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의전 논란:구겨지고 거꾸로 걸리고 잇단 수난→국격 실추 막는 기강확립 필요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기회로 태극기의 의미와 올바르게 게양하는 방법을 공부한 A씨는 새삼스레 태극기가 자랑스러워졌다. 태극기는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자유가 박탈당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자주독립의지의 표상이자 저항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 영광의 시대를 모두 함께 한 태극기와 관련해 외교부의 잇단 실수가 이어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 최근 한국-스페인 전략대화 외교현장에 나타난 구겨진 태극기에 A씨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를 위해 설치되는 태극기는 그 자체로 국가를 의미하기에 관리와 보관, 설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함에도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집단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 결국 그 담당자가 보직해임 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한 외교관의 실수로만 치부하기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태극기가 거꾸로 달렸다가 문재인 대통령 탑승 직전에 바로잡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태극기가 거꾸로 달렸다가 문재인 대통령 탑승 직전에 바로잡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가 최근 들어 수난을 겪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최하거나 고위급 인사가 초청받아 참석한 국내외 외교 행사에서 구겨지거나 거꾸로 걸리는 등 연이어 태극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외교에서 의전은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때문에 대통령에 관련된 일, 국가와 국가 간의 일 등에서 실수나 허점은 용납할 수 없는 사안.  

더욱이 한 나라의 국기는 나라의 얼굴이자 그 나라를 대표하는 표상이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특별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보다 세심히 국가의 상징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통령 전용기에 ‘거꾸로 걸린 태극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떠난 가운데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에 태극기가 거꾸로 꽂혀 있다가 출발 직전에 바로잡히는 소동이 발생했다.

최근 한-스페인 회담장의 ‘구겨진 태극기’ 논란에 이어 의전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위해 경기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대기 중이던 공군 1호기 앞부분에 걸린 태극기 위아래가 뒤집힌 채 걸려 있는 모습이 취재진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16일 오후 12시37분께다.

이날 청와대 사진취재단이 촬영한 사진 속에는 태극기는 빨강색이 아래에, 파란색이 위로 뒤집힌 채 봉황기 옆에서 펄럭였다. 이후 오후 1시1분께 문 대통령 내외가 1호기에 탑승할 당시에는 태극기가 다시 정상적으로 배치됐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실수를 인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환송행사 전 태극기에 이물질이 묻은 것을 발견한 대한항공 실무자가 새 태극기로 교체했다”며 “이 과정에서 착오로 태극기를 거꾸로 걸었다가 이를 인지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걸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군 1호기는 정상적으로 태극기를 걸고 이륙했다. 운항은 대한항공이 책임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관리 책임은 공군에 있다”고 덧붙였다.

공군 1호기는 공군 15특수임무비행단이 관리한다. 공군 측은 “준비 과정에서 현장 요원의 실수가 있었다. 이런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질타를 쏟아냈다. 대한민국의 얼굴인 태극기를 실수로 거꾸로 달았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태극기 수난 시대인가. 대통령이 탑승해 순방에 나설 공군 1호기 태극기까지 거꾸로 게양했다면 기강해이가 극에 달한 것”이라며 “엄벌에 처해 태극기의 존엄성과 국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태극기부대가 태극기를 태극기답게 사용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즘이지만 정부마저 이런 태극기 모독을 계속하면 안 된다”며 “신속한 대처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부 누리꾼들은 “태극기 실수는 애국심 결여라고 생각된다” “애국지사들이 힘들게 독립운동 외쳐서 지킨 태극기를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스페인 전략대화가 열린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양자회의실 태극기가 구겨져 있다. <사진=뉴시스>
한-스페인 전략대화가 열린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양자회의실 태극기가 구겨져 있다. <사진=뉴시스>

# 외교부 또 ‘국가 망신’..이번엔 구겨진 태극기

물론 이번 ‘거꾸로 태극기’ 논란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태극기 관련 의전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태극기 논란은 외교부가 해외 인사를 초청한 공식 외교 행사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두면서 시작됐다.

구겨진 태극기가 등장한 것은 이달 4일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진행된 조현 외교부 제1차관과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스페인 외교차관 간의 제1차 한-스페인 전략대화에서였다.

문제의 태극기는 스페인 국기와 함께 행사장 한켠에 나란히 세워졌다. 당시 외교부 직원들이 손으로 태극기를 펴보려고 노력했으나 조 차관과 발렌수엘라 차관은 끝내 구겨진 태극기 옆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됐다.

결국 양 차관의 기념사진에는 오랫동안 겹겹이 접어놨다가 펼친 것처럼 주름져 있는 태극기가 담겼다.

다행히 스페인 국기는 구김 없이 잘 보관된 상태여서 상대국에 대한 외교 결례는 피할 수 있었으나 이번 전략대화는 2020년 수교 70주년을 앞둔 한-스페인 양국의 우호협력관계 증진을 위한 뜻 깊은 자리라는 점에서 태극기 보관을 담당했던 실무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잦은 외교실수로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던 외교부는 태극기 논란까지 더해지자 행사 나흘 만인 7일 담당 과장을 보직해임하면서 사건 진화에 힘썼다.

아울러 외교부는 공식행사에 등장한 구겨진 태극기 등 최근 잇단 외교 실수를 인정하고 업무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사과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부는 업무시스템과 협조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책임의식과 전문성의 결여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조치를 취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주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에도 태극기 논란이 일었다. 다만 이번엔 우리 정부가 아닌 미국 정부 측의 ‘색 바랜 태극기’가 문제였다.

4·11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문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당시 문 대통령 부부를 맞이한 미 의장대가 든 태극기의 태극문양 하단 청색 부분이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색이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미 의장대가 의전에 쓰는 태극기는 때에 따라 바뀐다. 2016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미 의장대는 이번에 논란이 된 것과 같은 태극기를 들고 도열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미 의장단이 태극문양 하단 청색이 짙은 태극기를 들고 도열한 바 있어 옅은 색의 태극기 사용은 더더욱 미 의장대의 외교 결례라는 의혹이 쌓였다.

이에 미국 측은 문 대통령의 방미 당시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던 ‘색이 바랜 태극기’를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외교부에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현장에서 우리 국기 규정과 다소 다른 점을 발견하고 미국 측에 알려줬다”며 “미국 측은 사용하는 태극기를 교체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무너진 靑 공직기강, “국민에 부끄럽지 않나”

이처럼 태극기와 관련된 해프닝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어 일각에서는 의전 담당자들의 기강해이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잇따라 발생한 태극기 사고를 언급하며 공직기강을 제대로 세울 것을 촉구했다.

김형구 수석부대변인은 17일 논평을 통해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를 태극기답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문재인 정부마저 태극기 모독을 계속할 셈인가”라며 “청와대는 책임자를 엄벌해 무너진 공직 기강을 제대로 세워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들어 3번째 국기 관련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번엔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대통령 전용기에 태극기가 거꾸로 걸려 있었다고 한다”며 “최근 외교부의 구겨진 태극기, 미 국무부의 색 바랜 태극기에 이어 태극기 수난시대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당이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위원회까지 출범시킨 모양새가 궁색하다. 기강해이도 정도가 있다. 일반 국민도 국기를 게양할 때 잘못이 없는지 살핀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태극기와 관련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번에도 지난 정부 탓을 할 셈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게 나라냐’ 촛불을 들었던 국민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며 “청와대는 공직 기강확립을 통해 다시는 태극기 의전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공직 기강이 제대로 확립돼 있다면 태극기 관련 의전 실수는 1년에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겨진 태극기, 빛바랜 태극기, 거꾸로 걸린 태극기 사태가 열흘 남짓한 사이에 발생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도 손상된 모습이다.

외교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 직원 보직 해임이라는 강수를 통해 담당 공무원들의 경각심을 높이고는 있지만 실수 당사자 몇 명만 문책하고 넘어가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잇따른 외교적 결례와 더불어 공직자들의 기강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강을 바로잡아 주름진 태극기처럼 국격이 구겨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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