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등에 따른 이사 해임 가이드라인 마련
“기업 부담” vs “상장사 책무” 공청회서 갑론을박
책임투자 활성화방안 기준 모호 및 늑장조치 지적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최근 상장기업들의 갑질, 불법행위 등 소식이 자주 미디어를 장식하면서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 기업윤리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년 만에 최악이라는 청년실업에도 꾸준히 제기되는 기업의 채용비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고, 이밖에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을 뒤늦게 리콜 처리하거나 소액주주를 울리는 회계비리, 생태계를 망치는 환경오염 문제 등 크고 작은 논란들로 기업들은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횡령이나 배임 등 경영진이 사익을 취한 기업에 대해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를 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대해 과도한 경영권 침해로 기업경영이 위축되는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지만,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상장기업의 책무라고 환영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안) 공청회’는 모습. (왼쪽부터) 곽관훈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료대학교 교수, 이동구 변호사,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사진=뉴시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안) 공청회’는 모습. (왼쪽부터) 곽관훈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료대학교 교수, 이동구 변호사,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사진=뉴시스>

◆국민연금 기업 경영 개입 확대..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 마련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방안과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에 대해 공청회를 열었다.  

이번 공청회는 올해 7월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초안을 토대로 기금운용관련 위원회 논의와 복지부·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실무검토 의견 등을 바탕으로 마련한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세부 가이드라인과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특히 공청회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공개 중점 관리기업 중 기금운용본부의 수탁자책임 활동 추진에도 개선 의지가 없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우려 사안이 발생한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한다.  

중점관리 사안은 ▲기업의 배당정책 수립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 ▲법령상 위반 우려(횡령, 배임, 부당지원, 경영진의 사익편취)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 ▲지속적인 반대의결권(이사, 감사위원 선임의 건)행사 사안 등이 포함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항은 ▲기금운용본부의 정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에 해당하거나 ▲ESG와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내지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복지부는 7월 내놓은 초안과 달리 기업의 배당정책 수립과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 등에 따른 이사 해임 방안을 제외했다.

다만 법령상 위반이 우려되거나 지속적인 반대 의결권 행사에 따른 이사 해임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 청구한 이후에 해당 안건을 상정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이날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방안도 제시했다.

국민연금은 전체 자산군에 대해 책임투자를 적용해 먼저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대한 책임투자를 도입, 대체투자 등은 적용 가능성 및 구조적 특수성 등에 따라서 추후에 검토한 후 적용하게 된다. 

아울러 ESG 관점으로 볼 때 부정적인 회사를 포트폴리오에서 제한하고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도입에 대해 검토할 예정.

기금운용본부에 의해 직접 운용하는 자산군에 대해서는 ESG 요소를 재무분석 과정에서 융합시켜 ESG통합전략을 적용한다. 그리고 국내주식 중심 기업과 대화전략(Engagement)을 해외주식 또한 확대 적용한다.

또한 국민연금은 국내외 주식과 채권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해서 운용하는 운용사에 대해 가점을 부여한다. 이후 책임투자가 적용돼서 운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모니터링을 통해 평가에도 반영한다. 

이번에 제기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은 이르면 내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해 2023년께 도입 완료될 예정이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기업 부담” vs “상장사 책무”..전문가들 ‘갑론을박’

이날 공청회에서 제시된 국민연금 가이드라인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경영자총협회 추천)는 “개인은 본인이 투자한 것에 대해 모두 책임지지만 기관 투자자는 주주권을 행사한다 해도 책임 지지 못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국민연금을 믿고 자금을 맡긴 것은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는 데 있기 때문에 경영참여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진행돼야한다. 경영참여나 지배구조 개선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또한 곽 교수는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위원회나 수탁자 책임전문위원회가 투자 전문가로 구성되지 않아 수익성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기업의 장기적인 양상은 구체적으로 보지 않고 (국민연금이)경영참여를 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재홍 김앤장 법률사무소 전문위원(대한상공회의소 추천)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연성규범(윤리와 도덕보다 구체적·실질적인 규범)으로, 제도 도입 초기에 경성규범(불법행위 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범)보다 기업이 더 과하게 무서운 규범으로 역할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초기 제도정착에 도움 될 수 있다면 톤다운도 필요하다”면서 “개별 기업이 직면한 상황에 맞게 주주권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임투자를 졸속으로 진행할 수 있다. 주주로서 또 동반자로서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이동구 변호사(참여연대 추천)는 “기업이 행한 모든 행위를 간섭 받고 싶지 않다면 아예 상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배당정책 수립이나 경영진 사익편취 등 대단한 문제를 개선해달라는 게 아님에도 기업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이 중점관리 기업으로 분류한 130개 기업의 경우 주가가 1987년부터 2004년까지 크게 올랐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순히 배당이나 이사보수, 횡령 혹은 배임금지로 경영이 좋아지는 것인데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원표 정책국장(민주노총 추천)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규범이 아니며 기업에 대한 규제라기보다 불법을 저지르면 그만큼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액션을 재빠르게 취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시로 향후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개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이 방안들은 실무평가위원회 심의, 기금운용위원회 심의·의결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으로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도 예고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모호 지적..실현 가능성 의문부호

한편, 국민연금이 제시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기도 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이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보면 국내외 여건을 감안한다던지 점진적 확대 및 내실화 등 모호한 표현이 곳곳에 있다”며 “애매모호한 부분을 제거하고 시기와 규모를 특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2023년까지 마련한다고 하는데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늦다”며 “이미 늦게 진행됐기 때문에 앞당겨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도 “책임투자 생태계 조성에 대한 관점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서 “단순하게 투자해 수익을 올리기보다 관련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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