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이민경 기자] ‘정의선 시대’를 맞아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떠오른 현대모비스의 지난해 실적이 나왔다. 실적악화 등을 이유로 임영득 전 사장이 물러난 가운데 그러나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 부침과 북미 공장 조업중지(셧다운) 등 악재 속에서도 실적 방어에 간신히 성공한 상황이다.

하지만 자동차 업황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나오면서 이제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인공으로 낙점된 현대모비스의 새 수장, 연구개발(R&D) 전문가 박정국 사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과거 박 사장이 이끌었던 현대케피코는 현대차그룹의 ‘후광 효과’가 강했던 탓인지 그의 능력 또한 크게 부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박 사장에겐 득이 되는 환경이었다.

실제 ‘박정국호(號)’ 현대케피코는 영업이익이 80% 이상 급감한 적도 있었지만 현대차에 의존하는 계열사 성격이 강했던 까닭에 박 사장은 직접적인 화살은 피하는 등 전반적 평가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모비스가 향후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주도할 ‘핵심’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박 사장의 그룹 내 위상이 급부상한 분위기 속에 이처럼 ‘실적악화’ 꼬리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박 사장의 ‘진짜’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황 부진·성추행 등 회사 안팎 논란 딛고 지난해 실적 ‘선방’

현대모비스가 지난해 영업이익 2조원대를 유지하며 실적 선방에 성공했다. 북미지역 공장 조업 중단 등 악재에도 불구, 핵심부품 수주 실적 증가로 현상 유지했다.

지난 25일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매출액 35조1492억원, 영업이익 2조249억원, 당기순이익 1조8882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46억원, 1억원 소폭 늘었다. 이 기간 당기순이익은 21.2% 뛰었다.

4분기 실적으로만 봤을 때 매출은 9조6440억원, 영업이익은 58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3%, 82.1% 상승했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4198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실적과 관련 “북미 오하이오 공장이 지난해 4월부터 신차종 대응을 위한 정비작업으로 일시적 조업중지에 들어가면서 생산이 일부 감소했다”며 “신흥국 통화 약세 등 경영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전동화와 핵심부품 사업이 성장하고 애프터서비스(A/S) 부품의 해외 판매도 늘면서 매출이 소폭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동화와 핵심부품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53.8%(1조8047억원), 12.3%(7조5205억원) 증가했다.

특히 중국 로컬브랜드와 글로벌 전기차 업체에 핵심 부품 수주를 공격적으로 추진해 지난해 총 1조8600억원 규모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모비스는 “올해도 고부가가치 전장 부품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수주 확대를 추진해 2015년 5억 달러, 지난해 12억 달러에서 올해 21억 달러 규모의 해외 부품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의 50%를 전장부품 분야에 집중 배정하고 자율주행, 커넥티비티를 비롯한 미래차 기술력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모비스의 이 같은 목표 달성은 R&D 전문가인 박 사장이 올해 현대모비스 수장에 오르면서 청신호가 켜진 분위기.

박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R&D 부문의 핵심 역할을 줄곧 수행해 온 인물. 현대모비스가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 친환경차, 커넥티비티 연구개발 행보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통 엔지니어’ 박 사장이 전진 배치됐다.

그는 현대차에서 성능시험실장, 미국기술연구소장, 성능개발센터장,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 등 연구개발 전문 임원으로 일 해왔다. 2015년에는 현대엔지비 대표이사, 이듬해에는 현대케피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를 그룹을 주도할 핵심 계열사로 꼽은 가운데, ‘정의선 체제’ 첫 인사를 통해 박 사장이 현대모비스를 이끌게 되면서 그의 역할도 상당히 커진 상황.

◆실적 하락, 또 하락..현대케피코 이끌던 박정국 사장 경영 성과는 ‘글쎄’

이처럼 박 사장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진 가운데, 과거 그가 챙겼던 회사의 성과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올해 자동차 시장도 정체될 것이라는 관측 속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주도할 회사’라는 막중한 책무를 떠안은 만큼 박 사장이 업황 불황 속에서도 현대모비스를 차질 없이 이끌어갈 수 있는지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박 사장이 이끌었던 현대케피코는 2016년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다.

현대케피코의 매출액은 2015년 1조6103억원, 2016년 1조8066억원으로 상승했고, 영업이익도 798억원에서 1060억원으로 올랐다. 당기순이익은 103억원에서 1262억원으로 급증했다.

당시 이 같은 실적은 현대케피코가 R&D에 집중하면서 뛰어난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2017년에는 매출 1조6632억원, 영업이익 179억원, 당기순이익은 38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과 미국 판매가 감소하면서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들이 그렇듯 실적이 흔들린 것.

매출은 7.9%,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83.0%, 69.7% 줄었다. 현대·기아차와의 안정적 거래가 뒷받침되지 못하자 현대케피코는 결국 실적 하락세를 면치 못한 셈이다.

현대케피코의 실적은 지난해 전년 대비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70억원 순유출로 2017년 상반기(616억원) 순유입에서 악화돼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영업활동으로부터 발생한 현금이 2017년 상반기 917억원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150억원으로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물론 현대케피코의 실적은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또한 현대·기아차에 실적 의존도가 높은 탓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모습.

결국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부진의 여파가 부품 계열사까지 미친 까닭에 R&D 전문가인 박 사장 경영 능력도 사실상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사진-뉴시스>

◆핵심 계열사 수장 시험대 오른 박정국..정의선의 가신(家臣) 또는 간신(奸臣)?

한편, 이런 분위기 속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주요 계열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긴 박 사장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박 사장이 현대케피코 수장 시절 경영에 있어 딱히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상황에서 무게감이 커진 현대모비스 수장에 오른 만큼 박 사장의 경영 능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

더욱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중심에 서 있는 계열사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현대모비스 안팎에서 그동안 크고 작은 잡음이 불거졌다는 점도 박 사장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현대모비스는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미달했다며 시정명령을 받아 망신살이 뻗쳤고 임원의 여비서 성추행 및 스폰 제안, 직원 몰카 등 의혹 그리고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의혹 등으로 한동안 홍역을 겪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안팎 크고작은 논란의 화살은 임 전 사장에게 쏠리면서 그룹의 핵심 부품계열사로서 좀처럼 맥을 추지 못했었다.

특히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를 그룹 미래를 이끌 정점에 두고 직접 챙기고 있는 가운데, R&D 전문가인 박 사장을 현대모비스 수장에 임명한 것은 그간 불거진 잡음을 해소시키고 그룹의 미래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충분히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케피코 역시 2017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0% 이상 급감하는 등 실적악화를 면치 못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그룹 내 역할이 한층 커지게 된 박 사장의 경영능력에도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분위기.

이와 관련, 현대모비스 홍보실 관계자는 “선진시장(미국·유럽·중국 등)에서 올해도 업황 정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서도 “올해 신차 출시를 통해 실적 반등 효과를 노리고 고부가가치 전장부품 시장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원가절감으로 내실을 다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번 인사와 관련, 절차상 오는 3월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사장 선임이 되지만 취임식 등은 별도로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임 전 사장의 뒤를 이은 박 사장이 본인의 ‘실적부진’ 과거사를 지우고 정 수석부회장의 기대에 부응할 가신(家臣)이 될지 아니면 간신(奸臣)이 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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