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절도에 극단적 선택까지 비극 반복→복지 그늘 여전한 취약계층 발굴·지원 절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우리 사회는 변한 것은 없고 유사한 사망 사건만 만들어내고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로 태어나 부모에게 기쁨과 기대감을 주면서 성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한 가정을 꾸린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활로를 찾지 못하고 결국 가족들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이는 이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들을 하나씩 품고 있다. 가계부채는 점점 커지고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 주변의 서러운 죽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 외에는 없다.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 국가가 서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강구하고 복지 정책을 꾸준히 실현하지 않는 한 이 지독한 죽음의 굴레에서 서민들이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조문객들이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성북구 네 모녀 무연고 장례에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문객들이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성북구 네 모녀 무연고 장례에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부족한 탓에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인 이유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일련의 생계를 비관한 자살 사건은 개인뿐만이 아닌 가족들의 동반 자살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 생활고로 인한 자살 급증..경제정책 전환 시급

저소득층이나 일용직, 자영업자 등 생활고로 인한 자살자 수가 급증해 현 경제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2018년 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무직자·일용직·자영업자 등 저소득층과 실직자 자살자 수가 지난해 최소 761명 증가해 경제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22일 생명존중시민회의에 따르면, 경제생활 문제로 인한 자살자 수는 2018년 3390명으로 전년도 3111명에 비해 무려 279명, 8.97% 증가했다. 2016년 3043명에서 2년 연속 증가세다.

경찰청 자살통계에서 ‘원인 미상’ 자살자 수는 2016년 106명, 2017년 470명에서 2018년 842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경제생활 문제로 인한 자살자수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직업별 자살자 수를 봐도 경제고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 무직자 자살자는 6331명으로 전년도 5916명보다 무려 415명이 늘었다.

일용직 자살자는 전년 대비 34명 증가한 224명, 기타 피용자 자살자는 82명 증가한 715명, 기타 자살자 127명 늘어난 3347명이다. 저소득자와 실직자들이 경제정책 실패의 직격탄을 맞아 죽음으로 내몰렸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정책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자영업자 자살자는 1030명으로 전년도 927명에 비해 103명, 최소 1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존중시민의회는 경찰청의 자살 원인 통계에서 미상으로 분류된 자살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고 경찰청과 통계청 자살자수 통계에 현저한 차이가 나타난 것을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 공동대표는 “경찰청과 통계청 통계 차이는 예년 40~80여명에 불과했는데 2018년에는 무려 454명 차이가 난다”며 “공익감사를 통해 자살 관련 통계 산출 과정 전반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공익감사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최근 한 달 사이 생활고로 인해 3건의 안타까운 일가족 사망사건 발생했다.

지난달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6일에는 경기도 양주에서 세 부자가 주차된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졌다. 또 같은 달 20일에는 인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과 딸의 친구 1명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3건의 일가족 사망사건의 공통점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지원을 받다가 중단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경제적 상황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약속한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지난달 22일 논평을 통해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 하겠다던 정부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전 대변인은 “이 정부는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를 표방하며 집권했다. 지자체들까지 사각지대 해소를 하겠다며 복지행정을 강화했다”며 “하지만 집권 2년 반을 넘어선 지금 빈곤층은 더 빈곤해지고 경기는 더 악화일로를 겪다 못해 낭떠러지로 추락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자화자찬 일색”이라며 “어제(21일)는 대통령이 가계소득 양극화가 개선됐다며 기뻐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하지만 대통령이 본 그 수치는 저소득층 일자리에 수조원의 예산을 퍼부은 ‘혈세 수치’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 주머니에서 돈을 빼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면서 경제정책이 성공했다며 축배를 드는 정부”라며 “이 정부의 뻔뻔함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올해만도 정부는 200조원 가까운 돈을 복지 정책에 편성했는데 국가 전체 예산의 35%”라며 “3년 연속 증가율은 10%가 넘는다. 그런데 여전히 서민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빈곤층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이 표를 노린 정부의 흑심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 세금은 꼭 필요한 곳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정부가 해야 할일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소통쇼가 아니다”라며 “전문가들과 관련자들과 밤새 머리를 맞대고 촘촘하고 세밀한 복지 정책 설계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소통”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보도된 ‘배고파 음식 훔친 현대판 장발장, 이들의 운명은’ 방송 화면.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지난 13일 보도된 ‘배고파 음식 훔친 현대판 장발장, 이들의 운명은’ 방송 화면.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 우유·사과 훔치려던 ‘장발장 부자’에 쏟아진 온정의 손길

최근 굶주림을 참지 못해 10대 아들과 함께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친 30대 가장의 이른바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판 장발장’ 사건과 관련해 이들 부자에게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진 남성이 60대 남성이 감사장을 받았다.

인천중부경찰서는 18일 어린 아들과 함께 허기를 채우려고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친 30대 가장에게 현금 20만원을 주고 곧바로 사라진 중년 남성 박춘식(66)씨에게 경찰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했다.

감사장을 받은 박씨는 “우유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에 들렸다가 우연히 부자의 사건처리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며 “이에 감동받아 부자를 후원하기로 마음먹고 현금 20만원을 인출 국밥집을 찾아가 봉투를 건넸다”고 말했다.

이에 중부경찰서장은 “선생님의 따뜻한 선행 덕분에 추운 겨울날 많은 시민이 희망과 따뜻함을 느꼈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한 중부경찰서는 부자에게 식사를 대접한 인천중부경찰서 영종지구대 이재익(51) 경위에게 민갑룡 경찰청장 표창을, 함께 출동했던 김두환(34) 순경에게는 이상로 인천경찰청장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현대판 장발장’ 사건은 이달 10일 발생했다. A(34)씨와 그의 아들 B(12)군이 인천시 중구 한 마트에서 우유와 사과 등 약 1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직원에게 붙잡힌 것이다.

마트 대표의 신고로 이 경위 등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A씨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사정을 설명하자 마트 대표는 처벌 의사를 철회했고 경찰도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 이들을 훈방 조치했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A씨 부자를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대접했고 부자가 식사하는 틈에 마트에서 우연히 부자의 상황을 접한 한 시민이 음식점으로 찾아와 A씨에게 현금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A씨는 당뇨병 등을 앓고 있어 몇 달 전까지 일하던 택시기사 일을 그만두고 홀어머니, 두 아들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지내다 허기를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장발장’ 부자의 사연과 경찰의 조처, 시민의 선행은 13일 MBC 뉴스를 통해 알려진 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인천 중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이 경위의 행동을 칭찬하는 글이 쏟아졌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방법을 묻는 시민들도 많았다.

아울러 해당 마트에는 익명을 요구한 몇몇 시민이 찾아와 쌀을 비롯한 생필품을 주문하거나 ‘일정 금액을 입금할테니 생필품을 마트가 직접 전달해달라’는 문의도 줄을 이었다.

이처럼 훈훈한 사연이 전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장발장 부자의 얘기가 많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며 “흔쾌히 용서해 준 마트 주인, 부자를 돌려보내기 전 국밥을 사주며 눈물을 흘린 경찰관, 이어진 시민들의 온정은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천중부경찰서는 지난 18일 박춘식(66세)씨에게 경찰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했다. <사진제공=인천중부경찰서>
인천중부경찰서는 지난 18일 박춘식(66세)씨에게 경찰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했다. <사진제공=인천중부경찰서>

# 근로빈곤층 2만7000가구, 내년부터 생계급여 받는다

한편, 배고파서 물품을 훔친 ‘장발장 부자’에 대한 훈훈한 미담 사례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부터 근로빈곤층 2만7000가구가 새롭게 생계급여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생계급여 수급자의 근로·사업소득을 30%까지 공제할 수 있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학생·장애인·노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25세 이상인 수급자 등의 소득평가액을 산정할 때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의 100분의 1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만 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근로연령층(25~64세) 수급자(신청자 포함)에 대한 근로·사업소득 30% 공제안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됨에 따라 오는 2020년부터는 100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공제받게 된다.

특히 근로·사업소득의 1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제 적용을 받지 못했던 이들도 내년부터는 30%를 공제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 약 7만 가구의 생계급여 수준이 향상되고 약 2만7000가구가 새로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근로연령층 수급자에 대한 근로·사업소득 공제를 법 제정 이후 최초로 적용해 일하는 수급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적인 국가의 의무는 외부적인 위협에서 국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실업, 빈곤, 재해, 지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는 이제 드물지만은 않은 사건이 됐다. 생활고 문제는 정부 어느 한 부서가 전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문제인 만큼 범정부적 차원의 대응이 절실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사각지대 문제를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만은 없다. 각 가정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돼 몇 년 만에 사망자를 발견하는 비정한 사건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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