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말레이 국빈방문서 인니어로 인사..靑 “현지어 인사말 작성에 혼선”

[공공뉴스=유채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당시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외교결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현지어로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해명했지만 문제는 청와대의 이같은 실수로 인한 외교적 결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

더욱이 문 대통령 연설문과 기자회견문 초고를 작성 과정과 이후 추가 검증에서도 잘못된 인사말이 발견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남방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현 정부의 기조 하에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지난 13일 푸트라자야 총리실에서 한-말레이시아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지난 13일 푸트라자야 총리실에서 한-말레이시아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와대는 20일 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에 대해 실무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빚어진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방문국 국민에게 친숙함을 표현하고자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고 부대변인은 “청와대 내에는 말레이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청와대에서 미리 작성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현지에 가서 확인하고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힌 뒤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외교적 결례 논란은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슬라맛 소르’(Selamat sore)라는 현지어로 인사한 데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현지어로 인사를 건네며 친숙함을 표현해왔다.

당시 청와대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시각에 맞춰 상대국을 배려해 말레이어로 오후 인사에 해당하는 말을 준비했으나 이 표현은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오후 인사다. 말레이어의 오후 인사말은 ‘슬라맛 쁘땅’(Selamat petang)이다.

문 대통령이 쓴 ‘슬라맛 소르’라는 표현은 ‘슬라맛 소레’라는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이경찬 영산대 교수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인도네시아어의 뿌리가 말레이어에 있으니 sore건 petang이건 무슨 상관이냐’ 한다면 외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인도네시아어가 말레이어로부터 비롯된 것은 맞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의 표현에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은데 sore와 petang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며 “말레이어 통역이 있었다면, 최소한 제대로 된 대사관 직원 한 명이라도 기자회견문을 일별했다면 ‘Selamat petang’으로 바로 잡아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의 연설, 그것도 해외 국빈방문에서 대통령의 한 마디는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실이건 외교부건 대통령의 기자회견문 모두 인사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같은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는 두 나라이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때 말레이시아 연방 성립을 놓고 소규모 전쟁까지 벌였다”며 “(문 대통령 인사말 당시) 마하티르 총리의 표정이 궁금하고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지난 13일 푸트라자야 총리실에서 한-말레이시아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지난 13일 푸트라자야 총리실에서 한-말레이시아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수는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날 첫 일정이었던 한류-할랄 전시회에서도 발생했다.

문 대통령은 12일 오후 4시(현지시간)에 열린 한·말레이시아 한류·할랄 전시회에 참석해 “슬라맛 말람”(Selamat malam)이라고 인사했다. 이는 밤에 하는 인사 표현에 해당돼 낮인 것을 감안하면 ‘슬라맛 쁘땅’이라고 하는 게 적당한 표현이다.

고 부대변인은 “확인해보니 ‘슬라맛 쁘땅’은 ‘굿 애프터눈’(Good afternoon)과 ‘굿 이브닝’(Good evening)을 합친 정도라고 한다”며 “저녁 식사 전, 밤 10시 전에 쓰는 용어”라고 말했다.

그는 “‘슬라맛 말람’은 ‘굿 나잇’(Good night)과 같은 의미”라며 “문 대통령이 두 행사장에서 말한 게 틀렸다”고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12일과 13일 저녁 시간대에 열린 동포간담회와 국빈만찬에서 ‘슬라맛 쁘땅’이라고 인사한 것 역시 틀렸다는 일부 지적엔 “그땐 ‘슬라맛 말람’이라고 쓰는 게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라며 문 대통령이 바르게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적 결례는 이번뿐이 아니었다. 앞서 청와대는 15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문 대통령이 순방 중이던 캄보디아를 소개하면서 캄보디아가 아닌 대만 건축물 사진을 올렸다가 14시간 만에 삭제하고 “오류를 사과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 당시에는 외교부가 공식 영문 트위터 계정에 체코의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기재하는 실수가 벌어지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눠지면서 사라진 국명이다.

동아시아와 유럽 일부 등 과거 영토분쟁을 겪었던 국가들에서 영토분쟁 당사국 말로 인사를 건네는 게 해당국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논란을 계기로 청와대와 외교부, 현지 대사관 등에서 대통령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고 작은 외교 실수들이 계속되면서 청와대 의전·부속 라인 책임론도 더 커질 전망이다. 각 국가에 정통한 외교부 관계자를 순방 실무진에 전진배치해 그간 쌓은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그 어느 때보다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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