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삼성 경영권 승계와 분식회계 사건 관련성 구체적 언급
국민연금·계열사 압수수색 등 삼성 합병 과정 수사력 집중
총수 이재용 향하는 사정당국 칼날..“그룹 차원의 불법 행위”

[공공뉴스=이상호·이민경 기자] 오는 10월2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가 올해도 어김없이 다수의 기업인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신청, 치열한 ‘증인 전쟁’을 펼쳤다. 도돌이표 ‘기업인 국감’에 재계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했고,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20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한방’을 노리는 의원들의 ‘망신주기 제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컸다. 그러나 ‘조국 정국’과 기업인 증인채택 자제 기조 아래 핵심 증인과 참고인은 모두 빠진 ‘맹탕 국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형국. 이런 가운데 해마다 국감 증인 신청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이자 삼성의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도 정무위원회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편법승계 등 의혹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 국감 시즌인 10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모습. 더욱이 2019년은 이 부회장에게 ‘악재의 해’로 기록되는 모양새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상반기 실적은 곤두박질을 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도 부족하다는 대외적 평가가 나온 까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의 재구속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삼성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러나 이 부회장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으면서 오히려 총수가 기업 이미지에 ‘독’으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이 부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잡음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책임 소지는 거의 명확한 분위기다. 그의 책임 문제가 올해 국감에서도 도마 위에 오를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 사건과 관련, 사정당국의 칼끝이 다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이 부회장의 승계 과정을 재차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중요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 대법원이 지난달 열린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 그룹차원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했다’고 인정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한 최근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를 다루는 첫 재판은 ‘합병 관련성’ 공방으로 번지기도 했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 측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이후 검찰 수사 등을 우려해 삼성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봤다.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배경은 삼성 경영권 승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재판장 소병석)는 지난 25일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모 재경팀 부사장과 김모 사업지원 TF부사장, 박모 인사팀 부사장 등 삼성 임직원 8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이번 증거인멸 사건의 본류인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사건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허위 공시와 고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것.

검찰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으로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해야 했다”면서 “지분 구조에 따라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와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가치가 높게 평가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이 부회장 등 삼성 일가는 제일모직 지분 42%를 보유 중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 4%를 가진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은 적어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에 합병하는 것이 그룹 차원에서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에피스 설립 당시 합작사인 미국의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제일모직 가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어 콜옵션의 구체적 사실 등을 숨기는 방식으로 허위 공시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조사를 받던 당시 삼성바이오가 핵심 내용을 삭제한 보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삼성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조작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승계를 위한 과정에서 이뤄진 불법을 숨기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증거를 인멸했다는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는 금감원 조사가 시작되자 조작된 자료를 제출, 분식회계를 숨기려 했다”면서 “이후 검찰 수사를 예상했고 그룹 차원의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짜맞춘 것”이라며 “이를 포착한 금감원과 검찰 등의 수사 회피를 위해 삼성그룹 차원의 대응을 강구하고 대대적인 증거인멸을 시행한 것이 이 사건의 요지”라고 강조했다.

삼성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한다면서도 법리적으로 다투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삼성 측은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자료 삭제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분식회계 의혹을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지난 23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정 합병과 관련이 있는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진은 이날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찰 관계자들이 자료를 들고 장내를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윗선’ 향하는 검찰 칼날..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수사 속도

앞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0.35 비율로 합병했다. 당시 삼성물산보다 규모가 작은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가 3배 이상 높게 평가되면서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2016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동조를 하면서 의혹에 대한 파장은 커졌다.

이들은 분식회계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정당화해 이 부회장의 승계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내부문건을 공개하기도 했다.

검찰이 삼성 경영권 승계 이슈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지난달 대법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안팎의 시각. 대법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의 2심을 다시 판단하라고 결정하면서 삼성그룹 차원의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봤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달 23일 국민연금과 삼성 계열사 등 10여곳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이 된 곳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두 회사의 합병은 2015년 7월 주주총회에서 옛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하면서 이뤄졌다.

이를 두고 검찰은 국민연금이 삼성바이오의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처럼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부정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윗선’인 이 부회장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소식에 박 의원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의원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비록 만사지탄이지만 검찰이 지금이라도 ‘사기적 부정거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사기적 부정거래는 자본시장법 상 주가조작, 내부자거래, 미공개정보이용 등이다.

박 의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5년 3월26일부터 합병기준일(2015년 5월22일) 이전까지 삼성물산 주식 294만주를 매도했다가 합병기준일 이후부터 7월3일까지 376만주를 매수했다.

박 의원은 “합병기준일 이전까지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대량 주식매도, 합병기준일 이후부터는 주가를 매수청구권 가격 이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대량 주식매수 행태를 보이며 삼성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해하기 힘든 매매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국정농단국정조사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합병기준일 이후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한 것은 ‘합병 부결시 지분경쟁가능성으로 인해 삼성물산의 일시적 가격 급등이 예상됐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박 의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국민연금은 자신들의 합병에 반대하면 합병이 부결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합병에 찬성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며 “2015년 상반기 다른 건설사 주식들은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에 힘입어 2~30%대의 주가 상승률을 보인 반면, 국민연금의 대규모 삼성물산 주식 매도 등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만 8.9%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삼성합병 비율 1:0.35는 자본시장법의 규정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 주가에 의해 결정됐다”면서도 “삼성물산 주가가 누군가에 의해 낮게 의도됐다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삼성합병과 관련해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 수사에 나선 이상 더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며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삼성 계열 금융회사들이 삼성물산 주가 조작에 가담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박 의원은 “삼성합병을 앞두고 용인 에버랜드 땅값의 이상 급등에 대한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제일모직 주가를 띄우기 위한 사기적 부정거래가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2019 국감 시즌 돌입..이재용, 정무위 증언대 서나?

한편,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계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기업인 소환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재벌 총수를 비롯한 기업인 증인 신청만 100여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대내외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기업인 증인 요구를 자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국회 각 상임위별로는 이미 증인 등 출석 대상자를 합의했거나, 협의 중이다. 현재까지 국회 호출을 받은 재벌 기업 총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뿐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 정무위원회 국감 증언대에 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이 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기 때문.

추 의원은 이번 국감서 재벌 총수의 비리와 대기업의 불공정, 갑질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증인채택 여부에 관심이 쏠리면서 이 부회장의 증인 채택은 아직까지 확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 속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을 국감에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2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과 가치 중심의 진짜 국정감사를 촉구한다”며 “국감 증인, 참고인 채택에 난항이 있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은 불러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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