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침입 성범죄:잠재적 피해자 된 여성들→경찰 적극 대처 및 예방책 마련 목소리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신림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발생한 ‘신림동 CCTV’ 사건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이사를 오기 전 집에서 A씨가 출근한 사이 누군가 방에 침입한 흔적이 있었고, 한동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 몇달 전 A씨가 퇴근 후 집에 들어갔더니 화장실 변기에 담배꽁초가 보란 듯이 버려져 있었다. 너무 놀란 A씨는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한 채 변기물을 내려버리고 벌벌 떨다가 분실물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어 더 이상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 이후로 A씨는 비밀번호를 누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집 도어락에 비닐랩을 씌웠다. 며칠 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A씨는 또다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집 현관문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삑삑삑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이씨’ 하는 남자 목소리가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비록 의심이지만 주거침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고를 한 A씨. 하지만 경찰은 ‘근처를 돌았으나 특이점이 없다’며 돌아갔다. 결국 A씨는 남자 신발을 빌려 현관에 두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후 집에 들어갈 때나 집안에 있을 때도 오랜 시간을 혼자 두려워해야만 했다. 혹시나 CCTV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미수’로만 끝난 사건이긴 하지만 언제라도 실제 사건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A씨는 서둘러 이사를 했다. 

귀가하는 여성 뒤따라 집에 들어가려다 A씨가 간발의 차로 문이 닫히자 문 앞을 서성이는 장면. <사진=유튜브 캡쳐>
귀가하는 여성 뒤따라 집에 들어가려다 A씨가 간발의 차로 문이 닫히자 문 앞을 서성이는 장면. <사진=유튜브 캡쳐>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집 안까지 들어가려고 했던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피의자 30대 남성이 구속된 가운데 여성들 사이에서 주거침입 성범죄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원룸에 사는 1인 가구는 물론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등에 혼자 사는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면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 ‘신림동 강간미수’ 출동 경찰관, 초동조치 미흡했나

경찰이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관련해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의 초동조치 부실 여부를 조사했다.

최근 서울 관악경찰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관악경찰서 당곡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초동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은 경찰이 범행이 발생한 6층을 확인하지 않았고, CCTV를 확보하지 않은 탓에 제기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오전 6시20분께 거주지로 귀가한 피해자는 오전 6시36분께 ‘누군가 벨을 누른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5분 뒤인 오전 6시41분께 피해자 거주지에 도착한 경찰은 전화 통화를 통해 피해자로부터 ‘지금은 벨을 누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범행이 발생한 건물 6층은 확인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전화를 통해 피해자로부터 ‘지금은 벨을 누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범행이 발생한 건물 6층은 확인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당시 피해자는 출동한 경찰에 CCTV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경찰은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어렵다’며 직접 확인한 후 다시 연락하라고 안내했다.

결국 경찰은 피해자가 CCTV를 확보해 오후 5시 무렵 경찰에 다시 신고할 때까지 약 10시간 동안 증거 영상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남성인 조모(30)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로 지난달 31일 구속됐다.

조씨는 같은 달 28일 오전 6시20분께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가 여성이 현관문을 닫은 뒤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거나 휴대폰 불빛을 비춰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한 혐의를 받는다. 또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로 열고 침입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도 있다. 

조씨의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은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조씨는 자신이 수사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건 다음날 경찰에 자수해 체포됐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지난 2017년 7월28일 도어록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원룸에 침입한 A(38)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은 A씨가 원룸 도어록 비밀번호를 촬영하기 위해 세워둔 담뱃갑의 모습. <사진제공=부산경찰청>
부산 북부경찰서는 지난 2017년 7월28일 도어록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원룸에 침입한 A(38)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은 A씨가 원룸 도어록 비밀번호를 촬영하기 위해 세워둔 담뱃갑의 모습. <사진제공=부산경찰청>

# 최근 3년간 ‘주거침입 성범죄’ 1000건 육박

이번 사건처럼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강력범죄 소식은 그동안 심심찮게 들려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미수에 그쳤고 범인은 체포됐지만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요즘, 여성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는 상황.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관련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여성을 위한 공권력은 어디 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상의 반이 여성인데 이들의 삶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며 “1인 가구 비율이 28.6%인 오늘날, 최근 3년간 주거침입 성범죄자 무려 약 1000건인 현실은 악몽”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심 의원은 이러한 주거침입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흉흉한 영상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 아니며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수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의 대응은 늘 소극적이었다”며 “이대로라면 여성은 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일침했다.

또한 “이미 여성들은 성범죄알리미 사이트 주소와 각종 방범용품 정보를 공유하며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며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가 돼 불안할 때 남성은 부당하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1999년 처음 발의돼 20년째 폐기와 계류를 반복하는 ‘스토킹범죄 처벌’ 관련 법안들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국회가 공전하는 사이 국민의 삶은 매일 위협받고 있다”고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실제로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집에 침입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주거침입 성범죄’가 최근 3년 간 1000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경찰청 범죄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981건의 주거침입 성범죄가 발생했다.

주거침입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경찰청 범죄통계상 주거침입 성범죄는 ‘주거침입강간’, ‘주거침입강간등’, ‘주거침입유사강간’, ‘주거침입강제추행’ 등 4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중 주거침입강제추행이 483건(49.2%)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주거침입강간 335건 (34.1%) ▲주거침입강간등 118건(12.0%) ▲주거침입유사강간 45건(4.6%) 순이었다.

주거침입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경기(201건)와 서울(178건)로, 두 지역이 전체의 38.6%를 차지했다. 또 광주와 충남은 2015년 이후 매년 발생건수가 증가하고 있어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 의원은 “최근 셉테드(CPTED, 범죄예방환경설계) 등 귀갓길, 감시사각지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는 반면 집에 침입해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관심과 대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거침입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극도의 불안과 트라우마로 남게 될 뿐만 아니라 성범죄 이후 더 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특단의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명의 청소년들이 초인종을 누른 뒤 엘레베이터 안으로 달아나고 있다. <사진제공=성북경찰서>
2명의 청소년들이 초인종을 누른 뒤 엘레베이터 안으로 달아나고 있다. <사진제공=성북경찰서>

#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벨튀’도 범죄

한편, 경찰은 장난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이른바 ‘벨튀’(벨을 누르고 튀는 행위의 줄임말)가 형법상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며 청소년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4일 서울 성북경찰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재물손괴) 등 혐의로 고등학교 1학년 김모(16)군과 중학교 3학년 한모(15)군 등 모두 11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경찰서 내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된 뒤 최근 즉결심판으로 넘겨져 벌금 20만원씩 선고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 등 9명은 3월5일부터 사흘간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지하 보안 출입문을 발로 차 부수고 들어가 집마다 초인종 벨을 누른 뒤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한군 등 2명은 4월16일 오후 11시께 성북구의 또 다른 아파트에서 공구로 출입문을 부수고 초인종 벨을 누른 뒤 도망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초인종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인증’ 영상을 보고 재미 삼아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벨튀’는 장난 수준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아파트 출입문을 부수거나 무단 침입까지 하는 등 도가 지나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인식되는 ‘벨튀’는 피해자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는 것은 물론 형법상 주거침입, 재물손괴, 폭행·상해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 행위”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발생한 신림동 주거침입 미수 사건으로 국민의 우려와 함께 여성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은 대부분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이웃과의 교류도 잘 이뤄지지 않아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거침입은 침입 후 절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와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대학생, 직장인 등 젊은 여성들이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관련 안전용품과 서비스 시장도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침입 범죄에 노출된 여성 1인 가구와 취약계층, 원룸촌·구도심 등 방범창이 없거나 녹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치안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의 1인 가구 범죄예방 정책으로 여성안심구역, 여성안심귀갓길을 지정해 운영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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