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순위 조작’ 논란에 얼룩진 음악시장→공정경쟁 환경 조성으로 유통 질서 확립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대중들에게 유명하지 않았던 가수의 음악이 어떤 계기로 인기를 얻게 되는 현상을 ‘역주행’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인기 아이돌들과 달리 팬덤이 크지 않은 무명 가수나 인디 가수들의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유명세를 타게 된다. 역주행 신화로 이어진 데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는 입소문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악용한 음원 사재기가 음원차트를 장악하며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 별로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의 노래가 차트에 오르게 되는 현상은 얼핏 역주행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 면에서 보면 역주행 현상과 음원 사재기는 구분이 가능하다. 역주행은 어떠한 계기로 인해 가수가 화제가 돼 노래가 알려지게 된 후에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하루아침에 이유 없이 높은 음원 순위를 기록하지 않는다. 즉, 음원차트에 순식간에 순위를 올리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는 것. 반면 음원 사재기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 순식간에 차트 상위권을 달성한다. 이는 짧으면 하루, 길게는 몇 주만에 1등을 차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일부 가수들의 음원차트 그래프를 살펴보면 그래프 모양이 거대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들보다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어떤 노래가 사재기로 차트인 한 건지 모르기에 정정당당하게 차트인한 노래가 사재기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블락비 멤버 박경. <사진=박경 인스타그램 캡쳐>
블락비 멤버 박경. <사진=박경 인스타그램 캡쳐>

‘음원 사재기’란 음악차트 순위 조작 또는 저작권사용료 수입을 목적으로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가 해당 음원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전문 업체 및 기타 관련자로 하여금 해당 음원을 부당하게 구입하도록 하는 행위로써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는 왜곡된 정보를, 서비스사업자에게는 영업이익의 감소를, 특히 음원 사재기를 하지 않은 다른 저작권자에게는 사재기가 아니었으면 누렸을 저작권료 수입의 감소와 방송출연 기회의 박탈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근절돼야 할 행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중에게 생소한 가수들이 차트 상위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역주행 의혹을 받은 일부 가수들의 소속사들은 SNS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순위 상승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낯선 가수의 노래가 갑작스럽게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자 대중들은 체감하기 어려운 인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바이럴 마케팅은 사재기 의심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가요계 고질병 ‘음원 사재기’ 논란 일파만파

그룹 블락비의 멤버 박경이 쏘아올린 ‘음원 사재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박경이 선후배 가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 박경이 해당 글에서 언급한 가수들은 새 노래를 발매할 때마다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다.

이에 저격 대상이 된 가수들은 전원 법적대응을 선언했고 박경 측도 음원 사재기 저격글에 언급된 아티스트의 법적 대응 방침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박경의 소속사 세븐시즌스는 전날(26일) 공식 입장을 통해 “최근 당사 소속 아티스트 박경이 SNS를 통해 언급한 발언으로 인해 실명이 언급된 아티스트 분들의 법적 대응 입장에 대한 당사의 공식 입장을 말씀드린다”고 운을 뗐다.

소속사 측은 “본 건 이슈와 별개로 당사는 박경의 소속사로서 아티스트의 입장을 대변하고 보호해야하는 의무가 있는바, 향후 법적 절차가 진행될 경우 변호인을 선임해 응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번 공식 입장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본 건으로 인해 실명이 언급된 분들 및 해당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드린다”고 사과했다.

소속사 측은 “당사는 박경의 실명 언급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법적 절차에 따라 그 과정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본 건을 계기로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현 가요계 음원차트 상황에 대한 루머가 명확히 밝혀지길 바라며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건강한 논의가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경은 지난 24일 자신의 SNS에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현직 가수가 동료 가수 실명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거론하는 건 이례적이라 논란이 커졌다. 결국 박경은 문제의 SNS 글을 삭제했고 팬사인회를 비롯한 행사 일정도 취소했다.

그러나 박경에 의해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일제히 사재기 의혹을 부인하며 박경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바이브 소속사 메이저나인은 25일 “당사는 회사를 통해 사과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수로부터 전혀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고 이에 기정사실화 돼 버린 해당 논란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강경대응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당사 아티스트는 씻을 수 없는 심각한 명예훼손과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의 루머를 퍼트린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송하예 소속사 더하기미디어 측은 “우선 거론된 송하예 관련 음원차트 사재기 의혹에 관해서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린다. 당사와 송하예는 모 가수의 발언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관해 법적절차에 따라 강경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송하예가 온라인상에 지속되고 있는 논란에 의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고있다”고 전했다.

임재현 측 역시 “박경씨가 제기하신 저희 아티스트 관련 사재기 의혹에 대해서 전혀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린다”며 “‘사재기에 의한 차트조작’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당사와 아티스트는 그런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또 박경에게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고도 했다.

전상근 소속사도 “해당 가수가 사실관계 확인없이 당사의 아티스트를 공개적으로 지칭하며 명예를 현저히 훼손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하며 당사와 전상근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거쳐 강경 대응할 방침”이라며 “현재 온라인 상에 지속되는 악의적 비방 및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도 자료 취합 후 강력하게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동종업계의 가수마저도 음원 사재기에 대해서 입을 여는 상황이다. 음원 사재기 의혹이 일었던 가수들의 실명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해당 발언을 두고 누리꾼들은 ‘사이다 발언’이라는 반응과 ‘경솔했다’는 반응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음원차트 조작 의혹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지  큰 관심이 모인다.

<사진=뉴시스>

#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의문의 역주행’

한때는 ‘차트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묻히기엔 아까운 보석 같은 음악들이 늦게라도 주목받으며 국내 음악 시장의 다양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역주행 사례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 EXID와 여자친구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EXID 멤버 중 한 명의 무대영상 직캠이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위아래’라는 곡도 함께 인기를 얻게 됐다.

그룹 여자친구도 비가 와서 무대 바닥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안무를 하다가 넘어지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후 유명세를 타며 노래도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역주행의 가면을 쓴 수상한 곡들이 음원 사재기 의혹을 부르며 차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음원사이트는 오전 1시부터 7시까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음원 사재기 논란이 끊이지 않자 주요 음원사이트들이 ‘차트 프리징’(freezing)을 도입한 것.

음원 시장에서는 이를 이용해 사재기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시간으로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해 새벽시간 동안 스트리밍을 해 아침에 순위가 공개됐을 때 상위권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음원 사재기는 ‘사재기’라는 불법적인 행위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음원 시장의 분위기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용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모르던 가수가 차트 상위권에 있는 것을 보면 사재기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정정당당한 경로로 역주행을 한 가수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실정이다.

실제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있는 음악들의 댓글 반응을 살펴보면 상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의심을 받는 아티스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더욱이 과정이 다소 미심쩍다고 해도 음원차트 1위에 오르게 되면 자연히 인지도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명해지면 행사와 방송 출연 요청이 더 들어오고 활동이 많아질수록 몸값도 뛴다.

잠깐의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면 큰 수혜를 누릴 수 있는 만큼 공들여 좋은 음악을 만들기보다 영악한 마케팅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음원 사재기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은 없는 걸까. 국내에서 음원 사재기는 불법으로 규정되며 처벌 방안도 마련돼 있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제26조에 따르면, 음반·음악영상물관련업자 등이 제작·수입 또는 유통하는 음반 등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해당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하게 하는 행위, 음반·음악영상물관련업자등이 제1호의 행위를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당 음반 등의 판매량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 처벌 사례가 거의 없는 게 현실. 음원 사재기는 명백한 불법 행위임에도 이를 규명하지 못해서, 증거가 불충분해서 무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원 사재기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없어질 줄 알았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사재기 차트가 발생시킬 파급효과가 언젠가 한국 음원 시장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 <사진제공=한국연예제작자협회>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 <사진제공=한국연예제작자협회>

# “음원 사재기 아웃”..음악산업단체 똘똘 뭉쳤다

한편, 음악 산업 단체들은 최근 음원 사재기 근절을 위한 윤리 강령을 선포하고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질서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등 음악 산업 단체들은 2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2019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을 진행했다.

선포식에는 김영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회장, 경만선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 그룹 비에이피(B.A.P) 출신 가수 종업, 그룹 동키즈 등이 참석했다.

이날 음악 산업 단체들은 공정한 유통 환경 조성과 원활한 시장경제 활성 확립을 위한 윤리 강령을 발표했다.

음악 산업 단체들은 윤리 강령을 통해 “최근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원 사재기 의혹이 발생해 선량한 창작자·실연자·제작자가 의심받고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며 “이에 음악 산업계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바, 대중의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고 건전한 음악 유통 환경 조성을 위해 윤리 강령을 제정하고 선포한다”고 밝혔다.

구체적 윤리 행동 강령은 ▲음악의 가치와 다양성이 존중받는 건강한 음악 시장을 지켜나간다 ▲음원 사재기 의혹을 해소해 투명한 시장 환경을 조성한다 ▲체계적인 모니터링 제도를 구축해 음악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 ▲음악 시장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건전한 음악 감상 문화를 확립한다 ▲공정한 음악 유통 환경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한다 등 다섯 개의 행동 강령이 제정됐다.

협회장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을 통해 우리 대중음악이 발전하고 공정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겠다”며 음악 산업계 질서를 확고히 할 것을 다짐했다.

음악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순간 그 음악은 뮤지션의 손을 떠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다음부터는 대중의 관심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문화적 가치를 키워 나가면서 오로지 음악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다.

특히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민과 고뇌를 거쳐 창작 작업을 하고 있기에 그저 돈으로 누군가의 기회와 노력을 빼앗아간다면 그것은 부정돼야 한다.

그러므로 사재기로 얻은 인지도와 인기는 합리적인 경쟁과 노력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당장의 이익과 성취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내다볼 때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평판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며 나아가 음원 시장에도 피해를 입힌다.

음원 사재기는 종사자 간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아 장기적으로 음악 산업 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공동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 산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관련 종사자들의 인식 공유와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하루빨리 음원 시장의 사재기 문제가 해결돼 아티스트들도 정정당당한 경쟁을 펼치고 이용자들도 마음 편히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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