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파기환송심 첫 공판서 삼성 내부통제 등 언급하며 강화 주문
경실련·경개연 “재판업무 범위 벗어나..양형 가이드라인 제시” 비판

[공공뉴스=정혜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린 25일,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피고인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것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불편함을 드러냈다.

당시 재판 말미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기업 총수로서의 역할’ ‘삼성의 내부통제장치 강화’ 등을 언급했고, 시민단체들은 재판부가 재벌 총수를 봐주기 위해 양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경실련은 28일 성명을 내고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에 입각해 정의롭게 판단하라”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 있는 재벌 총수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양형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유를 제시한 것 아닌가 의혹을 살 수 있는 발언들을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재판부는 “재판 진행이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둡니다”라고 했지만, 이후 “심리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며 피고인에 대해 당부의 말을 남긴 것을 경실련은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이는 재벌 총수 봐주기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대법의 파기환송 취지에 입각해 사법정의와 국민상식에 부합하는 공정한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은 과거 재벌 총수나 기업의 임원의 횡령 배임 등의 비리사건들에서 사법정의와 국민상식과 동떨어진 봐주기 판결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과거 경제발전의 기여나 현재의 경제위기를 들어 각종 범죄행위로 얼룩진 재벌 총수나 기업임원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줘왔다”고 비판했다.  

또한 “국민들은 더 이상 이러한 퇴행적 ‘재벌총수 봐주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번 재판에서 또 다시 반복된다면 사법부 또한 엄중한 국민의 심판에 직면해야 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실련은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정한 결탁은 반드시 단죄된다는 기본원칙이 꼭 지켜져 정경유착의 근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꺼져가는 ‘재벌개혁’의 불씨를 살리고, 공정경제의 기반을 다져 혁신성장의 유인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일인 지난 8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대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일인 지난 8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대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편, 경제개혁연대 역시 논평을 통해 당시 재판부의 조언과 당부는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향후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재판장의 삼성과 이 부회장에 대한 발언은 단순 훈계 차원이 아닌 양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것이 경개연의 판단.

정 부장판사가 삼성 내부에 강력한 내부통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경개연은 “이 사건의 본질은 준법감시제도의 부재에 따른 것이며, 향후 삼성의 내부통제장치가 강화될 경우 양형에서 고려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재판장의 입장에 따라 삼성전자는 향후 내부통제장치 강화안을 마련해 파기환송심 선고 전 발표할 것이라는 게 경개연의 주장.

경개연은 “재판장은 자신의 조언을 성실히 이행한 피고인에게 과연 엄중한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장이 재벌 범죄의 폐해로 공정경제의 훼손과 국가 혁신경제 장애를 든 것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재벌범죄가 반복되는 것에 사법부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경개연은 2013년 9월 발표한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분석’ 보고서를 언급하며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횡령·배임액 규모가 커질수록 양형기준에서 정한 하한을 이탈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경우 양형 가중사유보다 감경사유를 두 배 가까이 많이 적용했으며, 심지어 양형 사유를 설시하지 않은 집행유예 판결도 다수 확인됐다”면서 “이 집행유예 판결 대부분은 재벌 범죄로 분류되는 사건들”이라고 전했다.

경개연은 “물론 과거와 같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양형사유에 언급하는 일은 양형기준 시행 이후 거의 사라졌지만, 재벌에게만 온정적인 사법관행은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불필요한 논란이 일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재판부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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