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이상명 기자]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 34주차인 임산부를 상대로 불법 낙태 수술을 하다 아기가 살아서 태어나자 고의적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임신 후기에 해당하는 34주에 태아는 몸무게가 2.5kg 안팎까지 자라고 감각체계가 완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죄와 낙태죄의 보호법익은 모두 ‘생명’이다. 그러나 살인죄는 ‘사람’을 죽였을 때, 낙태죄는 ‘태아’를 죽였을 때 각각 성립한다. 결국 살인죄 성립 여부는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사진=뉴시스>

◆낙태 수술 중 태어난 ‘34주 아기’ 숨지게 한 의사 구속

3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살인과 업무상촉탁낙태 등 혐의로 60대 산부인과 의사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 3월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34주차인 B씨를 상대로 제왕절개 방식의 낙태 수술을 한 뒤 아기가 살아서 태어나자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살아있다는 것이 명확했지만 A씨가 의도적으로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에 대해서는 신생아를 살해할 고의는 없었다고 보고 낙태 혐의만 적용해 입건했다. 경찰은 이번 주중으로 수사를 마무리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4월 낙태를 전면 금지한 형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낙태가 가능한 한도로 제시한 바 있다.

검찰은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 12주 이내면서 헌재가 제시한 낙태 허용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소유예 처분하고 있다.

임신 초기 낙태를 금지한 현행법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 이후 임신부 부탁으로 낙태 수술을 해준 의사에게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12단독 김석수 부장판사는 22일 업무상 승낙 낙태 혐의로 기소된 현직 의사 C(60)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C씨는 임신 4주의 임산부로부터 낙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난해 6월30일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4월 헌재는 임신 초기의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규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이와 함께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자기낙태죄가 위헌이므로 동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김 판사는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형법 270조 1항(부탁을 받고 낙태 수술한 의사 처벌 조항)은 소급해 효력을 잃었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앞서 7월 광주지법 형사3부(장용기 부장판사)도 업무상 승낙 낙태 혐의로 기소된 의사 D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헌재 결정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D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광주의 한 병원에서 임신부 부탁으로 67차례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4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사면허 ‘취소’란 없다?..재교부 승인율 98%

한편, 범죄에 연루돼 처벌받아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사 대다수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허를 재교부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의사면허 취소 현황’에 따르면, 2019년 6월 현재까지 228건으로 조사됐다.

현행 의료법은 일부 형법 및 의료법령 관련 법률 위반에 한해서만 면허취소가 가능하다. 일반 형사범죄(횡령, 배임, 절도, 강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나 특별법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 처분을 받더라도 면허에는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아 개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복지부가 제출한 최근 5년간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및 신청결과’를 보면 2015년부터 현재까지 면허 재교부 신청은 총 55건으로 심사 중인 1건을 제외한 53건이 승인돼 98%에 달하는 승인율을 보였다.

면허 취소 사유를 살펴보면 ▲부당한 경제적 이익 ▲마약류 관리법 위반 ▲면허대여 등으로, 이들은 면허취소 후 1~3년 안에 재교부 신청을 하면 대부분 재교부 승인을 받아 죄질에 상관없이 면죄부를 부여받는 사실상 종신 면허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8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일부 개정해 ‘진료행위 중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1항 제3호의 죄(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등)를 범한 경우 12개월의 자격정지’를 명시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자격정지에 불과한 상황이다.

기 의원은 “의사가 성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아도 의사면허가 유지되는 등 현행 의료법은 의사면허 취소나 취업 제한에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또한 개전의 정(소명서) 등을 평가할 별도 심의 기구 없이 복지부가 자체 재교부 심사를 하고 있어 면허 재교부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의사 면허 관리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의사면허 재교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 심의위원회 등의 의견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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