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성범죄자들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법원이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뉴시스>

◆며느리 직장 찾아가 강제추행한 시아버지 집행유예

며느리 직장에 찾아가 강제추행 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시아버지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부천지원 제1형사부(임해지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60)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40시간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및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하고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장애인복지시설 취업도 3년간 제한했다.

A씨는 지난해 3월1일 며느리 B씨가 운영하는 경기 김포시의 매장을 찾아가 통화를 하는 B씨의 오른쪽 뺨에 입을 맞추고 뒤에서 껴안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가 어디냐’고 물은 뒤 CCTV에 안 잡히는 씽크대 앞에서 B씨에게 입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며느리인 피해자를 두 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고 며느리는 이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동종범죄나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친족 간 성범죄의 경우 같은 공간에 또다시 마주칠 일이 많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에 대한 수치심과 괴로움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는 만큼 단지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2009년에도 며느리를 강제 추행한 공무원 시아버지에게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며느리를 수차례 추행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도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해볼때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데다 성추행 부분을 문제 삼지 않다가 남편과 혼수 문제 등으로 다툼이 생기자 피고인을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참작 사유를 밝혔다.

피고인은 2007년 5월 서울의 한 노래방에서 아들 부부와 음주 가무를 즐기던 중 피해자를 끌어안고 신체 접촉을 강요했다. 피고인은 이 같은 방법으로 2007년 5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노래방 도우미 취급받는 것 같았다”며 “인상을 쓰고 몸을 빼면서 ‘그만 두시라’고 말했으나 피고인은 오히려 ‘며느리가 시아버지 기분도 못 맞추느냐’고 나무랐다”고 진술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제추행한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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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성범죄 판결..집행유예 비율 늘었다

한편,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해 재판을 받은 사람 중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이 2014년 24.83%에서 2019년 35.40%로 증가했다.

또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재판을 받은 사람 중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 역시 37.08%에서 2019년 39.54%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벌금 등 재산형의 선고를 받은 사람까지 포함할 경우 이 수치는 더욱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경우 최근 5년간 처벌 받은 인원 중 집행유예, 재산형을 선고 받은 인원은 1만8248명으로 전체인원(2만8185명)의 64.74%에 해당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경우에도 최근 5년간 처벌 받은 인원 중 집행유예, 재산형을 선고 받은 인원은 5515명으로 전체인원(1만114명)의 절반 수준인 54.37%에 불과해  경미한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성범죄에 대해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경우 무거운 처벌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성적 행동에 대해서는 징역형을, 피해자가 12세 미만의 경우 성적행동 및 12세 이상 16세 미만 경우의 성적 행동에는 30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 형을 내리고 있는 것.

독일은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아동 성학대는 10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13세 이하 여아에게 성폭행을 저지르거나 성추행을 강요했을 때 무기징역에 처한다.

송 의원은 “성폭력 범죄,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지만 법원의 판결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국민 정서에 맞는 ‘성범죄 양형기준’이 논의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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