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부양 문제:노부모·미혼자녀 더블케어→정부 지원책 마련해 중장년층 부담 해소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 한 가정의 가장이자 외동아들인 50대 박모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로 계신 어머니를 8년 동안 모셔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는 수술 등으로 수차례 병원을 찾았고, 입원할 때마다 간병과 병원비 부담은 고스란히 박씨의 몫으로 돌아갔다.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이어오며 모아놓았던 돈은 꽤 큰 액수가 됐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치레가 잦아지고 두 명의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탓에 돈은 금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직 사회초년생인 자식들에게 할머니 생활비까지 보태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부양 부담이 점점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박씨는 특히 자신의 노후가 막막했다. 2년 전 30년간 다닌 직장에서 은퇴한 박씨에게는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당장 먹고살기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자녀들이 돈을 모았을 리 없다 보니 결혼을 한다면 신혼집은 물론 예식비 등 결혼자금 대부분을 보태야 해 걱정이 됐다. 혹여나 그 사이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라도 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지난 2017년 10월24일 서울 서초구청에서 청년, 중·장년, 경력단절 여성 등 1000여명의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서초구 행복일자리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7년 10월24일 서울 서초구청에서 청년, 중·장년, 경력단절 여성 등 1000여명의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서초구 행복일자리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4050세대가 위기다. 청년층과 노년층에 끼어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로 불리는 4050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모를 부양하거나 한창 자녀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

중간에서 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 대비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역할이 사라져가는 시기에 아직 이를 떠맡을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도,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상황이다.

# 중장년층 10명 중 4명, 미혼자녀·노부모 ‘이중부양’

고령인구 확대와 비혼주의 확산에 따른 성인 자녀 독립 지체로 중장년층 10명 중 4명이 노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이중부양’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중장년층 가족의 이중부양에 대한 실태조사’(김유경·이진숙·손서희·조성호·박신아)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장년 1000명 중 39.5%가 25살 이상의 미혼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부양하고 있었다.

미혼성인 자녀 또는 노부모를 부양하는 단일부양은 37.8%였고 양쪽 모두를 부양하지 않는 비(非)부양은 22.7%로 집계됐다.

특히 가구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이중부양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소득 수준별 이중부양 비율은 ▲200만∼299만원 33.8% ▲300만∼399만원 38.8% ▲400만∼499만원 39.6% ▲500만∼599만원 48.0% ▲600만∼699만원 42.8% ▲700만∼799만원 50.4% ▲800만원 이상 56.1% 등으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여성 중장년층(46.0%)이 남성 중장년층(32.2%)보다, 연령별로는 55∼64세 연령층(48.7%)이 45∼54세 연령층(29.7%)보다 각각 이중부양 비율이 높았다.

중장년층이 부양하는 미혼성인 자녀 또는 노부모에게 지원한 현금은 지난해 기준 월평균 115만5000원이었다. 정기적 지원 금액이 월평균 65만3600원, 비정기적 지원 금액이 월평균 50만4100원이었다.

하지만 피부양자가 중장년층에게 지원한 현금은 월평균 17만6400원으로 6.6배의 차이를 보였다. 피부양자는 중장년층에게 정기적으로 월평균 9만7600원, 비정기적으로 월평균 7만7800원을 지원했다.

이 같은 이중부양은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월평균 부양 비용이 전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17.7%로 5분의 1에 근접해있었다.

실제로 중장년층의 절반가량(50.3%)이 이중부양 전후 가족생활에 변화가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사회생활 제약’(3.5%), ‘부부 간 갈등 증가’(6.0%), ‘피부양자와 갈등 증가’(7.0%), ‘신체 및 정신건강 악화’(8.2%), ‘형제자매 및 가족 간 갈등 증가’(11.4%), ‘경제생활 악화’(13.7%), ‘일상생활 제약’(16.0%), ‘가족 간 협동심·친밀감 증대’(23.7%) 등이다.

연구팀은 “중장년층은 본인 노후뿐 아니라 성인 자녀와 노부모에 대한 이중부양으로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높은 세대”라며 “특히 고용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들이 고용불안에 휩싸이고 경제적 부양 스트레스와 갈등에 노출되지 않게 은퇴연령을 상향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생활고·부양 부담이 ‘극단적 선택’ 불렀다

부모부양에 자녀교육, 은퇴 뒤 인생 2막까지 준비해야 하는 4050세대. 이러한 가운데 부양의 중압감과 간병비 부담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극심한 생활고에 15년간 부양한 노모를 살해한 4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25일 부산고법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A(49)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모친을 살해한 행위는 반인륜적인 범행이며 중대 행위로 죄책이 무겁다”며 “치매 증상이 있기는 했지만 사리판단이 가능했던 모친의 의지에 반해 생을 마감하게 해 유족이 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여러 질병을 앓던 모친을 부양하다가 생활고에 자살을 결심한 뒤 더는 부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범행을 저지른 점, 범행 후 수차례 자살을 시도해 실패한 점, 가족이 자신을 탓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 형량은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03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결혼도 미룬 채 15년간 노모를 홀로 부양해왔다. 그러던 중 A씨는 생활비 등으로 지출한 카드빚이 늘어나고 대출금 연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만성질환이 있는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A씨는 어머니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지난해 7월 수면제를 탄 커피를 어머니에게 먹인 뒤 테이프로 가스누출경보기와 현관문 틈을 막은 뒤 착화탄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어머니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같은 달 29일 어려운 생계 속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부양하는 등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아버지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 후 혼자 살아남은 아들이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형사12부(이창경 부장판사)는 숨진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는다’는 데 동의가 없었다고 보고 존속살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B(41)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해 8월18일 오전 1시9분께 충남 태안군 고남면에서 운전하던 승용차를 바다에 빠뜨려 함께 탄 아버지(73)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 부자는 사고 직후 해경에 의해 구조됐으나 아버지는 병원 치료 중 숨졌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많은 빚과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부양하는 어려움 등을 비관해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29일 열린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아버지를 고의로 익사시킨 사건”이라며 B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배심원 7명 전원 유죄 판단을 했다. 양형을 논의한 결과 배심원 7명 가운데 4명이 징역 8년, 3명이 징역 7년의 의견을 냈다.

재판부도 살해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B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를 살해한 행위는 인륜을 저버리는 중대한 범죄”라며 “다만 피고인이 장남으로서 수십 년 동안 뇌병변 장애 아버지를 봉양한 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뒤 홀로 남게 될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는 생각에 함께 생을 마감하기로 하고 범행에 이른 점, 동생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탑골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5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탑골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 부모부양 책임은 누가?..가족 27% vs 사회 54%

한편, ‘나이든 부모부양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물음에 우리 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효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주의가 약해지고 소가족·핵가족화가 심해짐에 따라 부모부양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인식은 급격히 축소되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2019년 5월)에 실린 ‘중·장년층의 이중부양 부담과 정책 과제’ 보고서(김유경 연구위원)에 따르면, 통계청의 2002∼2018년 사회조사를 분석한 결과 ‘부모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는 물음에 ‘가족’이라고 답한 비율이 2002년에는 70.7%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부모부양 책임자로 가족을 꼽은 비율은 2006년 63.4%, 2010년 36.0%, 2014년 31.7%, 2018년 26.7% 등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이와 달리 국가와 사회 등에 의한 공적 부양 의식이 확산하고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커지고 있다.

‘사회 혹은 기타’가 부모부양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2002년 19.7%에서 2006년 28.8%, 2010년에는 51.3%로 껑충 뛰었고 2014년 51.7%, 2018년 54.0%로 올랐다.

‘스스로 해결’이란 대답도 2002년 9.6%에서 2006년 7.8%로 잠시 주춤했다가 2010년 12.7%, 2014년 16.6%, 2018년 19.4% 등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장남 또는 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부모 부양관도 상당히 약해졌다. 가족 중에서 누가 부모부양을 책임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장남이란 응답은 2002년 15.1%, 2006년 12.4%, 2010년 5.0%, 2014년 2.0%, 2018년 1.3% 등으로 추락했다.

‘아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도 2002년 13.9%에서 2006년 5.1%, 2010년 2.8%, 2014년 1.1%, 2018년 1.0% 등으로 낮아졌다.

반면 ‘아들·딸 자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식은 2002년 20.5%, 2006년 31.8%, 2010년 23.1%, 2014년 24.1%, 2018년 19.5% 등으로 나왔다.

청년층과 노년층 사이에 낀 중장년층의 경우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상황적 필요에 의한 내몰림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중년층은 노부모와 자녀에 대한 부양과 양육의 의무로 인해 경제적 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중년층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우울증, 자살, 만성적 질환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공정한 사회의 출발점은 청년과 중장년층, 노년층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다.

부모부양을 책임지는 마지막 세대면서 동시에 자식으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되는 중장년층을 위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정책 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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