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개학연기:볼모 된 아이들·속터지는 학부모→타협점 찾아 혼란 해결 시급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치원의 개학을 다짜고짜 연기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한유총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다양한 교육선택권을 위해, 아이들의 행복한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무기한 개학연기를 한다고 한다. ‘입학유예’ 문자 달랑 하나 보내놓고 유치원 전화도 안 받고 연락도 안 되는 답답한 상황에 5살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일 뿐. 긴급돌봄 서비스를 부랴부랴 신청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문제는 이번 일이 끝나더라도 또다시 다른 이유로 한유총이 파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A씨였다. 사립유치원의 입장이 한편으론 이해는 되지만, 최소한 교육자라면 아이들을 볼모로 개학연기라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치원과 정부 사이에서 아이를 맡기고도 하루하루가 불안한 학부모들의 의견은 어디에 성토해야 하는 것인지 A씨는 답답하기만 했다. 

지난 3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서울 용산구 한유총에서 교육부의 전향적 입장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새학기가 시작됐지만 정부와 한유총 간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강대강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한유총이 예고한 개학연기를 강행하고 집단 폐원까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까닭. 유치원 대란의 피해는 정작 중간에 있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다.

특히 일부 사립유치원의 개학연기로 당장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맞벌이 부부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와 유아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정부와 한유총이 쉽게 타협점을 찾긴 힘들 전망이다.

# ‘365 vs 1533’ 엇갈린 개학연기 유치원 수

‘유치원 3법’ 철회를 요구하며 개학연기를 선언한 한유총이 개학연기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개학연기에 동참한 유치원 수가 전국적으로 1500여곳에 달한다며 교육부 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교육부와 한유총이 개학연기 참여 유치원 수를 두고 서로 허위 통계라고 주장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4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11시 기준 전체 사립유치원(3875곳) 가운데 개학 연기를 결정한 사립유치원은 총 365곳이다.

이는 전체의 약 9.4%이며 직전 조사(3일 12시, 381곳)보다 16곳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경남이 87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경기 77곳 ▲대구 50곳 ▲충남 43곳 ▲경북 41곳 ▲부산 35곳 ▲서울 26곳 ▲울산 4곳 ▲인천·강원 1곳 순이다.

이 가운데 67.7%인 247곳은 자체 돌봄은 제공하기로 했다. 개학연기 여부에 응답하지 않은 유치원은 121곳이다.

무응답 유치원까지 모두 합하면 486곳으로 늘어나지만 한유총이 밝힌 1533곳 대비 31.7%에 불과하다.

당국은 이날 전체 사립유치원에 경찰 등 공무원을 보내 개학 여부를 현장조사한 뒤 연기가 확인되면 즉각 시정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개학을 미룬 경우 학부모는 각 시·도 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안내된 절차에 따라 임시돌봄을 신청하면 된다.

반면 한유총은 3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국에 1533곳이 개학연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사립유치원(4220개)의 36.3%, 한유총 회원(3318개)의 46.2%다.

개학연기에 동참한 유치원은 지역별로는 경기·인천이 492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부산·대구 339곳, 경남·울산 189곳, 충청·대전 178곳, 서울·강원 170곳, 전라·광주 165곳 등으로 집계됐다.

한유총은 “각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보낸 개학연기 안내문자를 지역지회·분회별로 인증받았다”고 설명했다.

한유총은 교육부와의 개학연기 동참 조사결과가 다른데에 대해서 “교육부가 개학연기에 동참하려는 유치원을 협박했다”면서 “극소수만 (개학연기에) 참여하는 것처럼 숫자를 왜곡하는 치졸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한유총은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장 고유권한이라며 개학연기가 ‘준법투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투쟁으로 나아가겠다”고 경고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오는 6일까지 폐원 관련 회원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유총은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과 회계비리 시 형사처분을 골자로 하는 ‘유치원 3법’과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개학연기를 강행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한유총 수치가 부풀려진 것”이라며 “한유총이 소속 유치원들을 심하게 회유·압박하고 있어 실제로는 개학을 하면서도 투쟁에 참여한다고 보고한 유치원들이 다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유치원 개학 연기 대응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정부는 한유총에 대해 유치원 개학 연기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강행시 법령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 정부, 유치원 무단 개학연기 시 형사고발 등 ‘무관용 원칙’ 예고

일부 사립유치원의 개학연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비상돌봄체계’를 가동해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특히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한유총 개학연기 발표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같은 방안을 확정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번 개학연기 발표에 따라 학부모들의 아이 돌봄 공백과 아이들의 학습권 보호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라며 “학부모·아이들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지자체·교육청이 합심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유총 측에 사익을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개학연기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교육부는 한유총의 개학연기에 대응해 3일 오전 9시부터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돌봄 신청을 접수하고 유치원 개원일인 4일부터 국공립유치원 등을 통한 돌봄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여성가족·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긴밀한 협조 아래 어린이집, 아이돌봄서비스 등 돌봄 제공 가능 기관을 활용해 학부모들의 불편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여성가족부는 사립유치원 개학일 연기로 돌봄 공백이 생긴 원아를 대상으로 긴급 돌봄서비스를 무료 제공하고 전국공동육아나눔터 등에 아이돌보미를 파견하는 등 비상돌봄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시도교육청에서 지역 내 어린이집 돌봄 가능 인원 정보를 요청하면 즉시 긴급 돌봄 가능 어린이집을 안내할 예정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공립유치원, 유아교육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돌봄을 지원하고 교육지원청별 돌봄 전담자를 지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비상돌봄 서비스 제공과 함께 개학을 연기하는 유치원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기로 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회의에서 “유치원이 개원을 무단 연기한 경우 미개원 시 즉각 시정명령하고 이후 시정하지 않으면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하면서 경찰청과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한유총의 행위는 교육 관계 법령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한유총의 유치원 개학 무기 연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불법 개학연기에 대해 시도교육청의 고발이 접수되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한유총의 집단휴업 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신속히 조사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교육부와 관계 기관이 긴밀히 협조해 돌봄 대책을 촘촘하게 준비해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며 “불법적인 사안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청 앞에서 수지 사립유치원 학부모 비대위 회원들이 개학연기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용인교육시민포럼>

# 국민 10명 중 8명, 유치원 3법·에듀파인 도입 ‘찬성’

한편, 사립유치원의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 ‘유치원 3법’과 ‘에듀파인’ 도입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는 3일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의 핵심 과제인 유치원 3법 통과, 에듀파인 도입, 국공립유치원 확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치원 3법 추진에 대한 찬성은 81.0%로 매우 찬성 47.4%, 찬성 33.6%, 반대 8.2%, 매우 반대 6.5%, 유보 4.3%였다. 유치원 3법은 ▲사립유치원 교육의 질 개선 ▲투명한 회계 운영 ▲유아의 먹을거리 안전과 급식의 질 향상을 포함하고 있다.

또 사립유치원 에듀파인 도입에 대해서는 83.1%가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매우 찬성이 54.1%로 과반이었다.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7.8%, 매우 반대는 5.7%, 유보한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에듀파인은 국가 교육 회계시스템으로, 지난 1일부터 원아 200명 이상 사립유치원(581개원)에 의무 도입됐으며 내년에는 모든 사립유치원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에듀파인 도입이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73.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설문 결과 매우 동의한다는 응답은 6.7%, 동의한다는 응답은 16.2%였던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2%,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8.5%에 달했다. 그동안 한유총은 에듀파인이 시행되면 사립유치원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다고 주장해왔다.

국·공립유치원 확대에는 찬성률이 86.4%였다. 매우 찬성 54.6%, 찬성 31.8% 등이었다. 교육부는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오는 2021년 40%로 확대하기로 하고 올해 1080학급을 확충할 계획이다.

유 부총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 방향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동의해주신 만큼 유아교육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더 매진하겠다”며 국회에 계류된 유치원 3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이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에듀파인 안착을 위한 사립유치원 관계자 대상 연수·컨설팅 등을 통해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설문조사는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49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일 전화면접 실시(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됐다.

정부와 한유총의 기싸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한유총이 개학연기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설립허가 취소라는 강경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한유총도 폐원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

정부와 한유총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개학연기 투쟁에 동참하지 않은 유치원들도 향후 한유총의 투쟁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유치원 교육대란이 현실화하면서 개학연기로 인한 사회적 혼란의 피해는 원생과 학부모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인 가운데 정부와 한유총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