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참석한 피해자들 “제발 정부·기업 관계자 처벌해 달라” 눈물로 호소
기업인들 “죄송합니다” 사과했지만 보상안 요구하자 “법률 조사 이후” 회피
공정위 “유착 정황 사실과 다르다” 주장, 환경부 “법안 개정할 것” 대안 발표

[공공뉴스=정규민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개최됐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증인들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구체적인 피해 보상안에 대해선 침묵을 이어갔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 위원회(이하 특조위)는 27~28일 양일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했다.

특조위는 27일 오전 기업 분야, 오후에 정부 분야와 피해지원 분야를 중심으로 청문회를 진행했다. 이어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RB’)를 비롯해 LG생활건강·환경부·국방부·질병관리본부를 대상으로 안전 관리 실태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증인 80명, 참고인 18명에 대한 소환도 진행됐다. 청문회 첫날 청문회는 증인 46명, 참고인 7명이 참석했으며 2일차엔 중복 증인을 포함해 증인 39명, 참고인 7명 등 참사 관련 기업과 정부 전·현직 핵심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피해 지원 분야에 대한 질문은 양일간 이어졌다.

특히 전·현직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인정질환확대 및 판정 기준 개선의 적정성 문제와 피해지원 과정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질문하고 질병관리본부, 환경부 등 정부관계자를 대상으로 ‘질병관리본부의 피해조사에 대한 소극적 행정문제’, ‘특별법 제정 지연 및 피해지원 축소’, ‘천식 인정 관련 정부의 피해지원 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해 청문했다.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장완익 위원장이 개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장완익 위원장이 개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SK케미칼·애경 “피해자에 죄송”, 구체적인 보상 내용은 “조사 결과 나온 후”

첫 날 청문회에 앞서 장완익 특조위 위원장은 “이번 청문회가 가습기살균제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확립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청문회에 임하는 각오를 나타냈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청문회장에 참석했다. 피해자들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거나 들것에 실린 채 청문회장에 입장했다.

가습기 살균제 아이 피해자 대표 이광희씨는 “첫째는 폐렴, 천식, 둘째는 간질성 폐질환 천식 등을 앓고 있다. 한 살에 폐가 터졌던 아이인데, 이 아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한다”며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어떤 험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렇게 위험한 병들을 얻었는지 환경부는 대답해달라. 그리고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가해 기업은 피해자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또 다른 피해자 가족 김태종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다 줘 아내를 상처 입힌 자신은 죄인이라는 말과 함께 “지금 아내는 산소호흡기, 석션 등 여러 장치가 없으면 삶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교회 성가대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할 정도로 호흡에 지장 없던 사람이 가습기 살균제를 1년 사용한 후에 숨을 못 쉬겠다고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이 곳에 참석한 이유는 기업들이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화 한통도 온 적이 없다”며 “분명히 위급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현실을 특조위에서 꼭 밝혀주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후 기업들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특조위는 기업 전·현직 관련자를 대상으로 ‘가습기살균제 최초 개발 경위 및 원료 공급과 제품 제조·판매 과정’, ‘참사 대응과정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이날 출석한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과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는 “피해자들에 죄송한 마음 뿐”이라며 질의에 응답했다.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은 재직 당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본인 책임이 있다며 “진심으로 사과하며 모든 죄는 저희 쪽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이 사건에 대해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갖고 피해자분들과 소통하고 협의해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는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빚게 돼 국민들에게도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SK케미칼이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간의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피해를 지원해드리고 소통을 하는 점에 있어서 부족했다는 따가운 질책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서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진일보된 노력을 하겠다”며 “다시 한 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고통 받고 계시는 피해자 분들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애경과 SK케미칼 모두 대응 팀 운영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채동석 전 애경산업부회장은 압수수색에 대비한 자문을 구하며 자료 삭제에 대해 질문한 사실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두 기업 모두 구체적인 피해보상안에 대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다. 두 기업 모두 “현재 법적 조사를 받고 있는 만큼 결과가 나온 후 피해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해 현장에 참석한 피해자 및 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청문회 둘째 날, 진행된 참고인 조사에서 LG생건과 옥시RB 등 기업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옥시RB에서 출석한 증인은 박동석 옥시RB 대표이사 뿐이었다. 락스만 나라시만 레킷벤키저 글로벌본부 CEO 내정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옥시RB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거라브 제인이 2008년 한국의 방송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을 취재하겠다고 요청했지만 ‘현재 포뮬러에 대한 인체 안전성 자료는 없다’는 메일을 회신했다”며 “거라브 제인은 가습기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옥시RB가 한국 뿐 아니라 본사에서도 조직적으로 피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주장이다.

특조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옥시RB는 2011년 조모 교수에게 “우리 제품을 사용해 발생한 폐질환에 다른 원인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제품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작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계약서를 발송했다.

최 부위원장은 “현재도 수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옥시RB는 앞으로 정부가 추가로 인정하는 피해자들에 대해 폐 손상 보상과 마찬가지로 보상해야할 것”이라며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옥시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기준으로 제품을 제작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하지만 출석도 하지 않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주 기만적인 이중행태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락스만 나라시만 옥시RB CEO 내정자는 한국에 방문해 피해 국민께 사과하고 전향적인 피해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가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가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7년 공정위 TF 팀은 내부 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청문회 기간 내 오후 세션은 정부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특히 유착 정황을 보인 공정위와 유해성 심사 및 관리의 문제점을 보인 환경부, 국방부의 군 가습기 사용실태 및 피해규모 추산의 문제점 등이 다뤄졌다.

공정위는 2012년 살균제 문제가 터져 나온 직후 판매 기업들에 대해 CMIT-MIT 성분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했다. 피해 사실이 밝혀지는 등 시간이 지나 다시 조사가 시작됐지만 심의가 종결된 바 있다.

거듭 재조사를 거쳐 공정위는 지난해 기업들에 과징금 1억3400만원을 납부하라고 명령했지만 기업들은 ‘처분 시한이 지났다’며 취소 청구 소송을 진행했으며 공정위는 계속해 패소하고 있는 상태다.

특조위는 청문회에서 피해자가 있음에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애경 측 내부 문서에 적힌 기업 측 대응 팀에 공정위 관계자가 있다”고 유착 정황을 지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당시 조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권오승 2017년 공정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처리평가 TF 팀장은 유착 등 정황을 파악했냐는 질문에 “TF팀에서 이 사건이 적절하게 조사되고 적절하게 의결됐는지 조사했으나 유착 행위 등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2017년 공정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처리평가 TF팀(이하, TF팀)은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사건을 제대로 조사 했는지, 제대로 심사했는지, 그 기준이 적절했는지를 따졌다”며 “이제 와서 당시 상황에서 왜 정황을 못 파악 했느냐고 하는 것은 당시 상황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2017년 TF팀은 공정위의 적절하지 못한 조사를 재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유착 등 행위를 TF가 판단했다면 유감 표명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TF팀의 구성과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수의 내부인원과 다수의 외부인원으로 TF팀이 꾸려진 탓에 내부 유착 정황 등을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TF에서는 절대로 유착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내부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TF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환경부의 미흡한 대처도 큰 논란이 됐다. 환경부의 ‘피해자 찾기’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단순 전화로 피해사실 접수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특조위는 “2011년에 임산부가 피해사실을 알렸는데 그 이후 질병관리본부, 환경부 모두가 손을 놓았다. 그나마 피해자들이 시민단체에 찾아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하소연을 했다”며 “환경부는 아직도 앉은 자리에서 신고 전화만 받고 있으며 접수도 엉터리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발간된 국제 학술지를 언급하며 “한국의 어린아이들 중 10명 중 3명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앉아서 전화만 받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심각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꼬집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기대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다. 전화 상담 업무를 진행하는 분들의 고충을 들으면 힘든 점이 있다”고 반박하며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욱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피해자 찾기가 결국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만 거센 가운데 이들 추후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28일 서울시청 다목적 홀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28일 서울시청 다목적 홀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족한 피해 지원, 다시 한 번 도마 위

한편, 피해지원 과정의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도마 위로 올랐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정부가 인정한 구제급여와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구제계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폐질환(1∼3단계), 천식, 태아피해, 독성간염, 기관지확장증, 폐렴, 성인·아동 간질성 폐질환, 비염 등 동반질환, 독성간염만 피해 질환 요소로 인정하고 있는 형국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결막염 및 타 폐질환, 내분비계 질환과 피부질환에 대해서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청문회에서 특조위는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질환과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한 질환 사이에 많은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증 받고 있는 피해 범위를 대폭적으로 확대할 예정 중에 있다. 지난해부터 피해 지원이 늘어나고 있고 지원 질환도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에서 피해를 인정해야만 피해를 인정받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을 통해 다음 달 중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규정 개선에 대해 “법적으로 규정된 건강 피해 인증 개념을 삭제하고 가습기 살균제 노출 후 건강이 악화됐다면 무조건 피해사실에 대해 지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더해 구제급여와 구제계정 등 나눠진 지원 체계도 통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첫 피해사실이 확인된 후 진상 규명을 위해 8년이 걸렸다. 하지만 바뀌겠다, 보상하겠다는 말 뿐 구체적인 알맹이는 빠졌다는 목소리만 더욱 커진 상황.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한 청문회가 말 뿐인 사과에 그쳤다는 평가만 마주한 가운데, 과연 기업·정부의 움직임이 청문회를 시작으로 되돌릴 수 없는 피해 사실에 대해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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