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 처우 ‘엉망’..2년 쓰고 버리는 카드냐” 분노
법원, 사외하청 불법파견 인정 판결에 지위 문제 관심 확대
文정부 ‘비정규직 제로화’ 반대 행보..일하고 싶은 기업 ‘무색’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임직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보장에 올인하며 ‘일할 맛 나는’ 사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현대모비스의 앞뒤 다른 행보가 빈축을 사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임직원 사기 진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그러나 꾸준히 지적받아 온 비정규직 처우 문제에 있어서는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원성이 회사 안팎에서 끊임없이 들러오는 까닭.

실제로 <공공뉴스>확인 결과, 인터넷 노동 관련 블로그 및 기업 리뷰 사이트 등에서는 회사 측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아왔다는 현대모비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볼멘소리가 잇따랐다. 이들은 현대모비스를 “계약직의 무덤” “정규직은 1%도 안 되는 회사” 등으로 표현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더욱이 최근 외부 하청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도 원청인 현대모비스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법원 판결도 이어지면서 현대모비스의 계약직 근로자의 지위 문제에 관심이 확대되는 분위기.

특히 현대모비스는 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투명한 기업, 사회책임경영을 내세워 왔던 터라, ‘일하는 기계’라고 울부짖은 비정규 근로자들의 분노는 ‘표리부동’한 회사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리뷰 사이트에 올라온 현대모비스 전·현직 직원들의 기업 평가글 <사진=잡플래닛 캡쳐>

◆‘일하는 기계’ 전락한 현대모비스 비정규직..불만 폭주

22일 기업 리뷰 사이트 잡플래닛 내 게재된 현대모비스에 대한 기업 평가에는 이 회사 전·현직 직원들의 비판글이 줄을 이었다. 

현대모비스 평가에서 전·현직 직원들은 급여가 높다거나 복지가 좋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기도 했지만, 회사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더 컸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측의 대우를 지적하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현대모비스 생산·제조직 전 직원이었다는 A씨는 현대모비스에 다녔을 당시를 회상하며 “일은 일대로 고되고,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분노했다.

A씨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정규직은 극소수이며 현장직 대부분은 하청으로 돌리는 구조다. 현대모비스 재직 당시 A씨와 동료들은 컨베이어를 타고 2시간을 서서 일하고 10분 쉬는 방식으로 하루 총 11시간을 일했다.

A씨는 “2조 2교대로, 처음에 들어가면 스파이를 주위에 붙여 관찰하며 일의 강도를 최대한 높인다. 불평불만 없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지 잘 버티는지 관찰한다”고 내부 사정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어 “무더운 한여름에도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을 켜지 않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며 “회사가 이윤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에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는 B씨는 “현대모비스는 계약직의 무덤이다. 아무리 계약직이라도 정규직과의 차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기업”이라고 적었다.

B씨는 “복지가 생각보다 좋지만 너무 편파 됐다”며 “정규직과 계약직 차이가 분명하며 눈치가 보인다. 또 임금수준에서 다 같이 주는 성과금을 왜 안주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현대모비스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일했던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전 직원 C씨도 “(현대모비스에서 일하면)반복적으로 일하는 기계가 된다”면서 A씨와 비슷한 불만을 털어놨다.

C씨는 현대모비스를 ‘계약모비스’라고 칭하며 “진짜 정규직은 1%도 안 되고 나머지 99%는 전부 다 계약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컨베이어를 타는데 2시간 서있고 10분 쉬고 반복 일하는 기계가 된다”면서 “계약직 선두주자 모비스는 정규직도 좀 뽑았으면 좋겠다. 평가형도 아니고 그냥 2년 계약직에서 끝나는데 그러다가 진짜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법원 “현대모비스 사외하청도 불법파견” 인정

이처럼 현대모비스에서 전·현직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원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외부 하청사 비정규 계약직 근로자도 원청인 현대모비스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정규직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최형표 부장판사)는 현대모비스 수출 포장 외부 하청사에서 근무한 김씨와 엄씨, 장씨 등 3명이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사내하청 비정규 계약직 근로자도 원청인 현대모비스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법원 판결은 10여차례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근무지가 다른(제3공장) 사외하청 근로자도 현대모비스의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며 불법파견을 인정한 사례는 처음.

원고 3명은 부품과 모듈을 CKD(반조립제품) 형태로 수출하는 현대모비스와 도급계약을 맺은 포장 전문 하청사인 서영과 대호물류산업에서 또 다른 하청업체 소속 직원 신분으로 CKD 품질검사원으로 일했다. 김씨와 엄씨는 2005년부터, 장씨는 2010년부터다.

그러나 현대모비스가 CKD 업무를 다른 포장 전문 하청사로 바꾸면서 업체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3명은 “(자신들은)현대모비스 원청 품질팀 직원으로부터 직접 업무에 관련해 지휘와 감독을 받아왔기 때문에 실질적 구조는 불법으로 파견된 근로자 관계”라고 주장하며 2017년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현대모비스는 자신들은 도급인으로서 외부 하청사에 지시했을 뿐 원고들의 사용자 지위에서 지휘·명령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원고들이 현대모비스 공장이 아닌 제3공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파견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주장에 원고측은 “외부 하청사는 사업주로서 독립성이 결여된 노무 대행기관에 불과하다”며 “자신들과 원청인 현대모비스 사이에는 묵시적인 근로 계약관계가 성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로(원고들과 모비스가) 묵시적으로 근로 계약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청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업무를 수행해 왔으므로 근로자 파견관계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또한 “근로자 파견 기간이 2년을 경과했으므로 현대모비스가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모비스는 “도급 계약을 맺은 외부 하청사는 독립된 사업체로 인사권·징계권 모두 하청사에 있으므로 근로자들의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라며 묵시적 근로 계약관계를 맺고 불법 파견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부정했다.

법원도 이러한 부분을 일부 인정하며 임금·수당 등을 직접 지급하고 노사협의회가 운영된 점을 들며 외부 하청사가 독자성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 현장 관리자들이 상시 품질관리업무와 관련된 지시사항을 전달하거나 업무지침을 하달한 점, 하청사 근로자들로부터 결과보고를 받았고 하청사는 여기에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청사 근로자와 현대모비스 간 지휘명령 관계가 있었다고 봤다.

아울러 “현대모비스 직원들이 하청사의 품질검사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근로자들의 업무수행을 감독하거나 수시로 연락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등 지휘·감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 관리자의 지휘·감독)이와 같은 점을 볼 때 제3공장에서 수행한 업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현대모비스 원청 근로자들의 업무와 유기적으로 연관된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현대모비스 업무작업에 편입돼 공동작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제3공장에서 근무한 하청사 비정규 계약직이 승소한 최초의 사건으로, 향후 이와 유사한 재판에서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이 큰 의미가 있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사진=현대모비스 홈페이지 캡쳐
<사진=현대모비스 홈페이지 캡쳐>

◆정규직만 위한 워라밸?..정부 엇박내는 ‘정규직 제로화’ 행보

한편, 1977년 사명 현대정공으로 출발한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중추 계열사 중 하나로 현대·기아자동차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자동차 부품 기업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집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7위에 올랐다.

현대모비스는 2006년에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 업체’에 선정돼 글로벌 경쟁력을 이미 입증했으며, 2010년대 들어 세계 10위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며 위상이 공고해진 가운데 최근에는 주52시간 근무에 맞춰 임직원들의 워라밸 확산에 특히나 집중하고 있는 모습.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를 채택하고 있고 단축근로제를 운영, 여기에 전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게임 대회도 잇따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 일선에서 발로 뛰는 비정규직들은 이 같은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면서 결국 회사 성장에만 일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하는 ‘비정규직 제로화’는 커녕 현대모비스는 정반대인 ‘정규직 제로화’ 행보를 이어가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는 없고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만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모비스가 경영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래를 향한 진정한 파트너’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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