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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의 ,쉼표
[이상명의 ,쉼표] 의존명사 누구누구‘씨’에 발끈하는 사회
2019. 11. 08 by 이상명 기자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소청공원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각료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 <사진=뉴시스>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최근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임직원들의 직급을 폐지하고 있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 소청공원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각료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정도.

며칠 전, 직장 내 계급을 없애 전 사원이 같은 위치인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말했다. 아무리 직장 내 계급을 없앴다지만 새파랗게 젊은 신입사원이 이제 입사 20년차고 중학생 자녀까지 있는 자신에게 누구누구‘씨’라고 부른다고.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열변을 토하는 지인을 말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씨3 氏    
1. 성(姓) 또는 이름 뒤에 쓰여, 그 사람을 대접하여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2. 같은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
3.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출처=미디어 다음 한국어사전>

어학사전에서 ‘씨’를 찾아봤더니 이렇게 해석돼 있다.

언젠가 ‘씨’라는 말을 대통령의 부인에게 썼다 해서 인신공격을 당한 기자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비속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도 아닌데 정도를 벗어난 심한 질책에 글쓴이의 당황스러움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의 부인은 영부인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아들은 영식, 딸은 영애라고 불렀다. 조선시대를 끝으로 계급사회가 막을 내렸음에도 급이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영부인이라는 말도 쓰지 않을뿐더러 영식이나 영애라는 말은 모르는 이도 많다.

대통령 부인을 누구누구‘씨’라 호칭했다는 이유로 누리꾼의 뭇매를 맞았던 기자. 대통령의 부인이면서 동시에 한 국가 개인의 호칭을 두고 왈가왈부 떠드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국가 수장의 부인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될 말이지만 ‘씨’라는 의존명사를 썼다 해서 ‘기자새끼’라는 표현으로 인신공격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누구누구‘씨’라는 말에 ‘기자새끼’라는 말이 과연 응당한 대응 방식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말에 버젓이 존재하는 의존명사이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도 자주 쓰는 말이 ‘씨’라는 말이다. 누구누구‘씨’ 그 말이 그토록 화낼 말인가.

대통령도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지금껏 누구누구‘씨’로 불려왔을 텐데 이제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그것도 대통령도 아닌 그 부인에게 ‘씨’라는 호칭을 한 것이 인격모독인 것처럼 공격하던 모습에 아직도 우리사회 속 탈권위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닌가 생각해 봤다.

대통령 자신은 노타이에 직접 찻잔을 들고 각료들과 어깨 맞춰 대화하는데, 정작 그분을 지지하는 일부 개인들은 자신들이 그려놓은 새로운 권위주의 그림자 속에 아직도 갇혀있는 건 아닐까.

마시던 찻잔을 잠시 내려놓으며 지인에게 말했다.

“진취적이고 권위 의식 없다더니 ‘씨’라는 말에 왜 그렇게 화났어? 욕도 아닌데.”

나이도 한참 어리고 이제 갓 사회생활 시작한 아이한테 듣는 ‘씨’라는 말은 너무 모욕적이라며 재차 흥분하던 지인에게 인터넷 검색으로 ‘씨’를 찾아 보여줬다.

‘성 또는 이름 뒤에 쓰이고 그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해석을 보더니 그제야 “내가 잘못 알았네” 하며 웃어버린다.

잘못된 상식이야 배워서 알면 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 다행히 지인은 동료직원의 누구누구‘씨’라는 호칭에 아무 말 없이 넘겼다지만 ‘기자새끼’라 욕한 이들은 알고 있을까.

누구누구‘씨’는 엄연히 한국어에 존재하는 의존명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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