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증가:경제·사회적 요인에 결혼 기피→삶의 질 개선 통해 편견 해소 필요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프리랜서 강사로 잘 나가는 40대 A씨는 수입도 괜찮고 나름 경력도 있는 골드미스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설 명절에 “결혼은 언제하냐” “남자친구는 있냐” 등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평소에는 연락도 잘 안 해서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데, 설 연휴만 되면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친척들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A씨.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분을 삭혔다. A씨는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압박이 싫었다. 그저 결혼에 적합한 상대를 고르느라 굳이 애쓸 필요가 없고, 결혼하면 대개 사고 싶은 물건을 포기하거나 배우자의 눈치를 많이 살펴야 하지만 미혼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좋았다. 또 주거비나 육아비 등으로 굳이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없어져 부담감이 없지만, 올 가을 돌아오는 추석에도 여전히 이어질 잔소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A씨였다.

<사진=뉴시스>

“결혼하지 않아도 편한데 뭐하러 결혼하나요?”라고 묻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미혼남녀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이유에는 남녀 간 차이가 있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해도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모습이다.

경제적 요인과 결혼 필요성에 대한 인식변화가 생긴 것 또한 미혼율 증가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 미혼여성 92%·미혼남성 53%, 배우자 조건으로 ‘경제력’ 중요

배우자를 고를 때 미혼 남성보다는 미혼 여성이 경제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가계 경제를 책임진다는 전통적 의식이 아직 남아 있는데다가 특히 일자리 불안에 노출된 여성의 열악한 경제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전문지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미혼 인구의 결혼 관련 태도’ 연구보고서(이상림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해 미혼남녀의 결혼 태도를 살펴본 결과 이같이 나왔다.

20∼44세 미혼남녀(남성 1140명, 여성 1324명)를 대상으로 배우자 조건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매우 중요하다’+‘중요하다’ 응답률) 물어본 결과 남녀 간에 다소 차이를 보였다.

미혼남성은 성격(95.9%), 건강(95.1%), 가사·육아에 대한 태도(91.1%), 일에 대한 이해·협조(90.8%), 공통의 취미 유무(76.9%) 순이었다.

반면 미혼여성은 성격(98.3%), 가사·육아 태도(97.9%), 건강(97.7%), 일에 대한 이해·협조(95.6%), 소득·재산 등 경제력(92.7%)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남성(53.0%)보다 여성(92.7%)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배우자 조건으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중에서 남녀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난 문항으로는 직종 및 직위 등 직업(남성 49.9%, 여성 87.1%), 학력(남성 31.0%, 여성 55.0%), 가정환경(남성 75.1%, 여성 89.8%) 등이었다.

이들 항목은 경제력과 관련성이 높은 것들이란 점에서 미혼여성이 배우자 조건으로 경제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결혼에서 남성의 경제력을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 세대의 열악한 경제 상황, 특히 여성의 부정적 경제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의 필요성에 대해 미혼남성은 ‘반드시 해야 한다’(14.1%), ‘하는 편이 좋다’(36.4%),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39.2%), ‘하지 않는 게 낫다’(6.6%) 등으로 확인됐다.

미혼 여성은 ‘반드시 해야 한다’(6.0%), ‘하는 편이 좋다’(22.8%),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54.9%), ‘하지 않는 게 낫다’(14.3%) 등의 분포를 보였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 태도 응답률이 남성은 50.5%로 절반을 넘었지만, 여성은 28.8% 수준에 그쳤다.

이처럼 남성이 여성보다 결혼에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유보적 응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점에 비춰볼 때 비혼화 경향을 여성만의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지난 2017년 4월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윤중로에서 많은 시민들이 벚꽃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일본 추월한 청년 미혼율..10명 중 3~4명만 연애한다

우리나라 미혼인구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30대 중반 이하 청년층의 미혼율은 ‘미혼 급증’을 먼저 겪었던 일본을 이미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결혼을 고려할만한 20∼44세 미혼 남녀 가운데 실제 이성교제를 하는 사람은 10명 중 3∼4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인구 비율은 지난 20년간 급속히 증가했다.

국내 남성 미혼율은 25∼29세의 경우 1995년 64%에서 2015년 90%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30∼34세(19%→56%), 35∼39세(7%→33%), 40∼44세(3%→23%) 연령층에서도 크게 올랐다.

이는 여성 미혼율도 마찬가지다. 25∼29세(30%→77%), 30∼34세(7%→38%), 35∼39세(3%→19%), 40∼44세(2%→11%)에서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사회문화적 환경이 비슷하고 중요 사회현상이 우리나라보다 일찍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경우 1995년과 2005년에는 남녀 대부분 연령대에서 미혼율이 한국보다 높았다.

하지만 2015년에 들어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2015년 일본의 미혼율은 남자의 경우 25∼29세 73%, 30∼34세 47%, 여자 25∼29세 62%, 30∼34세 35% 등으로 한국보다 낮아졌다. 특히 남성 25∼29세 미혼율은 한국보다 17%포인트나 낮았다.

이와 함께 국내 미혼남녀의 이성교제 비율도 낮았다. 2012년 국내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20∼44세 미혼) 따르면, 이성교제를 하는 비율은 남성 33%, 여성 37%에 불과했다. 일본도 남성 29%, 여성 39%로 비슷했다.

보고서는 “미혼인구 비율이 일본을 쫓아가고 있고, 결혼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이성교제 비율이 일본과 비슷해진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혼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성교제의 심리적 연령 한계는 남성 35세, 여성 30세로 분석됐다.

국내 30∼34세 남성의 이성교제 비율은 31%이지만 35∼39에서는 14%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여성은 그 경계선이 더 빨라 25∼29세 41.8%에서 30∼34세 29.5%로 급감했다. 일본의 경우 연령적 경계선이 모두 남녀 모두 35세였다.

보고서는 한국 여성의 이성교제 연령 한계에 대해 “30세 이후 이성교제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커져 이전과 같이 쉽게 교제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취업준비를 위해 이성교제를 포기하거나, 상대 이성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 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적 요인이 이성교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한 경우 남녀 모두에서 이성교제 비율이 높았고 소득이 많은 남성도 교제를 할 확률이 높았다.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은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을 하지 않는 암묵적인 규범이 지배적인 국가로 이성교제는 결혼의 전제 조건”이라면서 “국가는 (청년의 이성교제와 결혼을 돕기 위해)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사진=뉴시스>

# 미혼여성 48% “자녀 없어도 괜찮다”..개인시간·경제적 여유 중요

한편, 국내 미혼여성 가운데 절반이 결혼 후 아이가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미혼인구의 자녀 및 가족 관련 생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서 20~44세 여성 48.0%가 자녀 필요성에 대해 ‘없어도 무관하다’고 답했다.

자녀가 필요 없다는 답변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연령별로 20~24세 51.2%, 25~29세 45.9%, 30~34세 44.9%, 35~39세 48.2%, 40~44세 47.4% 등으로 절반 안팎의 높은 비율을 보였다.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은 28.8%였으며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19.5%에 불과했다.

반면 남성의 경우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응답이 34.2%로 가장 많았다. ‘없어도 무관하다’고 응답한 비율(28.9%)도 여성보다 19.1%포인트 적게 조사됐다.

앞서 2015년 실태조사에서는 40.0%의 여성이 자녀의 필요성에 대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다소 긍정적인 대답을 내놨다. ‘없어도 무관하다’고 했던 비율도 29.5%에 그쳤다. 불과 3년 사이 자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비율이 1.6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 이유에서도 성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응답한 여성 636명 중 32.0%는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가 28.6%,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기 위해’가 18.3%,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가 15.4%였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어도 괜찮다는 남성 329명 중에서 가장 많은 답변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27.7%)였다. 이어 ‘경제적 여유’(26.1%), ‘부부 생활 선호’(24.1%), ‘자녀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19.7%) 순이었다.

이 밖에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싶어서 및 기타’ 사유도 여성의 비율(5.8%)이 남성(2.4%)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결혼해도 자녀를 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는 여성과 남성 모두 찬성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견해에 찬성하는 비율은 여성 78.4%, 남성 63.0%로 모두 높게 나타났다.

3년 전과 비교해보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비율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서 증가했다.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비율은 여성이 18.2%p(11.1%→29.2%), 남성이 11.7%p(5.6%→17.3%)씩 급증했다.

변수정 보사연 연구위원은 “자기 시간·여가 생활의 중요성 및 욕구 증가와 함께 결혼 후에도 경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는 커졌다”면서 “하지만 출산 및 양육 책임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남아 있는 사회적 분위기로 자녀가 생기면 자기 일을 포기하는 상황이 여성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결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가운데 출산을 장려하기에 앞서 결혼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청년층 전반에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나고 있어 정부가 삶의 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는 상황.

청년실업과 장시간 노동 등을 해결하는 동시에 단지 몇 가지 제도로 지원하는 게 아닌 가정을 형성하고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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