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목표값:적정수준 찾기 딜레마→생산자·소비자 물가안정 및 소득보장 논의돼야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 전남 순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A씨는 최근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름 폭염과 태풍, 가을 수확기 잦은 비를 이기고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을 마쳤다는 안도감도 잠시, 정부의 쌀 목표가격 인상이 찔끔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 A씨는 내년 결혼하는 자녀에게 빚을 내서라도 집 한 채를 해주고 싶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A씨는 서울에 거주 중인 동창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쌀을 적극 알리는 한편 직접 찾아가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구입을 부탁했다. 특히 올해 정부가 추진한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에 참여한 A씨는 콩과 보리를 이모작으로 심으면 ‘수익이 좀 더 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이전 벼를 심어왔던 논에 콩을 심었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 A씨는 쌀 농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쌀생산량 조사 결과’에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이 386만8000톤으로 지난해 397만2000톤보다 2.6%감소한 지난 1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정부와 여당이 2018년산부터 적용할 쌀 목표가격을 19만6000원(80kg)으로 결정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지고 있다.

쌀 목표가격은 농업인 등에게 변동직접지불금을 지급하기 위한 기준으로, 변동직접지불금은 쌀값이 하락하더라도 농민의 쌀 수취가격을 목표가격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은 쌀 목표가격 변경 시 수확기 평균 가격만을 고려하도록 돼 있어 농업인의 실질 소득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상황.

특히 5년마다 변경하도록 돼 있는 목표가격도 쌀 80kg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과거 쌀 한 가마에 해당하는 무게로, 쌀 소비가 줄어든 시대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 올해 쌀 생산량 38년 만에 최저..당정, 쌀 목표가격 19만6000원으로

올해 쌀 생산량이 2년 연속으로 400만t에 미달하며 38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쌀생산량 조사 결과’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386만8000t으로 전년(397만2000t)보다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적 냉해 피해가 컸던 1980년 355만t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쌀 생산량은 3년째 감소세다.

쌀 생산량의 감소는 재배면적이 지난해 75만4713ha에서 올해 73만7673ha로 2.3%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논 타(他)작물 재배 지원사업’ 등 영향으로 벼 재배면적이 줄어든 점이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며 낟알 형성 시기의 폭염과 잦은 비도 생산이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반면 쌀 생산량 감소 등으로 쌀값 오름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쌀 20kg의 평균 도매가격은 상품 기준 12일 4만9660원으로 1년 전(3만8500원)에 비해 29% 상승했다.

시·도별 생산량은 전남이 76만6000t으로 가장 많았고 충남(73만2000t), 전북(62만7000t), 경북(53만5000t) 등이 뒤를 이었다.

10아르(a)당 예상 생산량은 524kg으로 전년(527kg)보다 0.4%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낟알이 형성되는 7∼8월에 폭염과 잦은 비가 이어졌고 낟알이 익는 9월에는 일조시간이 줄어 생산량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18년산부터 적용되는 쌀 목표가격을 19만6000원(80kg당)으로 올리기로 했다.

당정은 지난 8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18∼2022년산 목표가격 변경 및 직불제 개편’ 방안에 합의했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1일 쌀 목표가격을 18만8192원(80kg당)으로 제시하고 여기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19만4000원 수준으로 인상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정은 또 중소규모 농가를 배려하기 위해 직불제를 원점에서 재검토, 현행 쌀에 집중된 직불제를 대신해 쌀과 밭 직불제를 통합하고 모든 작물에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민주당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이날 당정협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당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농업인 소득안전망의 촘촘한 확충을 이행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쌀 목표가격 변경과 공익형 직불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쌀 목표가격 정부안은 법 개정 지연으로 인해 현행 법령에 따라 제출할 수밖에 없었지만,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목표가격을 19만6000원으로 인상하겠다”며 “목표가격 논의 시에도 야당과 초당적으로 협력해 농업의 균형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목표가격을 변경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당정은 직불금의 82.6%가 쌀에 편중돼 있어 공급과잉이 발생할 뿐더러 직불금이 대규모 농가에 집중돼 있는 점을 감안해 쌀 수급불균형 해소와 중·소규모 농업인을 위한 직불제도 개편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직불제를 원점에서 재검토 해 ▲소규모 농가에 대한 일정 금액 지급 ▲쌀 직불제 밭 직불제의 통합 ▲직불금 수급자에 대한 농약 사용기준 준수, 영농폐기물 수거 등 의무 부여 등을 포함시킬 방침이다.

아울러 쌀과 밭 직불제를 통합해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동일한 금액이 지급되도록 하고 직불금 지급과 연계해 농약·비료 등의 사용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등 적정 수준의 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당정은 직불제 개편안을 올해 연말까지 확정하고 2019년 관련 법률의 개정을 거쳐 오는 2020년에는 개편된 직불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번 협의 내용은 1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 당정이 함께 하는 농업인의 소득 안정을 위한 노력의 첫 걸음”이라며 “민주당은 목표가격과 농업직불제 개편에 대한 국회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법률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고 농업인의 소득 안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를 비롯한 농업 관련 단체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농정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쌀 목표가 찔끔 인상에 들끓는 농심..소비자단체 “소비자 이익도 보호해야”

그러나 당정이 협의한 쌀 목표가격은 농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20만원대 목표가격과는 간극이 크다.

농민의길(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가톨릭농민회·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쌀생산자협회, 민중공동행동 등은 1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물가인상률을 반영해 쌀 목표가격을 결정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목표가격 추가 인상을 촉구했다.

농민단체들은 “쌀 목표가격 협의 과정에 농업계 입장과 농민의 목소리는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며 “여당과 정부는 농업을 외면하고 농민을 무시했던 지난 정권의 적폐 농정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30년간 농민은 밥 한 공기 200원도 안 되는 쌀값으로 고통받아 왔다”며 “여당은 쌀 목표가격이 직불금 산정을 위한 단순 수치가 아니라 쌀 소득보전 문제와 직결되는 것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농민단체들은 새로운 쌀 목표가격으로 ‘밥 한공기(100g)당 300원’에 해당하는 24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도 민주당 경남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년 전 21만 7719원이라더니 쌀 목표가격 19만 6000원 결정, 철저히 농민 무시한 민주당을 규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민주당은 2012년 10월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쌀 목표가격이 21만7719원은 돼야 한다고 발의한 바 있다”며 “5년 전 물가인상률만 반영해도 21만원이 넘어야하는 쌀 목표가격이 되려 2만원이나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도 국회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쌀 목표가격을 100g당 300원 이상으로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김지식 한농연 회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목표가격을 80kg 기준 18만8192원으로 정했다가 농민들 반발이 거세지자 당정은 19만6000원으로 소폭 올려 생색을 냈다”며 “그러나 이는 농업계가 밥 한 공기인 쌀 100g 300원 이상, 80kg 기준 최소 24만원 이상을 요구한 것과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밥 한 공기의 쌀 100g이 237원으로 껌 값보다 싸고 커피 값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부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 ‘고향세’ 등을 도입한 주요 농업 선진국 사례를 보고 차별화된 농업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회 차원의 움직임도 보인다. 농식품부가 쌀 목표가격을 현행법 그대로 적용해 18만8129원을 국회에 제출하자 6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2019년 예산안 심의에서 여야의원 모두 목표가격에 불만을 표시하며 예산안 심의를 정회했다가 결국 파행을 맞았다.

이에 자유한국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은 18만8192원이라는 쌀 목표가격에 현 정권에 책임을 묻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세웠다. 국회에 제출한 목표가격은 국민과 농민을 기만한 사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한국당은 당론으로 목표가격을 기존가격에 적용됐던 인상률을 반영한 22만∼24만5000원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목표가격을 22만3000원, 민주평화당은 24만50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출한 상태다.

반면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한 제도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8일 성명서를 내고 “소비자들은 쌀 수확기임에도 인상되고 있는 쌀 가격으로 인해 밥상물가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농민 보호’라는 거대 담론 아래 쌀 가격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2013년 쌀 목표 가격이 17만83원에서 18만8000원으로 10.5% 오르면서 2013년 연평균 쌀 도매가격은 4만4151원(20kg)으로 평년대비 14.1% 인상됐다.

올해 11월 기준 쌀 도매가격은 4만9660원(20kg)으로, 정부와 생산자들이 회복됐다고 주장하는 2013년 가격에 비해서도 무려 6003원, 13.8% 상승한 가격이다.

또한 2017년 6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18개월간 지속적인 쌀 가격 인상으로 현재까지 20kg 도매가격이 3만1805원에서 4만9660원으로 56.1% 급등했다.

이 같은 가격 급등으로 현재는 정부가 공매한 쌀을 시장에 내놓아도 올라가는 쌀값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소비자단체협의 지적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쌀 목표가격이 높아질수록 공급 과잉의 불균형은 심화하고 쌀 가격도 낮아지지 않으므로 생산자의 소득보장만을 위해 목표 가격을 높여가는 것에 대한 총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농식품부 당정협의에서 박완주 간사(오른쪽)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쌀 목표가격 기준단위, 80kg→1kg으로 변경 추진될까

한편, 쌀 목표가격의 기준단위가 현행 80kg에서 1kg으로 변경 추진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농가에 지급되는 변동직접지불금의 기준단위를 1kg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골자인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12일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쌀 목표가격 변경 시 수확기 평균가격에 물가변동률을 추가하고 변동직접지불금의 기준단위도 현행 80kg당 금액을 1kg당 금액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개정안은 2018~2022년산에 적용할 목표가격을 쌀 1kg당 3065원(80kg당 24만5200원)으로 고정해 물가변동률을 반영한 쌀 목표가격을 설정하도록 했다.

황 위원장은 “지난 20년간 소비자물가가 74% 상승할 때 쌀 가격은 26% 상승에 그쳤다”며 “2015년에 농업인들이 작성한 쌀 생산 가계부에 따른 쌀 1가마니당 생산비가 23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 쌀 목표가격으로는 생산비도 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쌀 목표가격 산정에 있어서 현실적인 기준을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을 반영,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어려움에 처한 농업인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자 한다”며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쌀 목표가격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려는 것은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정치권에서도 동의하는 사항이다. 농민단체·정치권·정부 간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새로운 목표가격 설정 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쌀값은 농민의 소득이다. 농민들의 ‘5년 농사’라고도 불리는 쌀 목표가격이 최대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은 취임 1년6개월 지난 지금 농업이 철저히 홀대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국회와 정부는 새 목표가격이 생산자 보호뿐 아니라 소비자 이익 보호도 고려한 제도를 모색해야 하는 한편 치솟은 쌀 가격을 조속히 조정하기 위해 합리적·효과적으로 재정비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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