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어긴 일본, WTO에 제소..국제적 규탄 속 협의 이룰까
“반도체 수출 제한, 강제징용 판결 의식한 차별적 조치” 강조
10일 이내 양자협의 요청 응답, 30일 이내 협의 개시 절차

[공공뉴스=문병곤 기자]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을 수출규제한 지 두 달을 넘긴 가운데, 정부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히면서 반격에 나섰다.

정부는 WTO 제소를 통해 절차에 따른 한·일 양국 간의 협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양자협의가 순조로울 경우 현 사태는 조기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양자협의마저 파행될 경우, 일본 수출 규제는 WTO의 분쟁해결기구에 의해 판단된다. 국제적인 규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일본 측이 이번에는 협의에 순응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분쟁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유명희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조치를 WTO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분쟁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유명희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조치를 WTO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 정부 “일본 수출제한 조치,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일본이 지난 7월4일 시행한 수출제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인 동기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취해진 차별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해 한국만을 특정해 포괄허가에서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의 근본 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 대우 의무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최혜국대우 의무는 같은 상품을 수출입 하는 과정에서 WTO 회원국들 사이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말한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도 어겼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자유롭게 교역하던 3개 품목을 각 계약건별로 반드시 개별허가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근 2개월 동안 수출 규제품목 심사를 진행하면서 단 3건에 대해서만 수출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있다”며 “주문 후 1~2주내에 조달이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90일까지 소요되는 정부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마저도 언제든지 거부될 수 있어 불확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조치는 현재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정부도 이에 대한 상세한 검토를 완료한 상태”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본부장은 WTO 제소 절차의 첫 단계인 양자협의에 대해 “앞으로 정부는 일본 조치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지적하고, 일본의 입장을 듣고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같이 모색하고자 한다”며 “일본 정부도 성숙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협의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어 “양자협의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WTO에 패널 설치를 요청해 본격적인 분쟁해결절차를 진행해나갈 것”이라며 “양국 기업들과 글로벌 공급사슬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조속히 해소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 <사진=뉴시스>

◆ ‘국가 안보’ 들먹인 日..정부 “제소 조치 합당”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에 대해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였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는 7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는 국가 안보 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WTO에서 의제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는 전쟁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WTO 제소 조치가 합당하다고 반박했다.

또한 정부는 일본이 어떠한 대화나 합의도 없이 사흘 만에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진행했다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 규정도 어겼다고 설명했다.

유 본부장은 “일본은 아무런 사전 예고나 통보 없이 수출규제를 시행하면서 이웃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여주지 않았고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조치는 현재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정부도 이에 대한 상세한 검토를 완료한 상태”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일 일본 츠쿠바에서 열린 '2019 G20 무역디지털경제 장관회의'에 참석해 로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과 면담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일 일본 츠쿠바에서 열린 '2019 G20 무역디지털경제 장관회의'에 참석해 로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과 면담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WTO 통한 분쟁 해결 절차, 어떻게 진행되나

한편, 정부가 이번에 WTO 통한 분쟁 해결 절차를 밟게 되면 일본은 10일 이내에 양자협의에 대한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이 후 30일 이내에 협의를 개시해야한다.

정부는 양자협의서에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와 함께 관련 기술 이전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조치를 포함했다고 밝힌 상황.

만약 일본이 이에 응답하지 않거나 60일 이내에 협의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정부는 WTO에 패널의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패널은 사안에 충분한 학식과 경험을 갖춘 정부 및 비정부 인사로 구성되며, 해당 건에 대해 권고하거나 도움이 될 평결을 내리는 곳이다.

패널심리는 분쟁당사국과 제3자국이 참여한 가운데 6개월 이내에 이뤄진다. 최대 기한은 9개월이고 긴급 사안은 3개월 내 결론이 지어진다.

이후 양국은 패널보고서를 제출하고 회원국이 회람 후 찬성하면 패널보고서를 채택한다.

만약 일본이 패널의 결정이나 권고에 대해 불복하는 경우, 상설 상소기구를 통해 상소할 수 있다. 상소기구는 최종 심의 기관으로 패널의 법적 평결과 결론을 지지, 수정 또는 파기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패소국은 분쟁해결기구의 권고·결정에 대한 이행계획을 보고해야 한다.

만약 합리적 기한 내 이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완전 이행시까지 보상에 대한 협의와 분쟁해결기구의 대응 조치가 각각 20일과 10일 내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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