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측, 법안 완전철회 및 행정장관 퇴진 요구..캐리 람 “정부 부족함 인정” 공개 사과

[공공뉴스=정혜진 기자] 지난 16일(현지시간)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장악했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처리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완전 철회를 주장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반대 시위를 벌인 까닭.

주최 측 추산 2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인 집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지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결국 비판을 수용하고 잘못을 고치겠다고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송환법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장관의 사퇴가 이뤄질 때까지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지난 16일 홍콩 시내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송환법 완전 철회와 캐리 람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8시간동안 시내 곳곳에서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이날 거리 행진을 주관한 시민인권전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된 시위가 오후 11시께 마무리됐으며 참가 인원은 200만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홍콩 경찰 측은 이날 시위대 규모를 33만8000명으로 추산했으나 예정된 도로 이외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던 시위대 숫자는 빠져있음을 인정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건물 안에 상주하며 주요 시설물 방어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 시위는 전날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처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됐다. 캐리 람 장관은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의 다양한 우려를 반영해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주최 측은 이날 시위도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인원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날 시위에는 어린이에서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홍콩 시민들이 참여했다.

홍콩 시내 정부 청사 외곽까지 진출한 시위대는 청사와 시티타워를 잇는 인도교에 ‘범죄인 인도법 철회’ ‘캐리 람 장관 퇴진’ 등을 주장하는 구호가 적힌 수천개의 종이 쪽지를 벽면과 바닥에 부착하기도 했다.

8시간 반 동안 홍콩 시내 곳곳에서 행진과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던 시위대는 이날 저녁 11시께부터 자진해산하며 귀가했다.

일부 시위대들은 물을 나눠주고 거리 청소까지 마무리해 쓰레기 봉지를 한 곳에 모아두는 등 평화시위를 위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홍콩 시위대가 지난 12일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협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편, 캐리 람 장관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홍콩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을 엄중히 받아들이며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며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송환법 반대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캐리 람 장관이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그는 시위대가 요구한 송환법 철회와 자신의 사퇴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송환법 추진으로 촉발됐으나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밀어붙여온 ‘중국화’에 대한 홍콩인들의 거부감이 폭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됐지만 중국과 영국의 합의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속에 정치, 입법, 사법체제의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돼왔다.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송환법 개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홍콩 시민들은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본토로 송환하는 등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송환법이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추진 동력을 상실하면서 자연스럽게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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