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 서명..갑상선암 제외 16종 암 등 지원보상
김기남 “병으로 고통받은 직원과 가족분들께 사과”..500억원 안전보건공단에 기탁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진제공=삼성전자>

[공공뉴스=정혜진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질병에 걸린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삼성전자는 백혈병 등의 질환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와의 11년간 분쟁을 마무리했다.

23일 삼성전자는 피해자 대변 시민단체 반올림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열고 협약서에 공식 서명했다.

이는 지난 1일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날 약속대로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대표이사는 반올림 피해자 앞에서 준비된 사과문을 낭독했다.

김 대표는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고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라며 “그동안 반도체와 LCD 사업장에서 건강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를 하지 못했다.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삼성전자는 중재안에 따라 회사 홈페이지에 사과문과 지원보상 안내문을 게재하고, 지원보상을 받은 반올림 피해자에게 개별적으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보상 범위는 반도체 양산라인 최초 구축한 1984년 5월17일 후 반도체 및 LCD 라인에서 1년 이상 근무한 본사 및 사내협력업체 전·현직 모두로 확정됐다. 지원보상 기간은 1984년 5월17일부터 오는 2028년 10월31일까지다.

지원보상 질병 범위의 경우 갑상선암을 제외하고 백혈병, 다발성골수증 등 16종 암과 다별성 경화증 같은 희귀질환, 유산·사산 등 생식질환, 선천성 기형 같은 자녀질환 등이다.

보상액은 백혈병 최대 1억5000만원, 뇌종양·다발성골수종은 1억3500만원이며 희귀암의 경우 추후 구성될 보상위원회가 중증도를 판정한 뒤 매우 중할 경우 1억원, 경미할 경우 2500만원을 지원한다.

반올림 피해자 대표인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김지형 조정위원장을 비롯해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힘을 보탠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황 대표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가족들에게 충분치는 않지만 받아들이겠다”며 “이번 보상안이 대상을 대폭 넓혀 반올림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포함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외협력업체 등 보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분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이번에 보상범위에 들지 못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향후 보상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정부와 국회를 향해 “안전보건에 관한 사업주의 책임을 엄격히 묻는 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대기업들은 솔선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 판정 이행 협의 협약식에서 김기남(왼쪽부터) 삼성전자 대표이사, 김지형 조정위원장,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피해자 지원보상업무 위탁업체로 ‘법무법인 지평’을 선정했다. 법무법인 지평은 김 위원장이 속한 법무법인으로, 양 당사자 모두 1순위로 지명해 손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반올림과 삼성전자가 보내준 신뢰를 거울 삼아 지원보상을 실행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발전기금 500억원은 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재발 방지 및 사회 공헌 일환으로 출연한 산업안전보건 발전 기금 500억원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해 전자산업안전보건센터 건립 등 안전보건 연구개발과 기술지원서비스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산재예방 사업에 사용하도록 했다.

500억원 기금 기탁기관으로 정해진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곧바로 실무팀을 꾸리고, 양 당사자 및 고용노동부와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기금운용 및 활용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을 기점으로 조정과 중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합의이행을 위한 업무는 법무법인 지평과 지원보상위원회로 넘어간다.

삼성전자와 법무법인 지평은 조속한 시일 내 피해자 지원보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곧바로 지원보상 사무국을 개설할 계획이다.

법무법인 지평 관계자에 따르면, 지원보상 준비와 사무국 개소에는 최소한 2~3주가 필요하지만 최대한 서둘러 12월 초에 사무국을 개설할 예정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지원보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한편, 협약식에는 반올림 측에서 관계자와 피해자 및 가족 20여명이 참석했고 삼성전자의 경우 김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방문해 자리를 지켰다.

또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노사정책실장, 박두용 이사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 한정애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 정부와 국회관계자들도 참석해 양측의 합의를 지켜봤다.

안전보건공단 출신으로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한정애 의원은 “이번 협약식이 뜻깊고 가슴 뭉클한 자리”라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뒤처지지 않도록 개정과 보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