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삼성傳 ③] 사망..또 사망, ‘죽음의 공장’ 향한 노동자들의 절규
[2019 삼성傳 ③] 사망..또 사망, ‘죽음의 공장’ 향한 노동자들의 절규
  • 이민경·정혜진 기자
  • 승인 2019.03.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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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뉴스=이민경·정혜진 기자] 올해는 삼성전자가 창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그래서인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유독 새해 벽두부터 공개행보를 이어가며 삼성그룹의 ‘총수’ 역할에 적극 임하고 있는 분위기. 최근 이 부회장은 국내 사업장 및 정부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며 그룹 중심을 잡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삼성 고질병’에 대한 이 부회장의 행보는 다소 미지근하다. 바로 해묵은 ‘반도체 백혈병’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와 전향적 태도가 백혈병 사태를 수습하는 임시방편형 매듭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근로자들의 노동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산재사망사고 예방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과 반올림 농성장 모습<사진=뉴시스>

삼성전자는 10여년 가까이 해묵은 ‘반도체 백혈병’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 보상과 지원을 약속하면서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종지부를 찍은 듯 보였다.

그러나 삼성에선 최근까지도 직업병으로 의심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글로벌 평판에 치명적 오점으로 작용한 ‘죽음의 공장’이라는 긴 꼬리표를 떼어내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최근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 사업장에서 근무한 직업병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단체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며 관련 당국에 전자산업 노동자 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삼성전자가 사업장 노동자 안전교육 및 조치에 소홀했다고 지적하는 한편 지난해 관련 단체의 중재를 통해 도출된 삼성전자 피해 보상안의 보상범위가 특정 질병으로 한정돼 제대로 된 보상책이 되지 못한다고 규탄했다.

◆‘삼성 직업병 피해’ 여전히 진행형..전자산업 노동자 14명 집단 산재 신청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단체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며 전자산업 노동자 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은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암과 만성 피부질환 등 직업성 질환에 걸린 노동자 14명의 산업재해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산재 신청자 중에는 삼성전자 사업장 소속 8명을 포함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외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포함됐다.

이날 반올림은 신청자들이 직업병에 이르게 된 경위와 현재의 심경을 대신 전했다. 신청자 가운데 김모(42·여)씨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전자 기흥·화성 공장에서 반도체 웨이퍼 검사를 담당하다가 2017년 6월 폐암을 진단받았다.

현재 항암 치료 중인 김씨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노출된 비소 등이 발암 원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는 반올림을 통해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가족력도 없는데 갑자기 폐암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업무가 검사 담당이어서 가공 공정에서 일하는 다른 엔지니어나 오퍼레이터보다 유해하지 않다고 해서 안전교육도 없고 위험을 경고 받은 적도 없었다. 회사가 조치를 소홀히 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송모(29·여)씨는 지난해 11월 삼성-반올림 중재안이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 보상위원회는 클린룸에서 일하다 발병한 모든 근로자에게 보상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특정 질병만 보상한다”며 “특정 질병만 선별해 보상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라고 성토했다.

이어 “발병 요인이 유사하다고 알려진 다발성 경화증이나 루푸스는 보상대상이 되지만 다발성근염은 보상 대상이 아니라며 신청도 받지 않는다"며 "직업성 암과 희소병을 모두 다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2009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사업장에서 일했으며 2016년 9월 다발성 근염을 인정받았다. 현재 송씨는 고관절이 괴사한 상태라고 반올림은 전했다.

이 밖에 삼성전자 사내 협력사에서 가스감지기 설치 기사로 약 2년간 일한 뒤 2018년 10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임한결(29·남)씨,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2012년 유방암을 진단받고 2018년 2월 사망한 김모(37·여)씨 등도 산재 신청자에 포함됐다.

반올림의 집단 산재신청은 2008년 4월을 시작으로, 이번이 14번째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3라인에서 근무했던 고(故)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 이후 국내 반도체 및 LCD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3월 설립된 시민단체 반올림은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대표를 중심으로 반도체 및 LCD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피해 문제를 제기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정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것을 촉구해왔다.

반올림은 그간 137명의 산재신청을 진행해 그 중 43명(근로복지공단 인정 25명, 법원 18명)이 업무상 재해로 병을 얻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반올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는 이제 다 해결된 문제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백혈병 등 희귀병의 발병을 모르고 삼성이 어떤 공정에서 어떤 유해 화학물질을 쓰는지 모른다.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의 전체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며 “이번 집단 산재 신청 사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고용노동부가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철폐하고 신속하게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 판정 이행 협의 협약식에서 김기남(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삼성SDI 연구원, 반올림 합의 ‘2개월 만에’ 백혈병으로 또 사망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의 ‘죽음의 공장’ 논란 또한 재점화 되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SDI에서 반도체 생산용 화학물질을 개발하던 연구직 노동자가 또 백혈병으로 숨진 까닭이다.

이는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뿐 아니라 연구직의 건강도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SDI 수원사업장에서 전자재료사업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황모(32)씨가 1월29일 사망했다.

2014년부터 삼성SDI에서 반도체용 화학물질 개발업무를 담당하던 황씨는 2017년 말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황씨는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1년간의 투병을 해오다 끝내 숨졌다.

이와 관련, 삼성은 지난해 11월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제외한 삼성전기나 삼성SDS, 삼성SDI 등 계열사에서 발생한 피해들은 포함되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황씨의 경우처럼 삼성전자 외의 계열사에서도 유해물질을 사용하다가 병든 노동자들이 있더라도 보상 절차가 원활하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반올림은 추모 성명을 통해 “(황씨는) 발암물질을 다루면서도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었다”며 “백혈병을 일으키는 벤젠, 폼알데하이드를 비롯해 많은 발암물질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간 삼성전자 계열사(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노동자 중 반올림에 제보한 백혈병 피해자만 104명이며 이 중 6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삼성 등 대기업들은 여전히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옴부즈만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 삼성전자 기흥·화성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 907종 중에서 407종, 45%가 영업비밀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반올림은 “2007년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이 알려진 뒤로 12년이 지났건만 노동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며 “삼성은 신속히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해 9월4일에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6-3라인 지하 1층 이산화탄소 집합관실 옆 복도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경찰 중간 수사 결과 작업자가 소방설비와 연결된 케이블을 절단하는 실수와 함께 20년 된 밸브의 노후·균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2018년 12월13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이번 사고 관계자 19명을 형사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 감정 결과를 회신받아 이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는 2차례에 걸친 감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분출하는 소방설비의 경우 제어반에서 다른 계열의 전력이 접촉하는 ‘혼촉’ 또는 케이블 절단 때문에 오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찰은 당시 옛 소방설비를 철거 중이던 협력업체 관계자가 소방설비 관련 배선을 노후 배선으로 오인해 절단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도 절단된 밸브가 1998년 제작, 20년 이상 된 동(銅) 재질의 제품으로 부식과 균열, 기계적 진동, 나사 마모, 나사골 갈라짐 등의 변형과 순간적인 응력 집중으로 인한 이탈로 인해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된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에 전달했다.

아울러 경찰은 삼성전자의 늑장 신고 논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앞서 2018년 10월 환경부는 이번 사고는 즉시 신고 의무가 발생하는 ‘화학사고’라는 결론을 내린 뒤 삼성 측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환경부는 삼성 측이 사고 발생 후 1시간49분이 지나서야 신고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환경부의 고발에 따라 김 부회장 등 사고 관련자들의 범죄사실을 특정하고 기소의견 송치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백혈병 11년 분쟁 마침표..‘수박 겉 핥기’식 비판 나오는 이유

한편, 삼성전자가 11년 만에 반도체 백혈병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지원보상 대상은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이들로 한정됐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재판정 합의이행 협약식’을 열고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제시한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

중재안에 따라 김 부회장은 이날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 공식 사과했다.

김 부회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다”며 “그 아픔을 충분히 배려하고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며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병으로 고통받는 직원들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중재안을 조건없이 수용해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반올림 황 대표는 삼성의 사과를 다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황 대표는 사외협력업체 직원 등 이번에 보상 범위에 들지 못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향후 보상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지원보상 대상은 5월17일(기흥 1라인 준공시점) 이후 반도체나 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와 사내협력업체 현직자와 퇴직자 전원이다.

질병 범위는 암과 희귀질환, 유산 등 생식질환, 자녀질환이며 보상액은 최대 1억5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보상범위를 넓히는 대신 보상액은 낮추기로 뜻을 모았다.

보상업무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합의해 선정한 법무법인 지평이 맡는다. 피해보상과는 별도로 삼성전자는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출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했다.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여성 근로자 황유미씨가 2007년 3월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 이듬해 3월 발족한 반올림이 반도체와 LCD 사업장 근무자들의 건강피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에 2014년 10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조정위가 구성됐다. 하지만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2015년 1차 조정은 결렬됐다. 2018년 초 다시 2차 조정에 들어간 조정위는 이후 7월 양측으로부터 백지위임을 받아 최종중재안을 마련해 결국 분쟁을 끝맺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 개선책이 없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지적과 함께 일각에선 삼성의 진정성 없는 ‘수박 겉 핥기’식 백혈병 사태 종결에는 이 부회장의 삼성승계, 대법원 판결 등을 앞둔 정치적 배경 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서는) 조정위와 반올림이 조정하고 있는 사안으로 보상 범위 및 대상 등은 조정위 측에 문의하라”고 선을 그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