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단톡방:사적 공간서 무뎌지는 성범죄 인식→타인 인격 존중하는 성숙된 소통문화 필요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 권모씨. 어느 날 갑자기 단체대화방(단톡방)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된다. ‘XX과 XX학번 XXX, 얼굴은 별로인데 몸매는 괜찮지 않냐?’ 이러한 발언은 끝이 아니라 놀이의 시작이 됐다. 누군가는 첫 글의 피해자를 더 피해자로 만드는 목격담을 올리고 누군가는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두 번째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공격의 대상을 넓혀서 교수를 타깃으로 삼거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불특정 타인을 공격했다. 이 같은 상황은 카카오톡 단톡방과 같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친목이 깊어지고 비밀이 유지된다는 믿음이 강해지면서 ‘재미’ 추구를 위한 음담패설을 내뱉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순히 인성이 바닥이고 지적수준이 떨어지며 교양이 현저히 부족한 사람들만 즐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표현할 순 없지만 평범한 사람부터 좋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 가방끈이 긴 사람들도 일삼는다. 실제 최근 불거진 대학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셈으로, 단톡방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8일 청주교대에 붙은 대자보. <사진=페이스북 캡쳐>

대다수의 사람들은 친한 사람들과 단톡방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농담을 하곤 한다. 웃으며 넘어 갈 수 있는 농담이 있는가하면 그러기 쉽지 않은 말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다분히 인신 모독적이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들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언론에 비춰지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소식을 접한 많은 누리꾼들은 피해자들의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공감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인들끼리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적인 공간 아니냐’ ‘친한 사이에 이런 얘기 좀 나눌 수도 있지’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재밌는 얘기가 나왔고 ​편한 곳이라고 해서, 혹은 단톡방이 그런 분위기였다고 해서 죄가 합리화 될 순 없다.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고 성적인 모욕감을 느꼈다면 이는 성희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가 참여한 단톡방에서 특정인을 골라 성적으로 폄훼나 조롱, 비하를 했다가 징계를 받거나 고소·고발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대학가에 휘몰아친 ‘단톡방 성희롱’

여자 신입생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단톡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서울교대 출신 현직교사와 임용대기자들이 지난 9월에 내려진 교육청 징계 처분이 과하다며 재심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교대 남자대면식 및 단톡방 성희롱 의혹’으로 9월25일 중·경징계를 받은 현직교사와 임용대기자들은 처분 이후 재심을 신청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이 과하다며 불복신청을 한 것.

징계 처분을 받은 교원은 자신이 받은 징계 처분의 정당성에 대해 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9월 사건에 관련된 졸업생 18명(현직교사 10명·임용예정자 8명)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실시, 현직교사 10명 중 4명(중징계 3명·경징계 1명)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고 다른 현직교사 3명에겐 경고 처분을 내렸다.

임용대기자 8명 중 1명에게는 중징계, 6명에게는 경징계 처분을 결정했다. 나머지 1명은 혐의점을 찾지 못해 미처분됐다.

당시 특정감사 결과 서울교대 국어교육과는 과거부터 ‘남자대면식’이라는 친목행사를 열고 이 자리에서 재학생들은 신입 여학생의 이름, 사진, 소모임 등 개인정보와 외모평가 내용이 포함된 소개자료를 제작해 졸업생에게 제공한 것이 확인됐다.

소개자료는 암묵적으로 당해연도의 2학년이 만들고 3학년이 제작 관련 사항을 구두로 인수인계 했으며 제작할 소개자료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단톡방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을 언급하며 “예쁜 애는 따로 챙겨먹는다”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신청한 재심 심사 결과는 이르면 이번 주 중으로 통지될 예정이다.

대학가에는 ‘단톡방 성희롱’이 만연한 실정이다. 지난달 8일 청주교대 게시판에는 ‘여러분들의 단톡방은 안녕하신가요?’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익명의 작성자는 “최근 내부 고발자를 통해 일부 남학우들의 남자 톡방의 존재를 알게 된 후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며 “단톡방에 있는 남학우 5명의 언행을 고발하고자 한다”고 폭로했다.

대자보에는 남학생들이 올 3월부터 8월까지 단체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성적 발언을 했으며 교생 실습과정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을 ‘사회악’, ‘한창 맞을 때’ 등으로 비하하고 조롱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자보 게시자는 “근거 없이 커지는 소문과 의혹을 바로잡고자 한다”며 “다른 어딘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 대자보가 모두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청주교대 남학생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충북지역 시민단체들이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충북교육연대와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는 공동성명을 통해 “예비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인권과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학생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사실에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청주교대는 매년 온라인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학생들이 듣고 있고 가해자 남학생들 모두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며 “제도뿐인 성폭력 예방은 유명무실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이미 발표한 전수조사 방침을 제대로 시행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일벌백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 조치를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평등한 학교교육이 되려면 교대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교대선발과정에서부터 교사로 임용될 자격을 갖추었는지, 임용에 결격 사유가 없는지 총체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단톡방 성희롱을 정당화할 논거는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며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가해자들을 엄중히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주청년회도 청주교대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하라는 성명을 냈다.

청주청년회는 “물의를 일으킨 학생들은 외모 품평, 성적 차별 발언, 성희롱을 일삼았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이는 엄연한 범죄행위”라며 “초등교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직업이기에 보다 높은 도덕성과 인권 감수성이 요구된다. 비도덕적이고 인권의식 없는 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악의 없이 장난으로 했다는 식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단톡방 성희롱이 범죄라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혜린 여군인권담당 상담지원팀 간사가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 성희롱 단톡방 사건 의혹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번엔 간호사관학교 男생도 단톡방 성희롱 논란

지난달에는 간호 장교를 키워내는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남생도들이 여군 상관이나 여생도를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모욕한 발언들이 폭로된 것.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군인권센터에서 폭로한 국군간호사관학교 남자 생도들의 단체 SNS 대화방 ‘성희롱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인권위는 두 건의 진정을 접수받은 뒤 해당 사건을 군인권조사과로 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25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성희롱 단톡방 사건 은폐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간호사관학교 일부 남생도들이 단톡방에서 여생도들과 훈육관 등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는 “군에서 절대 소수인 여군들은 여전히 일상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며 “동료·선배 여군을 상대로 저열한 성범죄를 저지른 남생도들을 학교가 묵인,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생도들의 제보에 따르면, 국간사 2·3·4학년 전체 남생도는 22명이며 ▲3학년(61기) 일부가 모여 있는 방 ▲2~3학년생도 일부가 모여 있는 방 ▲2~4학년 전체가 모여 있는 방 등 세 곳의 단톡방을 꾸리고 있다.

원래 단톡방은 남생도 생활구역에 대한 공지 등을 위해 생성됐으나 이후 각종 여성혐오와 성희롱,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은 남생도들은 대화에서 배제됐다.

군인권센터 조사 결과 남성 생도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 여생도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수차례 일삼았다. 또 훈육관을 ‘허수아비’ ‘X 멍청이’라고 일컫는 등 모욕성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여생도들은 대화 내용 캡쳐와 고발문을 갖고 3학년 담당 훈육관을 찾아가 신고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훈육관은 여생도들에게 “동기를 고발해서 단합성을 저해하려는 너희가 괘씸하다. 증거는 확보하고 말하는 거냐”라고 다그쳤다. 이에 여도생들이 증거물을 제시하자 “보고싶지 않다”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결국 여생도들은 단톡방에 이름이 언급된 성희롱 피해 생도를 중심으로 규정에 따라 학내 자치위원회인 명예위원회에 해당 사건을 정식으로 신고했고 비로소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훈육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었다.

여생도들이 확보한 단톡방 캡처 화면에서 남생도들이 주고받은 욕설과 성희롱의 수위는 명예심과 도덕관념을 중시하는 사관생도가 나눈 대화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훈육위원회에서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11명 중 최종 퇴교를 심의하는 단계인 교육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3학년 남생도 3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퇴교는 단 1명에 그쳤고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근신’ 처분만 내렸다.

군인권센터는 “주요 가해자 중 1명은 최근 폭행사건으로 근신 징계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근신 징계를 받았다”며 “이 학생이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유력 외래교수의 아들이라는 점이 강력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 간사는 “육군사관학교 등과 달리 간호사관학교는 성범죄에 대한 별도 징계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결혼 및 이성교제’ 관련 규정이나 ‘사관생도다운 언행을 할 의무’를 기준으로 징계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방 간사는 “이것이야말로 간호사관학교가 성범죄를 중대한 범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11명의 생도가 받은 징계는 ▲상관과 지휘 근무하는 생도에 대한 모욕  ▲생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행위 ▲생도답지 않은 언행 및 태도 등 세 가지 항목 차원에서 처리됐다.

방 간사는 “남성생도가 10%, 여성생도가 90%를 차지하는 간호사관학교조차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군인 사회 전반에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사건을 은폐·무마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처벌했다”고 해명했다.

사진=공공뉴스DB
<사진=공공뉴스DB>

# 잃어버린 상대방에 대한 ‘존중’

통신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적 대화 공간이라는 특성을 가진 대화방이 새로운 집단 성폭력의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올린 게시물이 심각한 범죄이고 위험하다고 인지하기보다 나만 잠시 즐거우면 된다는 식의 위험한 생각. 대학·직장에서 단톡방 성희롱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더욱이 단톡방의 폐쇄적 특성 때문에 내부 폭로가 아닌 이상 유출이 되지 않아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

이와 관련해 2017년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바일 메신저나 게임 채팅창 등 사적 공간에서의 성적 언동에 대해서도 성희롱으로 인정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대화방은 말과 다르게 오랫동안 ‘기록’이 남는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무분별한 언행은 실제 사람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비록 적은 확률일지라도 성폭력 등의 강력 범죄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온라인상 성희롱은 1차적으로 학교와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학생 개개인의 문제로 판단해 징계 등 사후처리에만 급급해선 안 되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단톡방 내 성희롱을 장난이나 사적인 대화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성폭력으로 여기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타인의 인격을 언제 어디에서나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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