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기부:불경기에도 이어진 얼굴 없는 선행→연말연시 소외 이웃에 훈훈한 손길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연말이면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 소식은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던 교사 A씨는 최근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다. 며칠 전 학교에 택배 박스 2개가 도착했다. 검수를 거친 후 물품은 주인에게 돌아가기 마련인데 이 택배는 주인이 없는지 몇 날 며칠 교무실에 방치돼 있었다. A씨는 혹시나 잘못 배달된 건가 싶어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 봤지만 택배 종이상자에 붙여진 운송장에는 또렷하게 A씨 학교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를 지켜본 한 선생님이 “매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보내는 분이 계시던데. 혹시 그분 아닐까요?”라고 말했고, 이에 A씨가 보낸 곳으로 전화해서 알아본 결과 그분이 맞았다. 얼굴 없는 천사. 알고 보니 졸업생 중 한 명이 후배들을 위해 매년 익명으로 학용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부가 부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먹고사는 데 바빠서 주위를 둘러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작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걸 A씨는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 23일 대구 키다리 아저씨 부부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하고 간 성금과 메모. <사진제공=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난 23일 대구 키다리 아저씨 부부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하고 간 성금과 메모. <사진제공=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자식들에게 불법적 방법으로 유산을 물려주는 게 요즘 한국의 현실이다.

대가 없이 남에게 만원짜리 한 장 쓰기 쉽지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부 행렬이 도심 곳곳에서 줄을 잇고 있는 것. 마음에서 우러나 선행을 몸소 실천하는 기부천사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기부 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있지만 이러한 선행들은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온 ‘대구 키다리아저씨’ 8년째 익명 기부

해마다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해 ‘대구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은 익명의 독지가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나 나눔을 실천했다.

25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7시께 모금회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뜸 “퇴근했는교? 시간되면 잠깐 만납시다”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들은 사무실 인근 빵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는 어떤 한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키다리 아저씨 부부였다.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는 메모와 함께 2300여만원의 수표가 들어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올해는 가족의 이름으로 1억원을 먼저 기부해 금액이 줄었다”며 “나누다 보니 금액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60대로 알려진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 1월 처음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해 익명으로 1억원을 전달하며 나눔을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사무실 근처 국밥집에서 1억2300여만원을, 2013년 12월엔 사무실 근처로 직원을 불러내 1억2400여만원을 건넸다.

이후에도 키다리 아저씨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1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해 왔다. 그가 8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9억8000여만원으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대 누적 개인기부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키다리 아저씨는 올해 경기가 어려워 기부가 쉽지 않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2개월 동안 매달 1000만원씩 적금을 넣었고 이자까지 기부했다고 전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부친을 잃고 19세에 가장이 돼 가족들을 먹여 살리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어 기부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꼭 필요한 이웃에게 성금이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키다리 아저씨의 부인은 “승용차도 10년 이상 타면서 우리 부부가 쓰고 싶은데 쓰지 않고 소중하게 모았다”며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나눔의 즐거움에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희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올해도 잊지 않고 거액의 성금을 기부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에게 대구의 소외된 이웃을 대표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기부자님의 뜻에 따라 소중한 성금을 대구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잘 전달해 나눔으로 더 따뜻한 대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익명의 나눔천사가 지난 18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 앞에 놓고 간 성금과 편지. <사진제공=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익명의 나눔천사가 지난 18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 앞에 놓고 간 성금과 편지. <사진제공=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 ‘한푼 두푼’ 각박한 세상에 온기 불어넣는 나눔의 천사들

지난해에 이어 올 연말에도 나타난 익명의 기부천사의 이야기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다. 기부천사들의 아름다운 미담이 연일 전해지면서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23일에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익명의 독지가가 또 나타나 추운 겨울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칠성면에 따르면, 3년 전부터 관내 한 마트를 통해 쌀을 면사무소로 꾸준히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쌀 50포대(20kg/포)를 전해왔다.

칠성면은 매년 연말이면 익명의 독지가가 쌀 50포대를 면사무소 앞에 놓고 갔던 만큼 이번에도 동일인이 쌀을 기탁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같은 날 전남 함평지역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익명의 독지가가 쌀 100포대를 기부하는 등 연말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도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또 나타나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 선행은 지난해에 이어 벌써 2년째다.

지난달 말 익명의 기부자가 흰 봉투를 우체통에 넣고 사라졌다. 이 봉투 안에는 “소수면 관내 어렵고 힘드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100만원에 달하는 현금이 들어있었다.

기부방식과 필체 등으로 미뤄 봤을 때 지난해 연말 온정을 보내온 사람과 동일한 인물이 또 다시 도움을 손길을 내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소수면의 설명이다.

아울러 ‘익명의 나눔천사’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5050여만원을 기부하고 사라졌다.

18일 공동모금회 사무국에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국 앞에 편지와 5054만6420원이 든 봉투가 놓여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부자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에는 “1년 동안 넣은 적금을 기부하는 것으로, 몸이 아파도 가난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중증장애 노인과 독거 노인의 의료비로 쓰여지길 바란다”며 “내년에는 우리 어르신들이 올해보다 더 건강하고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이어 “내년 연말에 뵙겠다”며 “2019년 12월 어느날”이라는 글로 내년에도 기부할 의사를 밝혔다.

경남의 나눔천사는 지난해 1월 2억6400만원과 12월 5534만8730원, 올해 5월에는 진주시 아파트 화재사고 지원을 위해 500만원의 성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기부자는 매년 적금을 들어 나눔을 실천한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전달한 성금이 무려 3억7000만원에 달한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내년에 뵙겠다는 문구가 있어 올해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데 이렇게 또 큰 금액을 기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돈 봉투를 열어봤을 때 10원짜리 동전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이자까지 전액 기부한 것 같다”며 “현재 경남 경기가 어려워 기부심리까지 위축된 시점에 이렇게 따뜻한 손길을 내주는 모든 기부자에게 다시 감사의 말씀 드린다”고 덧붙였다.

구세군 한국군국이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9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 353곳에서 거리모금을 시작했다. 사진은 신용카드를 대면 1000원씩 기부할 수 있는 ‘스마트 자선냄비’ 모습. <사진=뉴시스>
구세군 한국군국이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9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 353곳에서 거리모금을 시작했다. 사진은 신용카드를 대면 1000원씩 기부할 수 있는 ‘스마트 자선냄비’ 모습. <사진=뉴시스>

# 함께 나눌수록 더욱 행복해지는 ‘기부’

연말에는 송년회를 비롯해 망년회, 동창회 등 연일 술자리에 들뜬 분위기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연말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실업자들과 독거노인, 집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 등 많은 사람들이 겨울나기를 걱정하고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갈지 근심부터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겠지만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남에게 과연 얼마나 베풀 수 있을까. 말로는 ‘어려운 곳에 봉사해야겠다’ ‘기부 해야겠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남을 돕는 게 말만큼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생각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기부’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때론 기업·자산가의 뭉칫돈 기부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세상을 얼어붙게 하는 경기 한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훈기 덕에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 없이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 크기의 크고 작음이 중요치 않다. 꾸준한 참여와 관심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첫발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작은 행동이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미래까지 달라질 수도 있는 ‘기부’.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기 어려웠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작지만 큰 첫 실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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