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지난해 대형 병원 간호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병원 내 가혹행위인 이른바 ‘태움’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됐으나 이런 관행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조직문화와 선임의 괴롭힘, 과도한 업무량, 병원의 무관심이 신참 간호사의 사망과 높은 이직률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

간호사들은 인력 확충을 위한 방안 대신 기존 간호사의 근속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월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는 국내 종합병원 11곳을 대상으로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1개 병원에서 총 37건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고 24일 밝혔다.

고용부는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종합병원 50개소를 대상으로 근로조건 자율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자율 개선을 이행하지 않은 11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였다.

특히 이번 근로감독 과정에서 병원 내 직장 괴롭힘 관행이 확인됐다. 고용부가 조사에 나서 태움 관행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 담긴 일종의 은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뜻한다.

실제로 지난해 아산병원 고(故) 박선욱 간호사와 올해 초 서울의료원 고(故) 서지윤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태움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

그동안 병원업계의 태움 관행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으며 이번 근로 감독 과정에서도 일부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A병원에서는 수습 간호사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꼬집히고 등을 맞은 사례가 적발됐다.

B병원에서는 신규로 입사한 간호사가 업무를 가르쳐 주는 선배 간호사로부터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폭언을 들은 사례도 있었다.

C병원에서는 후배 간호사가 환자들과 함께 있는 장소에서 선배 간호사로부터 인격 모독성 발언을 들은 사례가 확인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관련 개정 근로기준법의 시행을 앞두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 등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은 다음달 16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법은 사업장이 취업규칙 정비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자율적으로 예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괴롭힘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이와 관련,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해 취업 규칙에 조속히 반영하는 등 자율적인 예방·대응체계를 만들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지난 2017년 11월22일 부산 남구 동명대 중앙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회 간호학과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참가한 간호학과 4학년 학생 81명이 촛불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아울러 고용부 근로감독 결과 실제 일한 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이른바 ‘공짜 노동’이 병원업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의 인수인계 시간을 병원 측은 근로시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 심지어 조사대상 11개 병원 모두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의 경우 환자 상태 확인 등 인수인계를 위해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통상적으로 30분이나 1시간가량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병원에서 출퇴근 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병원 전산시스템에서 디지털 증거 분석을 통해 연장근로 증거를 확보하고 연장근로 수당이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

D병원은 3교대 근무 간호사가 환자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한 인수인계 과정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조기 출근 및 종업 시간 이후 연장근로를 인정하지 않아 직원 263명에게 연장근로 수당 1억9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E병원은 내부 규정상 오후 근무시간(오후 2~10시)을 초과해서 일한 사실이 있는 직원 1107명에게 야간근로 수당 1억9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이와 함께 정규직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금지를 위반한 사례도 있었다.

F병원은 단체협약에 규정된 자기계발비 지급 대상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제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공짜 노동’을 예방하기 위해 체계적인 출퇴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예방을 위해 인사노무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병원업계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근로 감독을 실시해 의료현장에서 노동 관계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종합 병원에 대한 수시 근로 감독이 병원업계 전반에 법을 지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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