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정혜진 기자] LG화학이 지난 1947년 창립 이후 첫 외부 인사 CEO를 영입하며 기대를 모았던 신학철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LG화학이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미세먼지의 원인물질인 먼지·황산화물 등을 속여서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것.

신 부회장은 관련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며 사업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대한 국민 불안이 심화되면서 정부에서도 대책마련에 고심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이런 사실을 축소 조작했다는 것에 더 큰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

환경부는 불법행위 사업장에 대해 검찰에 송치하고 엄정 처벌할 방침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달 공식 대표자리에 오른 신 부회장의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제공=LG화학>

◆LG화학,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국민 ‘미세먼지 공포’ 나몰라라

LG화학 등 대기업이 포함된 사업장 235곳이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등의 수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등 정부와 국민이 미세먼지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업체는 정부와 국민을 속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는 비판이다.

이에 LG화학은 관련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발표, 여수 화학공장 관련시설을 폐쇄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등의 배출량을 조작한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측정을 의뢰한 사업장 235곳을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광주·전남 지역의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들을 조사한 결과 여수 산업단지 지역 4곳의 조작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에 적발된 4곳의 측정대행업체는 측정을 의뢰한 235곳의 배출사업장에 대해 2015년부터 4년간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축소해 조작하거나 실제로 측정하지도 않고 허위 성적서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4곳의 측정대행업체는 지구환경공사, 정우엔텍연구소, 동부그린환경, 에어릭스다. 이들과 공모한 배출사업장은 LG화학 여수화치공장, 에스엔엔씨, 대한시멘트 광양태인공장 등 6곳이다.

측정대행업체 4곳은 여수 산단 등에 위치한 235곳의 배출사업장으로부터 측정을 의뢰받아 2015년부터 4년간 총 1만3096건의 대기오염도 측정 기록부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측정대행업체의 대기측정 기록부를 조사한 결과 직원 1명이 같은 시간대에 여러 장소에서 측정한 것으로 기록한 8843건은 실제 측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환경부는 측정을 의뢰한 대기업 담당자로부터 오염도 측정값을 조작해 달라는 내용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 4253건도 적발했다. 이들은 측정 조작의 공모를 통해 실제 측정값을 축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측정값을 축소 조작한 4253건에 대해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 주요 항목별로 분석한 결과 측정값은 실제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의 33.6% 수준으로 낮게 조작됐다.

실제 LG화학은 정우엔텍연구소와 공모해 2016년 11월 채취한 시료의 염화비닐 값이 207.7ppm으로 배출허용기준(120ppm)을 넘자 결과 값을 조작해 3.97ppm으로 낮추는 등 149건에 대해 거짓 측정기록부를 작성했다.

아울러 2017년에도 실측값이 40.1ppm으로 나왔지만 10.1ppm으로 조작해 그해 상반기 기본배출부과금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대기오염물질 측정값 조작에 공모관계 등이 확인된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6곳의 업체를 기소 의견으로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 지난 15일 송치했다.

나머지 배출업체에 대해서는 현재 보강수사를 진행 중으로, 수사가 마무리되는대로 추가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계획이다.

측정대행업체와 배출사업장에 대한 관리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이후 불법행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환경부는 전했다.

이 같은 환경부 발표에 LG화학은 이날 신 부회장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신 부회장은 “이번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참담한 심정으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며 “이번 사태는 LG화학의 경영이념과 저의 경영철학과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모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염화비닐 배출과 관련해서는 해당 사안을 인지한 즉시 모든 저감조치를 취해 현재는 법적 기준치 및 지역사회와 약속한 배출량을 지키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생산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신력 있는 기관의 위해성 및 건강영향 평가를 지역사회와 함께 투명하게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LG화학 홈페이지 갈무리

◆‘외부인사 1호’ 향한 무너진 기대..신학철 부회장 ‘비운의 경영인’ 등극

한편, 신 부회장은 지난달 15일 LG화학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이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에 따라 ‘신학철호(號) LG화학’이 본격 출범했다.

신 부회장은 1947년 LG화학이 창립한 이래 첫 외부영입 최고경영자(CEO)다. 앞서 신 부회장은 1월 시무식을 시작으로 업무에 들어갔지만 내정자 신분으로 업무를 파악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는 자제해왔다.

신 부회장은 1984년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필리핀 지사장, 3M 미국 본사 비즈니스 그룹 부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3M의 해외사업을 이끌며 수석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전문경영인이다. 특히 글로벌 경영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13.5% 증가한 32조원으로 설정하고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톱5’ 화학회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LG화학은 한국 기업 최초로 글로벌 톱10 화학회사에 이름을 올리는 한편 브랜드가치로는 전 세계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LG화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기 전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으로 먼저 자리잡아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들린다.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동안 LG화학이 앞장서서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측정값을 조작하거나 허위로 기재하는 것은 미세먼지 정책의 근본을 뒤흔드는 행위로, 그동안 1급 발암물질 배출을 은폐해오다 뒤늦게 사과한 까닭에 앞으로 LG화학을 이끌어 갈 신 부회장의 책임론도 불거지는 분위기다.

LG그룹의 ‘순혈주의’를 깬 사상 첫 외부인사인 신 부회장이 LG화학 수장 자리에 오른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비운의 경영인’으로 전락한 형국으로 과연 회사와 본인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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