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이 낙제점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직장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거나 본인이 하고 있는데도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소규모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 직장갑질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고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경우에는 실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참는 경우도 많다.

법 시행으로 직장 내 만연한 상사의 갑질 문화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직장갑질119 오진호 운영위원이 ‘직장인 1000명 갑질금지법 인식, 갑질감수성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직장인 ‘갑질’ 감수성 D등급..65%가 “괴롭힘 당했을 경우 참거나 모른 척”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68.4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등급으로 따지면 D등급(4등급)에 해당하는 낮은 점수다.

이번 조사는 총 30개 문항에 관해 묻고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1~5점으로 답하게 했다. 일례로 ‘몸이 아프면 병가나 연차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질문에 매우 동의하면 5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면 1점을 주는 식이다.

그 결과 ‘갑자기 일을 그만둬버린 직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항목은 감수성 점수가 43.7점에 불과했다. 즉 많은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일을 그만둬버린 직원에게 책임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항목으로는 ▲불시 퇴사에 대한 책임 ▲능력 부족 권고사직 ▲시간 외 근무 ▲부당한 지시 ▲채용공고 과장 등이었다.

특히 70점 이하, 즉 D등급에 해당하는 항목으로는 ‘휴일·명절 근무’, ‘법정휴가 사용의 자율성’, ‘휴일 체육대회·MT’, ‘회식·음주’ 등이 포함됐다. 직장생활의 이런 부분들과 관련해선 상대적으로 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회사가 어려워도 임금은 줘야 한다’는 질문은 84.6점으로 감수성 점수가 가장 높았다. 또 ‘폭언’, ‘모욕’, ‘근로계약서’, ‘연차’ 등의 문항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조현민·양진호 사건 등 대형 갑질 사건이 터진 것과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진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괴롭힘을 당했을 경우 65%가 ‘참거나 모른 척했다’고 답했다.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6.6%에 불과했다.

참거나 모른 척했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이유를 물어보니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절반 이상(66.4%)이었으며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29%였다.

아울러 16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한 조사도 실시했는데 직장인들의 33.4%만이 해당 법의 시행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 법과 관련해 직장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1.1%에 그쳤으며 취업 규칙이 개정됐다는 응답은 12.2%였다.

직장갑질119는 “설문조사 결과 대한민국 직장이 갑질에 매우 둔감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처벌 조항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도넘은 직장갑질, 허드렛일·업무전가에 사내행사 참여 강요까지 ‘부글부글’

한편, 직장 내 갑질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갑질을 한 상대방은 ‘직속 상사’가 1위를 차지했다.

취업포털 인쿠르트에 따르면, 지난달 26~28일 직장인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64.3%)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중견기업 직장인이 68%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은 56%로 나타났다.

갑질을 일삼은 상대방으로는 ‘직속상사, 사수, 팀장’을 꼽은 비율이 무려 51.0%로 과반에 달했다. 다음으로는 ‘상사’(타 부서)(13.4%), ‘임원급’(11.9%), ‘대표’(11.8%) 순으로 많았다. ‘동료, 동기’(8.4%)나 ‘대표의 가족구성원’(2.4%)을 가해자로 꼽은 경우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은 다양했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담당 업무가 아닌 잡무를 지시하는 것을 가장 큰 갑질이자 괴롭힘으로 보고 있었고 본인의 업무를 전가하는 것 역시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응답자들에게 ‘직장갑질 119’의 취업규칙 표준안을 참고해 선정한 보기 중에서 중복 선택하게 한 결과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갑질로 ‘업무와 무관한 허드렛일 지시’(11.6%)가 꼽혔다.

이어 ‘욕설‧폭언‧험담 등 명예훼손’과 ‘업무능력‧성과 불인정‧조롱’이 각각 11.3%로 공동 2위에 올랐으며 ‘업무 전가’ 역시 10.7%에 달하며 4위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회식참석 강요’(7.7%), ‘근무환경 악화’와 ‘근무시간 외 SNS로 업무지시’가 각 7.1%,  ‘사적 용무지시’(6.7%) ‘근로 계약 내용 불이행·불합리한 처우’(5.3%), ‘체육대회·장기자랑 등 사내행사 참여 강요’(4.5%), ‘따돌림’(4.5%)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괴롭힘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2차 피해 여파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6.7%는 ‘공황장애·우울증 등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원치 않는 퇴사’(17.5%), ‘인사 불이익’(11.5%), ‘신체적 피해’(8.1%)를 입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