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 “지위 포기 따른 피해 없도록 조치”..농업계 ‘반발’ 진통
농협 조합장, 대책 촉구 대정부·국회 건의문 채택 후 국회·정부 전달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정부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25년간 유지해 온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최근 공식적으로 내려놓은 것을 두고 진통이 상당하다.

WTO 개도국 특혜 포기는 국제 위상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며 정부는 불가피성을 피력했지만, 이에 따라 수입 농수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비롯해 향후 WTO 협정에서의 150개에 달하는 우대 조항을 잃게 돼 성난 농민들의 원성은 커지는 형국이다.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가 향후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29일 “국익을 최우선에 놓고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영향 등을 깊게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정부도 농업인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농산물 관세와 보조금에 미치는 당장의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는 미래의 농업협상에서도 쌀과 같이 민감한 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것”이라며 “농업의 피해는 보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총리는 “이번 결정을 우리는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출발로 삼아야 한다”며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농업인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체제를 가동해 현장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해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필요 재원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면서 “농업인들께서도 정부를 믿고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 25일 향후 WTO 협상이 진행될 때 더 이상 농업 분야의 개도국 특혜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한국을 비롯해 경제 발전을 이룬 몇몇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한국은 1996년 WTO에 가입할 당시에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은 G20에 회원국이면서 OECD 회원국이며, 세계은행 고소득 국가(1인당 GNI 1만2056달러 이상) 세계 상품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조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불공정 국가의 조건 4개중 모두 해당한다.

국내 농업 분야는 그동안 개도국으로서 특혜를 인정받아 관세와 보조금에 있어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개도국 포기 선언에 농업의 경쟁력과 농가소득은 상당한 타격이 예고되고 있다.

실제로 수입 농산물의 관세를 낮추고, 정부가 지급하는 농업 보조금도 줄여야 한다. 최대 513%까지 적용되던 수입 쌀 관세율이 떨어지는 등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농업이 WTO 가입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 결정이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아직 대부분의 농작물이 노지재배 중으로 매해 기상 상황이나 자연재해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아 농산물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농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 경기도농민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은 전날(28일) 경기도청 앞에서 정부의 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을 규탄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은 농민에게 농업을 그만두라는 것과 같다”며 “농업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통상주권, 식량 주권을 실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은 이날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대책을 촉구하는 대정부·국회 건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국회와 정부에 전달했다.

이들은 건의문에서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 250만 농업인들은 깊은 좌절감과 함께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농업예산 국가 전체예산의 최소 4% 이상 수준으로 확대, 농업보조정책 직불제 중심의 선진국형으로 전환, 직불제 예산 5조원 수준 확충 등 대책 실행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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