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흡연:‘길빵’에 노출된 보행자들→합법적 장소 확대로 모든 국민 권리 존중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물러난 아침, 자녀와 산책에 나선 40대 주부 A씨는 얼마 못가 얼굴을 찌푸리게 됐다.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며 지나가는 흡연자들로 인해 강제흡연이 불가피했기 때문.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 밖에서 마시는 담배 연기로 인해 오히려 수명이 줄어들 지경이다. 인상만 찌푸려지면 그나마 다행. 문제는 어린 자녀가 담배 연기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A씨는 길을 걷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 곁을 지날 때면 자녀에게 숨을 멈추도록 했다. 이같은 행동을 취하더라도 담배 연기와 냄새를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지만, 한창 자라나는 자녀가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지는 못할 망정 길거리 흡연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보면서 A씨는 혹여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녀가 배울까봐 걱정도 됐다. 

지난 2016년 12월23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담뱃갑 경고그림 대국민 거리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흡연이 개인적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면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금연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비흡연자들의 불만이 커짐에 따라 실내외 금연구역 지정 확대, 담뱃갑 인상, 경고문구 및 사진 부착 등을 통해 흡연자들의 금연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금연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는 있지만, 보행 및 길거리 흡연은 여전해 비흡연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 일각에서는 성숙한 시민의식 부재와 함께 합법적인 흡연장소 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건강 망치는 간접흡연, 만성 콩팥병 위험 1.48배 ↑

최근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될 경우 만성 신장(콩팥)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흡연이 만성 콩팥병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간접흡연이 콩팥병에 미치는 대규모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공공장소 등에서 보다 강도 높은 금연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박정탁 교수와 인하대병원 신장내과 지종현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될 경우 만성 콩팥병 발병 위험이 최대 66%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콩팥은 몸에서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고 미네랄 등을 조절해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 콩팥은 한 번 나빠지면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

만성 콩팥병으로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빈혈이나 고혈압, 폐부종, 위장관 출혈 등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유전체학 및 역학연구에 참여한 13만1196명 중 장기추적이 가능한 비흡연자 2284명을 대상으로 간접흡연에 노출되지 않은 그룹(717명)과 노출된 그룹(1567명)으로 분류해 만성 콩팥병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간접흡연은 흡연자 옆에서 직접 흡연에 노출된 경우로 한정했다.

연구 결과 간접흡연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간접흡연에 노출된 그룹의 경우 만성 콩팥병 위험은 1.48배 높아졌다. 이번 연구에서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만성 콩팥병 위험이 1.37배 높아진 것보다 높은 수치였다.

아울러 연구팀은 추가적으로 1948명을 간접흡연 비노출그룹과 주 3회 미만 노출된 그룹, 주 3회 이상 노출된 그룹으로 나눠 8.7년간 추적 관찰을 통해 만성 콩팥병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위험성을 평가했다.

평가 결과 간접흡연에 노출되지 않았을 때에 비해 3일 미만 노출된 경우 59%, 3일 이상 노출됐을 때 66%나 높아졌다.

박정탁 교수는 “간접흡연이 신장질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금연 정책으로 많은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제한됐지만 아직 집이나 직장 등 많은 곳에서 비흡연자들이 간접흡연에 노출돼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신장학학회 공식저널 CJASN(Clinical Journal of the American Society of Nephr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지난 2017년 7월12일 대구 중구 동성로 만남의 광장 옆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거리 배수구 위에 금연방지 광고문구가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버린 꽁초로 홍보문구가 무색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보행 중 흡연’ 법적으로 처벌?..법안 발의에 엇갈린 시선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금연자들도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길거리 흡연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흡연자가 길거리 흡연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흡연예절을 지키고 있는 흡연자들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

이에 담배를 피우면서 걸어 다니는 행위를 일컫는 이른바 ‘길빵’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에 맞춰 보행 중 흡연행위를 금지하는 관련 법안 개정이 추진된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7일 보행자가 통행하는 도로에서 보행 중 흡연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 중 법률로 정한 금연구역이나 지자체 조례로 정한 금연구역 및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금연구역이나 금연거리로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흡연은 제재할 방법은 없다.

구역과 장소 중심으로 흡연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금연규제정책 하에서는 ‘보행 중 흡연’과 같은 구체적인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

질병관리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민 흡연율이 4.2%포인트 감소(2008년 25.4%→2017년 21.2%)하고 남성 흡연율도 8.25%포인트 감소(2008년 47.8%→2017년 39.3%)하는 등 흡연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나 애연가들의 보행 중 흡연은 여전한 실정이다.

특히 최근 길을 걸어가며 담배를 피워 주변 혹은 뒤 따라 오는 사람들의 간접흡연을 유발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길빵’에서 비롯된 직접적 상해사건이나 흡연자-비흡연자 간 갈등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행 중 흡연’을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통행하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보행자길’에서의 보행 중 흡연행위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률상 ‘보행자길’은 보도, 길가장자리구역, 횡단보도, 보행자전용도로, 공원 내 보행자 통행장소, 지하보도, 육교, 탐방로, 산책로, 등산로, 숲체험코스, 골목길 등이 모두 포함된다.

황 의원은 “보행 중 흡연행위로 인해 비흡연자들이 간접흡연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며 “모든 길거리 흡연이 아닌 보행 중 흡연만큼은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이번 법 개정으로 올바른 흡연예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은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높아지는 등 금연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현실을 주시, 흡연폐해를 강조하는 민무늬 담뱃갑(Plain Packaging)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민무늬 담뱃갑은 담배제품의 매력을 감소시키고 경고 그림의 효과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어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으며 WHO도 담배규제 기본협약에서 이를 권고 중이다.

이처럼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법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리고 있다.

비흡연자들의 경우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 흡연구역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흡연자들의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또 금연구역을 늘리고 담배값을 올리는 등 정부의 지속적인 흡연규제 정책으로 인해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의 적용 범위나 방법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번 개정안의 규제 범위가 다소 광범위 해 신중한 검토를 주문한 만큼 법안의 적용에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 “금연구역 느는데 흡연구역 지정 미미”..흡연자 권리는 어디에

한편, 최근 금연구역 지정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흡연구역 지정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안심하고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흡연구역을 제대로 지정하는 것은 흡연자의 권리보호와 함께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정책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금연구역 지정은 최근 5년간 15만5143곳이 증가한 반면 흡연시설은 지난해 9월 기준 63곳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4년 기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11만8060곳이었으나 2018년 9월 기준 금연구역은 총 27만3203곳으로 2.3배 증가했다.

이들 중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설치된 실내 금연구역은 25만3087곳, 각 자치구 조례에 따라 설치된 실외 공공장소 금연구역은 2만116곳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내 거리 흡연시설은 15개 자치구, 63곳에 불과해 금연구역과 흡연시설의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서는 금연구역을 증가시키는 한편 흡연부스를 마련해 흡연자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보행 중 흡연행위를 전면 금지했지만 도보마다 5분 이내 거리에 흡연 부스를 설치해 흡연자들의 공간을 보장하고 있다. 이같이 설치한 흡연부스가 2011년 기준 전국 900개 이상이다.

최 의원은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흡연자들의 흡연권도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헌법상 권리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족한 흡연시설 때문에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 피해가 늘고 있는 측면도 있다”며 “비흡연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도 흡연시설의 확대는 필요하며 일방적인 금연정책이 아닌 흡연자들을 존중하는 금연정책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구분된다. 개인의 심리적, 생리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최근 사회적으로는 흡연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갈 곳이 없어 길거리로 내몰린 흡연자들과 그로 인해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비흡연자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일방적인 금연정책이 낳은 부작용으로, 비흡연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흡연자의 권리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명확한 흡연구역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

특히 예산문제가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는 담배 제조회사들과 적극 제휴해 길거리 흡연 부스를 늘리는 한편 흡연을 법으로 무조건 금지하는 방안보다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고 한 자리에 서서 피울 수 있는 구역을 확대, 보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