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뇌혈관·정신질환부터 조기사망까지..사회적 손실 연간 최대 7조7000억원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과로사회’의 오명을 벗으려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근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 등 과로로 한 해 부담하는 의료비와 사회적 손실이 최대 7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가운데 과로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월3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청년학생문화제 기획단 단원들이 근로시간 단축 촉구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3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청년학생문화제 기획단 단원들이 근로시간 단축 촉구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시간 노동·교대근무 등 과로에 노동자 건강 ‘적신호’

1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과로로 인한 한국 사회 질병부담과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과로와 교대근무로 생긴 질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최소 5조4936억원에서 최대 7조7147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장시간 노동(주 60시간)과 교대근무에 따른 급성심근경색·뇌졸중 및 고혈압·당뇨병 등 심뇌혈관질환과 정신질환 유병률을 추정한 결과다.

전체 심뇌혈관질환자 중 장시간 노동으로 발병한 비율은 남성은 1.4~10.9%, 여성은 0.5~3.3%였다.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로 한정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져 남성은 2.1~16.1%, 여성은 2.9~16.8%로 추정됐다.

장시간 노동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은 남성이 0.7~6.2%, 여성이 0.4~2.3%였으며 사망에 이른 경우는 남성이 0.2~2.1%, 여성이 0.5~3.4%로 집계됐다.

이를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결과 장시간 노동에 따라 남성은 약 2조5500억원에서 최대 4조1100억원, 여성은 최소 8000억원에서 최대 1조47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과로를 교대근무 여부로 정의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이 더 위협받고 있었다. 교대근무에 따른 심뇌혈관질환자 비율은 여성이 2.5~5.1%, 남성이 0.6~1.4%였다.

정신질환 유병자 중에선 여성이 2.8~5.7%, 남성이 1.7~3.9%였다. 사망의 경우 여성이 1.9~4.0%, 남성이 0.1~0.3%로 조사됐다.

이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남성이 5300억원, 여성이 1조59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를 합치면 과로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연간 5조~7조원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선 과로로 산업재해를 인정해줄 때 발병 전 12주간 평균 노동시간 60시간 여부를 기준으로 따진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남성은 14.0%, 여성은 5.1%가 주당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40대(20.7%)가 가장 많았으며 60대(16.4%), 50대(15.8%), 30대(11.4%)가 뒤를 이었다. 상대적으로 장시간 노동 노출 비율이 낮은 여성은 60대가 9.3%로 가장 높았다.

교대근무 비율은 남성 14.4%, 여성 11.6%였고 남녀 모두 30대(남성 25.1%, 여성 19.5%)가 가장 높았다. 이어 20대(남성 16.3%, 여성 19.3%)가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과로가 우리 사회에 연간 5조~7조원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2016년도 기준 우리나라 건강보험 총 급여지출액의 10~14%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풀이했다.

더욱이 이같은 비용 추계는 보수적으로 추정된 결과인 만큼 실제 질병비용은 더 늘어날 거란 분석이다.

연구진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참고 출근하는 소위 ‘프리젠티즘’이나 조기 퇴직 혹은 이직에 따른 생산성 손실 등의 비용은 자료의 한계로 분석하지 못했다”며 “과로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의 크기는 본 연구에서 추정한 것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주당 52시간 노동시대가 열리며 장시간 노동관행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 지난해 7월2일 서울 중구의 한 피트니스클럽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시간 줄고 있지만..지난해 1인당 평균 1967시간 일했다

한편, 지난해 국내 노동자 1인 평균 노동시간이 2017년보다 감소했지만 OECD 평균 노동시간보다는 높게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전년(1996시간)보다 29시간(1.4%) 감소했다.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매년 1∼2%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지난해 1986시간으로, 전년(2014시간)보다 1.4%가 줄어 처음으로 2000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OECD의 국가별 노동시간은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이처럼 국내 연간 노동시간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한 OECD 연평균 노동시간(1763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후진국형 과로사회의 오명을 벗으려면 여전히 갈 길이 먼 셈이다.

앞서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에 들어갔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300인 이상 사업체에 한정됐기 때문에 연간 노동시간 감소에는 큰 영향을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00인 이상 사업체의 지난해 하반기 초과근로시간 증감을 보면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이 드러난다. 지난해 하반기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월평균 초과근로시간은 11.7시간으로 전년 동기보다 0.4시간 줄어든 것.

특히 제조업의 경우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월평균 초과근로시간이 20.1시간으로, 전년 동기보다 1.8시간 감소했다.

제조업 중에서도 식료품 제조업과 고무·플라스틱제품 제조업은 지난해 하반기 초과근로시간 감소 폭이 각각 12.4시간, 10.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이 뚜렷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노동시간 단축을 계기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은 300인 이상 사업체들이 초과근로시간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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