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지역 전기배전 노동자들 3개월 간격으로 기저피부암 진단
옥외노동자들을 위한 정부 대책 마련 시급..가이드라인 강제성 없어

 

 

배전전기원 노동자들이 비슷한 시기 기저세포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배전전기원 노동자들이 비슷한 시기 기저세포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직업 특성상 배전전기원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야외에서 자외선에 노출된다. <사진=뉴시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배전전기원 노동자들이 비슷한 시기 기저세포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저세포암은 피부암의 일종으로 표피 및 그 부속기 기저부의 비각질화 세포에서 유래한 악성종양 중 하나다.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직업 특성상 배전전기원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야외에서 자외선에 노출된다.

1일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따르면 전남지역 서모(59)·박모(59)씨는 최근 3개월 간격으로 기저세포암 진단을 받았다.

기저세포암은 기저세포(basal cell)에서 발생한다. 이는 처음에 뾰루지(여드름·좌창) 같은 것이 생긴 뒤, 매우 느린 속도로 자라서 몇 개월 후에는 빛나는 반투명한 상처가 되었다가 결국 작은 궤양을 형성한다. 딱지 같은 표면을 벗겨내면 피가 나고, 또 다른 투명한 딱지를 형성하여 치유되는 것처럼 보인다. 느리게 성장하고 매우 드물게 전이하기는 하지만, 주변 조직을 침투하여 상당히 괴사시키므로 모양이 일그러진다. 상당부위를 외과적으로 절제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며 가장 큰 원인은 자외선으로 알려져 있다.

서씨의 경우 오른쪽 눈썹 윗부분에 사마귀 같은 혹이 생긴 것을 발견, 조선대병원 진단 뒤 기저세포암 진단을 받았다. 1979년 이 일을 시작한 그는 40년간 매일 하루 8시간 이상 야외에서 전봇대 일을 진행했다. 현재는 두건 등으로 노출된 피부를 가리긴 하지만, 과거에는 직접적으로 햇볕에 노출된 채 일을 해야만 했다.

박씨는 전남 나주에서 8년간 전봇대 설치와 배전설비를 설치·유지·관리·보수하는 일을 해왔다. 그는 이마에 생긴 종괴에는 괴양이 발생했고, 지난 7월 전남대병원에서 기저세포암 확진을 받고 수술을 진행했다.

이들은 “옥외작업을 장시간 하면서 자외선에 노출, 피부암에 걸렸다”면서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에 산재요양급여를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들을 상담한 송한수 광주근로자건강센터장은 “자외선 자체가 기저세포암과 관련성이 높다”면서 “야외 작업자인 데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일했기 때문에 서씨와 박씨가 다른 사람보다 자외선 노출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센터장은 “옥외노동자들에게서 기저세포암뿐만 아니라 자외선 노출 관련 피부질환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이 자외선 노출시 암 발병 사실 자체를 모르는 만큼 옥외작업시 자외선 노출에 의한 피부암 발생위험 교육을 하고, 적정 보호구를 착용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이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가 폭염·한파·미세먼지에 노출된 채 일하는 옥외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내리쬐는 자외선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만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6월 배포한 ‘열사병 예방 3개 기본수칙(물, 그늘, 휴식) 이행 지침’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 제공과 규칙적으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치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 제공 ▲실외 온도 35도가 넘으면 무더위 시간대(오후2~5시)는 불가피한 경우 제외하고 옥외작업 중지 ▲실외 온도 38도가 넘으면 무더위 시간대는 재난 및 안전관리에 필요한 긴급조치 작업 외 옥외작업 중지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은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다. 배전전기원 노동자 뿐만 아니라 옥외에서 일하는 이들 모두, 자외선을 포함해 폭염과 미세먼지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최근 조합원 3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폭염을 피해 그늘진 곳에서 쉰다’고 답한 근로자는 26.5%(101명)에 불과했고 ‘아무데서나 쉰다’는 응답이 73.5%(281명)나 됐다. ‘기온이 35도가 넘어도 일을 계속한다’는 응답도 78.0%(298명)에 달했다.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없다고 답한 근로자는 14.8%(57명)나 됐다. ‘세면장이 없다’고 답한 근로자도 20.2%(77명)였다.

센터 측은 “농민과 철도·도로 보수 노동자, 건설·택배 노동자, 경찰공무원 등 최소한 300만명 이상 되는 옥외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실태조사를 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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