며 독단과 오만한 행태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서 “그저 회사 조직을 잘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저의 독단적인 행동이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됐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회사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한국미래기술 회장 등 일체의 직에서 물러나고 회사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 향후에도 임직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직분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양회장은 “회사 직원들이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비겁자’로 지칭되고 있는 현실에 좌절감‧비통함을 느낀다”며 모든 잘못은 본인에게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일에만 전념해 온 직원들에 대한 비난을 거두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는 또 보도와 관련된 모든 사항에 관해 책임을 지겠다면서 모든 직을 내려놓고 회사를 떠나며 이번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양 회장 사과문에도 여론은 냉담하다. 온라인상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처벌받기 바란다’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상황.

뿐만 아니라 양 회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한 상태다.

앞서 양 회장은 지난달 30일 직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영상이 공개된 이래 각종 가혹행위, 엽기행각들이 알려지며 논란·물의를 일으켰다.

양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1일 “직장내 괴롭힘방지 피해자보호법을 정기 국회 내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정책조정회의에서 “한국미래기술 회장이라는 사람이 직원을 폭행하고 일본도로 닭을 죽이는 동영상이 배포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며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직장 내 갑질은 전근대적 문화이자 없어져야 할 적폐”라며 “임원이라고 해서 부하 직원에게 욕설과 폭행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장문화 개선을 위해 기업 내 자정능력이 시급하다.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다”며 “고용노동부는 행정지도 등 제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도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입법 노력을 다하겠다”며 “이미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후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강병원 의원이 제출한 직장내 괴롭힘방지 피해자보호법을 정기 국회 내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정애 의원도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이상의 갑질 중의 갑질”이라며 양 회장을 질타했다.

한 의원은 “닭 잡는 워크숍은 실제로 사람 잡는 워크샵이었다”면서 “한국미래기술이라는 좋은 단어를 다 가져다 쓴 사업장 내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고용부는 지금 당장 특별감독을 해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은 9월 이완영 의원이 잡아 계류돼있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0월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내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괴롭힘 법통과) 기자회견에서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직장 갑질, 을들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갑질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면서 부도덕한 행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3년간 갑질횡포를 부리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피의자가 1만5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현재까지 경찰 ‘갑질행위 특별단속’에 1만4885명이 검거됐다.

연도별·분야별로는 ▲2016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 특별단속’으로 7663명 ▲2017년 ‘소상공인·비정규직 상대 갑질횡포 특별단속’으로 7025명 ▲2018년 ‘공공분야 갑질횡포 특별단속’으로 197명의 피의자가 적발됐다.

‘갑질횡포자’가 적발된 지역은 서울이 4381명(29.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도 2879명(19.3%), 부산 2283명(15.3%), 대구 883명(5.9%), 경남 735명(4.9%), 광주 621명(4.2%), 인천 508명(3.4%) 순이었다.

다만 올해 7월부터 8월까지 시행된 ‘공공분야 갑질횡포 특별단속’에서는 대구 38명, 서울 31명, 경기 30명, 경남 16명, 충남 15명 순으로 집계됐다.

갑질 유형으로는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채용비리 ▲갑질 성범죄 ▲인허가권을 가진 공공기관의 입찰 비리 ▲하도급 계약과 납품 비리 ▲악의적 소비자(블랙컨슈머)의 기업 협박·금품 갈취 ▲사회적 약자 대상 갑질이 주를 이뤘다.

소 의원은 “매년 약 3개월간 한시적으로 단속했는데도 이렇게 많은 갑질횡포자가 검거된 것은 우리사회의 갑질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만연돼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며 “갑질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는 만큼 한시적 특별단속을 상시적 단속으로 전환해 갑질횡포의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처럼 갑질은 사회 곳곳에 만연하지만 피해자의 스트레스와 처우에 대한 사회적인 보호는 미흡한 실정이다.

실제로 ‘땅콩회항’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전 사무장은 사건 후 우울증 등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 지난해 5월 복직했다. 하지만 팀장에서 일반승무원으로 강등되고 이후 계속된 스트레스로 최근 양성종양 제거 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직장 내 갑질을 비롯한 스트레스 상황은 직접적인 신체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7년 126명이 정신질환 판정을 받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4건에 불과했던 2008년에 비해 9년새 5.3배나 증가한 셈이다.

2017년 인정받은 126건의 정신질환 산재 중에는 우울증이 52건으로 가장 많고 적응장애 32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1건, 급성 스트레스 장애 8건, 불안장애 1건 순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직접적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66.3%에 달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 등의 ‘정신적인 공격(24.7%)’과 업무 외적인 일을 시키거나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등의 ‘과대한 요구(20.8%)’ 순으로 높았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상담 경험이 없는 노동자는 66.7%에 달해 대부분 속으로 삭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최저임금 위반 제보 ‘놀부회사’ 명단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경자(왼쪽 두 번째)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직장갑질 119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려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의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 우리 회사 갑질 점수는?..‘직장인 갑질지수’ 나온다

한편,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인들이 겪은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직장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측정하는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 지수’를 만든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에서 임금 미지급과 부당지시, 괴롭힘을 비롯한 갑질과 불합리한 상황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에게 법률자문을 하는 민간공익단체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신고받은 갑질 사례를 바탕으로 10개 영역 75개 문항으로 구성된 갑질지표를 마련했다.

지표 마련을 위해 5개월 동안 전문가들의 자문과 토론을 거쳤다. 11월 중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갑질지표를 조사할 예정이다. 나이·성·지역·근무형태별로 분류한 갑질지수도 조사한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12월에는 업종별 갑질지수를 조사해 갑질이 심한 기업과 일하기 좋은 기업도 발표하겠다”며 “내년 1월에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들어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갑질 점수를 확인하고 다른 기업과 비교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직장갑질119는 1년 동안 이메일 4910건, 카카오톡 1만4450건, 밴드 3450건을 포함해 총 2만2810건의 갑질 신고·상담을 받았다.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를 비롯해 146명이 무료봉사로 상담에 참여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1년 동안 한림대성심병원 장기자랑 갑질에 이어 마사지 갑질·닭사료 갑질·김장 만포기 갑질 등 이름만 들어도 황당한 갑질들이 폭로되고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갑질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지속적인 갑질 행위에도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하고 있는 상황. 특히 문제는 사측 내에서 갑질이 해결되지 못하고 언론이나 온라인상 제보를 통해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사내 분위기와 직급의 권력화가 일상인 대한민국 문화에 대한 자정노력이 여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오너리스크, 갑질 경영 등의 윤리 문제가 끊이질 않고 발생하면서 직장 내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와 실효성 있는 근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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