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초 외부 독립 기구로 공식 출범..삼성전자·물산 등 주요 계열사 7곳 감시 업무
김지형 위원장 “경영권 승계 등 성역 없다”..노동·시민단체 “총수 형량 낮추기 꼼수”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삼성그룹의 준법·윤리경영을 위한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가 내달 초 공식 출범한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법조계와 시민사회, 학계 인사들로 위원진이 구성됐으며, 앞으로 삼성 총수를 포함한 경영진의 위법행위까지 모두 감시·제재하는 등 ‘윤리경영 파수꾼’ 역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구체적 윤곽이 잡힌 것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재발 방지를 위한 준법감시 방안 마련을 주문한 지 두 달여 만. 이번 위원회 설치는 이 부회장이 재판부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풀이다.   

하지만 일부 노동·시민단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재판부의 요구를 이행하면서 향후 파기환송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이벤트용’ 아니냐는 지적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이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침 등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침 등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삼성그룹이 내달 초 출범시킬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 전 대법관은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침 등을 공개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처음 (위원장)제안을 받고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거듭되는 요청 끝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본인의 역량 부족 세 가지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진행되는 총수의 형사재판에서 유일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것과 위원회가 향후 혁신적 개선 조치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평가가 두려웠다”며 “또 이토록 커다란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조건을 삼성 측이 수용,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한 수차례 다짐과 확약을 받은 후 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위원장인 김 전 대법관과 함께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이 위원을 맡아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김 위원장은 이들 위원 선정에 대해 “기업의 준법·윤리경영을 향한 유의미한 변화와 진전을 바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균형 잡힌 견해를 견지해 오신 분들로 채우려고 했다”고 밝혔다.      

위원 내정 권한은 김 위원장이 전권을 일임받았으며, 이들 모두 삼성의 관여 없이 김 위원장의 독자적 판단으로 채워졌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그룹에서 독립된 외부 기관으로 운영된다. 앞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위원회 활동을 하기로 했다. 

우선 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7개사의 준법 감시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또 삼성의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면서 “법 위반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몰아주기 등의 공정거래 분야나 뇌물수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 분야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와 승계 문제 등에서의 법 위반 리스크 관리 역시 준법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단체는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앞에서 ‘삼성 이재용 봐주기 준법감시위원회 발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단체는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앞에서 ‘삼성 이재용 봐주기 준법감시위원회 발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한편,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구성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의 숙제에 대해 답변을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그룹 차원의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 제도 마련과 재벌체제 폐해 시정, 혁신기업으로의 변화 등을 이례적으로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립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형량을 낮추기 위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 설치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되어선 안 된다”라며 “삼성이 진정한 변화를 꾀한다면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법적 경영기구인 이사회의 독립성·투명성 강화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김 위원장의 내정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단체는 지평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삼성이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옹호한 김지형 변호사를 준법감시위원장을 내정한 것은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은)판사 시절 삼성의 3대 세습을 위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서 이건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서 “변호사 개업 후에도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유성기업 변호를 맡아 어용노조 설립과 직장폐쇄·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친재벌 성향인 그가 삼성에 들어가서 준법을 감시하는 위원장이 된다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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