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에 노동계 입장 반영할 여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반발
구간설정위원회, 노·사가 추천한 9인의 전문가로 구성..제 역할 ‘의문’

[공공뉴스=박계형 기자]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방침에 재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는 정부의 방향을 따라가겠다는 다소 무덤덤한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노사 협상 자율성 침해 가능성에 강한 우려감을 표하고 있는 상황.

특히 정부는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구간설정위원회를 노·사가 추천한 9인의 전문가로 구성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구간을 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사 대신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당 위원회가 사용자의 지불능력 등을 제대로 고려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이원화되면 최저임금 결정에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할 여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결정구조 이원화와 기준 보완이 ‘속도조절’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데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 보도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 구간설정위‧결정위로 이원화..공익위원 추천도 정부독점 폐지

올해부터 최저임금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면 노동자, 사용자, 공익위원이 그 안에서 인상 수준을 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최저임금 결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공익위원도 정부가 독점적으로 추천하지 않고 국회나 노·사 양측이 추천권을 나눠 갖게 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정부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저임금 결정체계가 바뀌는 것은 30년 만이다.

개편 초안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했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설정과 최저임금이 노동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중 상시적으로 분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 위원 9명으로 구성되고, 전문가 위원은 노·사 단체가 직접 추천하거나 노·사 단체의 의견을 받아 선정하도록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포함된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전문가들에 의해 설정된 구간 범위 내에서 심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그간 노사 요구안을 놓고 줄다리기 하듯이 진행돼 온 최저임금 심의과정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구간설정위원회에서 구간을 설정해 제시하면, 결정위원회는 해당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결정위원회는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와 동일하게 노·사·공익 3자 동수로 구성한다. 구간설정위원회가 신설되는 만큼 전체 숫자는 15명이나 21명으로 줄인다.

특히 공정성 논란을 빚은 공익위원 문제는 국회 추천권, 노·사 순차배제권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공익위원 추천에 있어 정부 단독 추천권을 폐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정위원회 노·사 위원은 지금과 같이 법률이 정한 최저임금위원회 노·사 위원 추천권이 있는 노사 단체가 추천한다. 다만 기존과 달리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법률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추가·보완한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노동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돼 있지만 여기에 고용수준, 경제상황,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을 추가한다는 것.

이 장관은 “구간설정위원회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커짐과 함께 결정위원회 공익위원을 국회나 노·사와 공유한다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반복된 소모적인 논쟁이 감소될 것”이라며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논란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년 소상공인연합회 신년하례식에서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승재 회장 “최저임금 인상구간 설정, 국회가 맡아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7일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손 회장은 이날 국회 본관에서 자유한국당 주최로 열린 ‘경제 비상상황 극복-무엇을 해야 하나’ 경제단체 초청 긴급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개편안은) 이중구조로서 최선의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고 싶다”고 짧게 답했다.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에는 “그런 문제도 있으나 하나의 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하던 구조를 고친다는 점은 유익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전문가 그룹이 얼마나 공정성을 갖고 임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최저임금 개편안에 대해 “오늘 발표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예단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반면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이원화 방침에 대한 체감도가 낮다는 입장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그동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지만, 현재 최저임금도 못 주고 있는 수많은 소상공인들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업종별, 규모별 구분 적용이 반드시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아니라 국회가 최저임금 인상구간 설정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구간설정위원회라는 게 지금의 공익위원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구간을 정하고, 그 결정을 따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구간설정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들지는 미지수”라며 “누가 위원으로 추천되더라도 과거 이력과 성향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대통령이 소상공인을 자기 고용 노동자로 인식하고 자영업을 독립적인 정책영역으로 삼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지만, 소상공인이 체감하기에 미흡한 대책이 반복되는 이유는 정책 담당자들이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위원인 권순종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도 “구간설정위원회 자체는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보지만, 구속력 있는 의결권을 부여하면 부작용이 커 일본처럼 권고 정도의 권한이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편하는 김에 기업의 지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당성을 수용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17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주영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및 노동개악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노총,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놓고 ‘개악안’ 비판

한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정부가 7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개악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정부 초안이지만, 발표된 내용으로만 봐도 향후 최저임금 제도운영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노·사·공 3자 위원회 방식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구간설정위원회는 당사자를 배제한 채 공익위원으로만 구성된다”며 “사실상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고용 수준, 사업주 지불 능력 등 고용·경제 상황을 염두에 둔 결정기준을 밝혔지만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최저임금법 제1조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2017년 12월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이후 법 개정 및 개편안 논의는 사측이 제시한 의제만 진행됐다”며 “관련 주체들의 충분한 논의 없이 국회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상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은 저임금노동자의 생명줄로서 민생현안이자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며 “제도변경 시 당사자와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도 정부는 이런 과정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개악안을 발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일방적인 최저임금 제도 개악을 즉각 폐기하고 당사자인 노사와 공익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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