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배우’ 4일 폐암 투병 끝 타계..영화인장으로 업적 기려

영화배우 신성일이 폐암으로 4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사진=뉴시스>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한국 영화역사의 산증인이자 큰 별인 원로배우 신성일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4일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명예 이사장인 신성일은 이날 오전 2시 25분께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故)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끝내 숨을 거뒀다.

고인의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고(故)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사용했으며, 이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고인은 1960∼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로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국민 배우로 이름을 남겼다.

출연작품 편수도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는 1967년으로, 당시 그는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했다.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투병중인 몸을 이끌고 대중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특유의 정정한 모습을 보였던 고인의 갑작스런 이별 소식에 안타까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건강 악화 속에서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한국영화 99주년, 100년의 문턱에서’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영화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올해 3월에는 MBC 교양프로그램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다독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드러낸 바 있다.

배우 고 (故) 신성일. <사진=뉴시스>

아울러 고인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20대 국회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인의 조카다.

유족으로 부인 엄앵란씨와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씨가 있다.

고인은 인기 최절정기였던 1964년 11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씨와 결혼했다.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린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과 팬 등 4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편,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영화계 관계자들이 유족과 구체적 절차를 놓고 협의 중이다. 신영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과 기타 협회 임원진, 영화감독 등으로 공동장례위원장이 구성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6일로 예정돼 있다. 장지는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가옥이 있는 경북 영천 성일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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